6일 차/룰루레몬과 나이키

by 집녀

쫀쫀한 룰루레몬 레깅스에 다리를 억지로 끼어 넣는다.


‘사이즈를 잘 못 산 것일까?’


후회해도 소용없다. 가격표를 뗐으니 반품이 안 된다. 신발장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오늘도 걷는다. 무사 6일 차에 접어들었다.


걷기 운동을 결심했을 때 처음 고민은 바로 장비의 선택이었다. 그냥 추리닝을 입고 할 수 없다.

운동은 장비 빨이다.

외출 금지 상황에서 나갈 일이 운동밖에 없으니 운동복 밖에 입을 일이 없다. 운동복이 외출복인 셈이다.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고 걷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상상했다.

(부러운 표정일지, 부담스러운 표정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 예쁜 옷을 입자! 좋은 옷을 입자!'


옷장을 열자 낯익은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룰루랄라~’ 이름만 들어도 콧노래가 나오는 룰루레몬 포장가방이다. 룰루레몬의 클래스는 가방에서부터 드러난다. 예쁜 디자인에 튼튼해 에코백처럼 들고 다니기 딱 좋다. 이 가방을 메고 다니면 ‘나는 요가하는 여자야’라고 대놓고 말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그런 가방이 한 개, 두 개, 세 개, 헐... 네 개가 후드득 떨어진다.

그렇다. 치열한 쇼핑의 결과물들이다.


미국에 왔을 때 꼭 '많이' 사고 싶었던 것이 룰루레몬이다. 캐나다 브랜드이지만 미국에서 사도 한국보다 ‘훠얼씬’싸다. 요가를 자주 하는 나로서는 운동복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안다.


예쁜 운동복은 운동을 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남들은 비싸서 잘 못 사 입는다는 그 룰루레몬에 빠져서 해외 직구로 수십 만원 어치를 사던 나였다. 한국 가격보다 싸다는 이유로, 1개 가격에 두 개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어리석은 합리화로 막 사들였다. 그러다 미국 아웃렛에서 룰루레몬 간판을 발견했을 때 그 기분이란... 말해 뭐하리. 그 이후로 아웃렛에 갈 때마다 한 개, 두 개는 사 모았다. 요즘 요가도 안 하니 입을 일이 없어 처박혀 있던 그 ‘비싼’ 옷들이 이제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이다.


물론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룰루레몬을 입는 것은 아니다. 요가복의 샤넬이라는 룰루레몬의 마케팅은 독특하다.


“저희는 콘도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고 여행과 유행, 운동을 좋아하는 32세 전문직 여성을 집중 공략했습니다.”


‘32살 전문직 여성을 위한 운동복’이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로 경제력이 있고 아직은 젊고 아름다운 그런 여성들을 대놓고 타깃으로 정한 것이다. 다른 나이대 여성들의 기분을 묘햐게 자극했다. 나도 못 살 이유가 없다. 32살 여성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돈 벌었다. 그런 핑계를 대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았다.


KakaoTalk_20200704_063808631.png 룰루레몬 홈페이지. 보기만 해도 운동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비싼 옷은 다 이유가 있다.


흐물흐물한 다리 살을 레깅스가 짱짱하게 잡아준다. 몸무게도 레깅스 하나 입는 것으로 1-2kg이 당장 줄어든 것 같다. 레깅스를 입고 산책코스를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열 바퀴는 돈 듯한 느낌이다.


운동화도 사야 했다.


' 마이클 조던의 꿈이 담긴 나이키를 살까, 오바마의 뉴발란스? 힙한 아디다스? 질겨서 평생 신을 수 있는 리복?'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들락날락했다. 매장에 갈 수 없다. 코비드 19로 모든 매장이 문을 닫았다. 인터넷으로 구매해야만 했다. 여기서 고민에 휩싸였다. 길고 삐쭉해 소위 ‘칼발’이라 불리는 내 발은 직접 신어보지 않고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발이다. 인터넷 서핑에 몇 시간을 보내다 그냥 포기했다. 반품의 번거로움을 겪고 싶지 않아서다. 신발은 그냥 올해 초에 샀던 나이키 신발을 신기로 했다.

대신 생각을 달리했다.


‘우선은 이걸 신고 떨어지면 새로 사야지!’


벌써 새로 살 생각에 기쁨이 넘친다.

‘걷기 운동은 별다른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가장 저렴한 운동’이라고 한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