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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Oct 11. 2015

"너 여기 평생 있을 거 아니야."

회사 대표는 우리를 모아놓고 얘기했다. 그리고 더 큰 꿈을 얘기했다.

나는 1년간 외국계 스타트업을 다녔다.

창업한지 3년 만에 급속도로 성장해 전 세계에 200명 정도의 직원이 있는 회사로 한국에 들어온지는 2년 정도 되었다.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들어온지 1년쯤 됐을 때다.


사실 업계에선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장해 스타트업이라기보단 중소기업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지만, 여전히 그 스피릿은 간직하고 있는 회사다. 그리고 아직도 빠르게,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정말 좋았던 많고 많았던 경험 중 나에게 꽤나 인상적이었던 경험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 회사를 들어오고 얼마 안되었을 때 사내 세미나 중 있었던 일이다. 한국 오피스의 지사장이 15명 정도 되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일을 하고 동남아에서 스타트업 여러 개를 창업했던 스토리도 놀랍고 재밌었지만, 내가 진짜로 놀랐던 얘기는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쯤 나왔다. 


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영어로 얘기했지만 번역을 해보자면, 

(존댓말로 번역하자니 왠지 어색하다.)


"여러분은 이곳에 평생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보세요.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쌓으세요. 그렇게 있는 동안 주어진 일도 잘 하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다 보면 분명 또 다른 기회가 올 겁니다. 그럼 이곳에서의 경험이 자산이 될 겁니다." 


나는 한 회사의 리더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정확히 "You are not going to stay here  forever."라고 말문을 열었는데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하는 대표를 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툭 까놓고 말해서 자기 회사가 아닌 이상 평생을 한 회사에 몸 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회사에서 (특히 한국 회사에선) 다들 입 밖으로 안 꺼낼 뿐이지. 


놀랍게도 이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난 회사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1년간 나는 매우 즐겁게 일했다.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경험도 많이 쌓였고, 국내와 해외로 내 네트워크가 넓어졌다. 그리고 1년이 되어갈 무렵 거짓말처럼 나에게 오퍼가 들어왔다. 


분명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문화 공연 등등)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정말 좋은 기회인건 확실했지만, 이곳에서도 난 매우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대략 한 달간을 고민했다. 한 달을 고민한 끝에 커리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놓칠 수 없는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마음의 결정을 내린 다음 날 나는 회사 지사장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어떻게 말할까 엄청 고민하고 걱정했지만 결정을 내린 이상 빨리 말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음... 제가 친구로부터 오퍼를 받았어요."


회사 대표는 놀라면서도 웃으면서 어떤 기회인지 물어봤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솔직하게 모든 걸 얘기했다. 나에게 오퍼를 준 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건지, 한 달 동안 고민한 얘기와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어서 기회를 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얘기를 듣는 내내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던 지사장은 내 얘기가 끝나자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나에게 너무 좋은 기회 같다면서 "우리가 어떤 오퍼를 줘도 너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거지?"하고 물어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답하자 지사장은 알았다면서 진심으로 기쁘다고, "I am happy for you"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우린 네가 그립겠지만, 최대한 빨리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내가 걱정했던 이 미팅은 5분 만에 이야기가 끝났고, 나는 대표의 진심 어린 말들에 감동을 받고 울컥했다.


회사를 관둔다거나 옮긴다고 했을 때 이런 얘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물론 내가 또 다른 새로운 스타트업으로 가고, 대표 역시도 스타트업 경험이 많은데다가 언젠간 자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라 이런 게 통상적으로 좀 더 허용되는 분위기의 회사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한국 오피스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이 나 하나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았다. 나 역시도 큰 행사를 앞두고 바쁜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조금이라도 원망 섞인 발언이나 내가 죄책감이 들게 하는 발언은 한국 회사 동료들과 해외 오피스 동료들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다들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주었고 내가 떠나는 건 섭섭하지만 날 위해 기쁘다고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한 달 정도 업무를 정리하고 사흘 전 이 회사를 마지막으로 출근했다. 아직도 정말 실감이 나지 않지만... 곧 또 보자는 인사로 회사의 마지막 날이 끝났다. 




이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1년 새에 난 더 큰 무대와 더 큰 세상으로 나온 기분이 든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이상적인 근무 환경과 비슷하게 일하면서도 충분히 효율적으로 잘 일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 곳에서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또 많이 많이 감사하다. 비록 더 이상 이 회사의 직원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 회사에 애정을 가진 알럼나이로서, 밖에서도 이 곳의 행보를 지켜보며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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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 열흘 후 새로운 스타트업으로 출근한다. 아직 일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내가 전 회사에 정리할 일이 남아 있는 것도 이해해주고  출근하기 전에 일주일은 쉬어야 한다며 더 늦게 오라고 나를 배려해주는걸 보면 이곳도 참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인복이 정말 많은가보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내가 사흘 전까지 몸 담았던 회사도, 내가 앞으로 갈 회사도 모두 다 잘됐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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