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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Jun 16. 2018

자기 일을 좋아하면서 하는 사람들

스타트업 마케터의 메모# 이 시간들이 쌓이면 브랜딩이 되는 걸까

언젠가부터 내 주변에는 자기 일을 정말 좋아하면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마도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어떻게 인생을 살고 싶은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인 6년 전쯤부터. 나도 내 주변인들도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취향이 명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만의 콘텐츠가 있는 사람들, 자기 일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은 매력적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좋은 점은 그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밥 먹으면서, 커피나 술을 마시면서 시시콜콜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나는 자주 뭔가를 얻어간다.


지난 5월은 나에게 크고 작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코엑스 씨 페스티벌에 브런치 작가로 참여하며 몽골, 일본, 태국, 대만 4개국에서 온 음악 PD와의 토크 진행을 맡았고, <2018: 스페이스 오디티> 컨퍼런스를 마쳤으며, 2월에 시작했던 퍼블리의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프로젝트를 마무리지었다.


바빴지만 마음이 번아웃 되진 않았다. 쉬는 시간과 노는 시간은 최대한 많이 사수했다. 가끔 마음의 여유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만 - 멘붕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 같을 때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하면 효과가 있다 - 바빠도 이런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가장 좋았다.


자기 일을 좋아하면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기록.



1. 잘 반하는 사람

<2018: 스페이스 오디티> 컨퍼런스에 멋진 연사분들, 좋았던 이야기가 너무나 많지만 (무려 16팀..!) 마음속에 콕 박힌 문장이 하나 있다. 미스틱 조영철 대표님의 발표 중 나왔던 "잘 반하는 사람 되기".


"인생에 재미있겠다 싶은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며 재미있는 일을 찾아가다 보니 브아걸, 아이유 프로듀싱에 이어 미스틱엔터의 대표로 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강연의 막바지쯤 이런 얘기를 하셨다. 덕후를 만나면 가산점을 주고 들어간다고. 자신은 무엇인가에 반한 사람들에게 반한다는 이야기였다.


'쉽게 반하는 사람'

퍼블리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프롤로그에서 육헌님이 소개한 카피가 떠오른다.

좋은 점을 찾아, 큰 소리로 말한다.


마케터를 정말 잘 표현하는 카피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좋은 점을 찾아'에 주목해보고 싶다. 내 주변 마케터들은 쉽게 감동받고, 그 경험을 공유한다. 쉽게 반하고 주변에 소개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눈다.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기 취향이 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것이 하고 있는 일과 간접적으로라도 연결되어 있을 때가 많다. '잘 반하는 사람 되기'. 무릎 탁! 하고 공감한 문장이다.


2. 일상을 미지화한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퍼블리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오프라인 행사로 '사심 살롱'을 진행했다. 에어비앤비 하빈님이 강추한 혜화동의 멋진 한옥에서 10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했는데, 각자의 취향을 보여주는 물건을 하나씩 가져오라는 작은 숙제?가 있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다들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물건을 꺼내 보여주는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책 읽을 때마다 찍는 용도로 만든 지구가 새겨진 도장; cm, mm에 민감해서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줄자와 빨간색이 좋아서 수집한 빨간 물건들; 명상과 관련된 타로카드 등. 물건 소개를 하며 서로의 취향을 공유할 때마다 우리는 물개 박수를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제나 가방 속에 들고 다닐 만큼 익숙한 물건들에는 누군가의 취향과 이야기가 깃들어있었다.  
*여운이 길었던 그날 밤의 이야기는 살롱에 참여해주신 승하님의 아래 글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


일본과 남미 밴드들을 연결하는 쇼고상이 그랬다. 많은 밴드들이 해외에 나가면 영어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외 관객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밴드가 모국어로 노래할 때 매력을 느낀다고. 해외에 나간다고 '꼭 영어로 노래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는데 공감이 갔다. 글래스톤베리에서 술탄오브더디스코가 공연을 할 때 분명 한국어로 노래하는데 관객들이 난리가 났다. 다들 '요술 왕자'와 '깍두기'를 따라 부르며 떼창하고, 곡이 끝나자 앵콜을 외쳐대는데 진짜 신기하고 웃기고 은근히 감동적인 게 있었다. 가사가 안 통해도 음악은 통하는구나 싶어서. 시규어 로스 노래도 아이슬란드어인데 좋다. 언어 자체가 신비로움을 더한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들을 때마다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이 생각난다. 비슷한 거 아닐까.


일상을 미지화한다 -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사심 살롱 때 추천한 책 중 하나인 <디자인의 디자인>에 나오는 말이다. "제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창조지만 기존의 것을 미지화시키는 것 역시 창조라고 할 수 있다.(하라 켄야)" 최근 한 달간 만난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누군가의 일상, 누군가에게 익숙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것이 될 수 있다.


3. 애정에서 비롯된 노가다

내가 발견한 또 하나의 공통점은... 노가다와 가내수공업이다. ^_^

노가다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귀찮고 스킵해도 되는 일을 굳이 나서서 해야 한다. 단체메일을 보내도 되는걸 한 명 한 명에게 따로 메일을 보내거나. 단체 주문해도 되는 선물을 커스터마이즈하고 리소스와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것. 이건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노가다는 효과가 있다.


스타일쉐어 채연님은 초기에 스쉐 커뮤니티 구축에 있어 '노가다의 중요성'을 손꼽았다. 스쉐의 회원이 들어오면 그 사람이 너무 고맙고 반가워서 붙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초기 회원들이 스쉐 안에서 주고받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고, 실제로 만나보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되어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플리마켓을 열어볼까 하는 회원들에게 판을 깔아준 게 매년 거대한 줄이 생기는 스쉐 마켓 페스트의 시초라고!


에어비앤비 하빈님도 초기에 에어비앤비를 알려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1:1로 한 명씩 다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뭘 해달라는 얘기도 없이 에어비앤비 사무실로 그 사람들을 불러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에어비앤비의 공간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나는 하빈님이 사람들에게 '에어비앤비에 반하는 경험'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에어비앤비의 '호스트 정신'과도 연결된다. 하빈님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담당자의 브랜드를 향한 애정을 자연스럽게 느끼지 않았을까. 위에서도 한 얘기지만 무엇인가에 반하면 주변에 얘기하고 다니게 된다. '에어비앤비에 반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블로그와 SNS에 에어비앤비를 소개하고 다녔다.


스페이스오디티도 가내수공업을 잘한다. 잘하고, 좋아한다. 우리가 스티커를 만든 이유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우리 다운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가내수공업을 하는데, 우리가 한 땀 한 땀 만든 선물을 사람들이 좋아해 줄 때 정말 뿌듯하다. 사람들이 우리 스티커를 노트북에, 벽에 여기저기 붙이고 인증샷을 올려줄 때 우리는 진심으로 기뻐한다.


스페이스오디티 가내수공업의 현장


노가다는 그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과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사람을 감동시키고, 그 한 사람이 브랜드의 '팬'이 될 때 노가다의 진가가 드러난다.


4. 내가 하는 일에서 나를 넘어선 의미를 찾는다

내 주변 마케터들도 그렇고, 5월 초에 만났던 4개국의 음악 PD들도 그렇고. 또 한 가지 느꼈던 게 있다면 모두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다 고귀한?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했던 쇼고상이 이런 말을 했다. 아시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뭉칠 수 있는데 아직은 많이 분열되어 있다. 우리가 더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음악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다른 음악 PD들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게 느껴졌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진 게 느껴져서, 이 사람들과의 토크를 진행하면서 작은 울림을 받았었다.


내가 하는 일이 나보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 일하는 데 쓰는 시간도 그만큼 의미 있어진다. 나보다 큰 무언가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일을 만족스럽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나'의 연속성에 있거나 상호보완할 때 그 만족감은 더욱 커진다.


그럼에도 일과 나를 분리시키는 노력은 필요하다

에어비앤비 하빈님이 때때로 '단절'이 중요한 이유를 얘기했었는데 정말 공감했다.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람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 사람에는 '나'도 포함된다. 누구든지 언제나 100% 일에 집중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일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거나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면 괜히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다. 번아웃 되지 않기 위해서, 일을 더 건강하게 즐기기 위해서 일과 나를 분리시키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루에 5분이라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면 마음이 조금 더 평안해진다.


5.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건 많은 걸 의미할 수 있다 - 함께 일하는 게 즐거운 사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 믿을 수 있는 사이. 말이 통하는 사이. 일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사이 등.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을 때, 일의 효율도 올라간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말도 잘 통하니 당연히 일이 더 매끄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퍼블리 오프라인 모임에 오신 분이 "일이 너무 힘들 때 어떻게 극복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숭님의 답변은 이랬다 - 문제를 만드는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에 대해 상사에게 얘기하고 함께 해결한다. 정말 명확하고 명쾌한 솔루션이다. 여기에 한 가지 전제가 있긴 하다 -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가 통하는 상사여야 한다는 것.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상사에게는 슬프지만 통하지 않는 솔루션일수도 있다. ㅠㅠ


어제 오전에 벡, 케이트와 두 시간 넘게 스페이스오디티 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들을 깊이 있게 나눴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지부터 서로 고민하고 있는 것들, 아쉬웠던 것, 했으면 하는 것, 안 했으면 하는 것들을 정말 솔직하게 툭 까놓고 얘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열개가 넘는 주제 중에 이제 막 3-4개를 커버했지만.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재점검하고, 공유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다.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서 좋았고.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 부족했던 것들을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일방적으로 지시를 받는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브랜딩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려고 하는 순간 자연스럽지가 않다. 구성원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위와 같이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들이 더 탄탄해지지 않을까.


무엇이든 사람이 중요한 것 같다. 일이 정말 재미있어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그 일을 오랫동안 하기는 힘들겠지. 그래도 확실한 건, 나와 잘 맞는 사람들,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고, 원한다면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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