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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Aug 24. 2018

휴가 갈 때는 미안해하지 마세요

올해도 버닝맨에 갑니다. 회사의 지원을 받아서.

벌써 내일이면 다시 한번 그곳으로 떠난다. 작년에 처음 갔던 버닝맨. 경험해보지 않으면 표현하기가 힘들고,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을 보여주는 곳. 현실 세계와 너무 다르지만 진짜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곳. 이 곳에 처음 다녀온 게 벌써 1년이라니. 늘 하는 말이지만 시간은 정말 빠르다.


2주 동안 휴가를 내고 버닝맨을 간다고 하면 대게 이런 반응을 보였다.

"2주 동안 휴가를 쓸 수 있다니 너희 회사 좋다."
"버닝맨에 또 간다니 대단하다."


작년에 버닝맨을 다녀와서 일을 시작하자 이런 얘기도 종종 들었다.

"이제 한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 버닝맨은 가기 힘들겠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글쎄... 난 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거나 그냥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이해가 갔지만,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자발적 백수이던 시절, 스페이스오디티 대표인 벡과 인연이 깊어지게 된 이유에는 분명 글래스톤베리를 두 번 다녀오고, 버닝맨에 다녀왔기 때문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 버닝맨이 궁금하신 분들은 작년에 제가 쓴 글들을 참고해주세요 :)



언젠가는 직원들 페스티벌 보내주고 싶어요


작년에 버닝맨에 가기 전에 벡과 만나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스페이스오디티에 정식으로 합류하기 전, 버닝맨이 어떤 곳인지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벡은 같이 일하던 사람들(케이트와 로직) 자랑을 했다.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던 친구가 있는데요, 이 친구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우디 앨런을 너무 좋아해서 비행기표 끊고 뉴욕에 가서 우디 앨런 재즈 공연을 보고 왔어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또 음악 하는 아티스트도 있어요. 마스터플랜 1세대 뮤지션인데 알아요?"

동료들 자랑이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보다는 각 동료들의 '경험'과 관련이 있었다. 퍼블리 리포트에도 썼지만, 이 대화의 흐름은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재밌는 경험을 가진 동료들이 궁금했고, 이런 걸 좋아하는 리더라면 어떤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할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해외 페스티벌들에 관한 책도 쓴 적이 있는 벡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직원들이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페스티벌이든 뭐든, 지원해 주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지금 당장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페스티벌 보내주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얘기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나는 두 번째 버닝맨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도 스페이스오디티의 "페스티벌 지원비"를 받아서 간다. 몇 달 전 벡은 자신의 꿈이었던 "페스티벌 지원비 제도"를 만들었고, 나는 그 혜택을 받는 첫 번째 오디티 요원이 되었다.



"Let My People Go Surfing"

파타고니아 본사는 파도가 치는 바다 앞에 있다. 직원들이 서핑하고 싶을 때 언제라도 서핑을 할 수 있도록. 파운더인 이본 쉬나르(Yvon Chouinard)는 "Let My People Go Surfing"이란 아주 멋진 제목의 책도 썼는데, 파타고니아에는 이 문구 그대로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타러 갈 수 있는 정책이 있다. (서핑뿐만 아니라 하이킹이나 다른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권장한다. 이 책도 원래는 직원들을 위한 매뉴얼로 쓰였다.) 파타고니아는 배울 점이 너무나 많은 브랜드지만, 구성원들의 로열티 면에서도 대단하다. 파타고니아에는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사랑하고, 그 일을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어떤 구성원은 서핑을 타고 오면 일의 능률이 오른다고 얘기한다.(1) 


스페이스오디티의 '페스티벌 지원비' 역시 비슷한 정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베이스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경험 자산은 일을 할 때도 분명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어주지 않을까.



그럼에도 2주간 자리를 비우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필이면 바쁜 시기가 겹친 것이다.ㅠㅠ


최근 오디티 요원으로 합류한 쏘이도 나와 비슷한 일정으로 휴가를 가는데, 전체회의에서 쏘이가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자 옆에서 로직이 이렇게 얘기했다.


"휴가 갈 때는 미안해하지 마세요. 미안해하면 안 돼요."


감동ㅠㅠ. 꼭 나에게 지금 해당되는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나 역시 다른 동료가 나처럼 조금 길게 휴가를 간다고 할 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괜히 눈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왕 놀기로 한 거 제대로 놀고 즐겼으면 좋겠다. 휴가는 그러라고 있는 구성원들의 권리니까. 우리나라에도 당당하게 휴가를 쓸 수 있는 문화가 조금 더 자리잡힌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바쁜 기간에 자리를 비우는 나를 대신해서 조금씩 바빠질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쏘이도 아마 같은 마음이겠지. 이렇게 좋은 제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해야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도 든다. 진짜 미안할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우리들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믿어준 만큼 더 잘하고 싶어진다.



올해 버닝맨에서도 나와 나의 크루는 한국요리를 한다. 이번엔 무려 90인분. 작년엔 불고기와 김치볶음밥이었는데, 올해는 삼겹살에 쌈밥을 준비할 예정이다. 그리고... 금요일 오전에는 팬케익 댄스파티를 주도한다. 선곡은 핫산이 준비했다! 디스코와 funk, 우리나라 70-80년대 곡들 중 디스코 풍이 나는 곡들을 섞어 플레이리스트가 완성되었다. 이번 버닝맨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여러 명이랑 함께 간다.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작년에는 버닝맨을 다녀온 게, 1년 동안 떠나고 싶으면 무작정 떠났던 나의 자발적 방황기의 하이라이트 개념이었다면, 올해 버닝맨을 가고 싶은 이유는 사실 템플에 가기 위해서다.


작년 말에 사랑하는 아빠를 갑작스럽게 잃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장소가 템플이다. 가방 속에 아빠가 좋아하던 모자와 넥타이를 챙겼다. 그곳에 아빠의 모자와 넥타이를 걸어두고, 아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두고 올 거다. 아무래도 펑펑 울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마음껏 마음을 분출하고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또 긍정적인 에너지로 내 안을 가득 채워오고 싶다.


어제는 오랜만에 내 동네 친구이자 소울메이트인 사과를 만났다. 나와 글래스톤베리, 버닝맨도 같이 가고, 셀수 없이 많은 공연을 함께 했으며 대만부터 유럽까지. 지구 구석구석 즐거운 기억이 가득한 친구인데, 가장 힘들 때도 옆에 있어준 고맙고 소중한 친구다. 사과는 어제 버닝맨에 가기 전에 주고 싶은 게 있다며 선물을 건넸다.

아그파 일회용 카메라와 편지.


사과의 편지를 읽으면서 또 눈물이 났다. 이런 친구를 둔 나는 엄청난 행운아다.


"작년과는 여러모로 달라진 너에게 플라야가 어떤 이야기를 건넬까?"
"맘 속에 아버지라는 큰 별을 품고 가는 너에게 아름다운 은하수가 펼쳐지길 바랄게."


3일 후면 버닝맨이다. 쏟아지는 별들 아래에서 자전거로 사막을 누비고, 눈 앞에 엄청난 광경에 황홀해하며 오롯이 그 시간에 집중해 순간순간을 즐기고 와야지.


잘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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