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하고 얻은 몇 가지 것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나는 글 쓰기에 거부감이 있었다. 대학교 때 PR 회사를 다니는 선배가 자기 일을 설명해 줄 때, 매일 같이 보도자료를 써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난 PR회사는 안 되겠다'라고 혼자 단념했었다. 글을 쓰는 건 내가 자신 없어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랬던 내가 몇 년 후 대학을 졸업하고 가장 처음으로 하게 된 일이 카피라이팅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다음으로 들어간 회사는 내가 안 되겠다고 스스로 되뇌었던 PR회사였다. 매일같이 글 쓰는 일을 하게 되며 아주 천천히 깨달았다. 나는 글 쓰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괜히 겁부터 먹고 스스로 못한다고 단정 지어놓고. 이렇게 많이 좋아할 수 있는 걸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전부터 일기도 쓰고, 시도 쓰고, 메모장에 부지런하게 생각을 기록하면서도, 글 쓰기는 더 심오하고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부류는 따로 있는 줄 알았고, 그건 내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의 나는 글 쓰는 걸 정말 좋아한다. '글 쓰지 않는 나'를 상상하기가 더 힘들 정도로. 글을 쓰는 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생각을 가두었던 틀에서 벗어나 천천히라도 깨달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얻은 게 아주 많다. 마케터로서 일할 때도, 내 인생에 있어서도 셀 수 없을 만큼 좋은 영향이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얻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정보를 조합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게 곧 여러 가지의 정보를 소화해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사실 여러 가지 정보를 조합해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기획과 닮아 있다.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 큼직한 구조를 짜고, 그 구조 아래에 두리뭉실한 생각을 조금 더 뾰족하게 만들어 배치한다. 나름대로 제목을 정하고(읽는 사람들에게 후킹한 것은 무엇일까 저절로 고민해보게 된다) 도입부를 쓰고 결론을 내린다. 정보를 조합하고 정리하는 능력은 마케팅을 할 때도 기획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 저자가 오랜 시간을 거쳐 여러 곳에서 얻은 정보를 주제에 따라 선택적으로 소개한다. 때문에 한 편의 글은 일종의 정보 큐레이션이기도 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돌이켜보고,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추적하다 보면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돋보기를 들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것을 발견할 때.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고, 즐기고, 원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만큼 값진 것도 없다. 스스로를 찾는 여정은 명상, 독서, 토론, 여행 등을 통해 할 수 있지만 글 쓰기를 통해서도 할 수 있다. 반복해서 쓰기만 해도 나에게 집중해보게 되니까. 글 쓰기는 어디서든 떠날 수 있는 내면으로의 여정이나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철학, 가치관이 생기면 스스로 중심이 잡힌다. 중심이 단단하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내가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생각과 의견이 명확해진다는 건 곧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존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을 쓰며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지금의 나를 조금은 더 아껴주고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이든 조금 다르게 보는 훈련을 시키기 때문에 더더욱 좋아한다. 조금 비뚤어보는 시선은 작은 것에서도 감동을 느끼게 하고,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색깔, 내 손이 느끼는 촉감, 코로 들이쉬는 향 등.
길을 줄지어 걸어가는 개미, 봄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 매일 지고 또 새롭게 뜨는 태양.
모든 걸 신기하게 보는 것과 시시하게 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답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르게 보는 시선은 프레임을 벗어나게 만든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 나는 누군가 당연하다고 규정지어놓은 틀에 반발심이 생길 때면 글을 썼다. 편견을 부수는 사람을 만날 때면 감동을 받아서 글을 썼다. '어째서 그래야 하는 거지'란 생각이 내 글의 출발점인 경우가 많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생각의 반경이 넓어진다. 생각을 가두고 있던 벽을 하나 무너뜨리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내 앞에 있는 것을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을 때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 아이폰 메모장에는 수많은 메모가 담겨 있다. 내가 문득 들었던 생각부터 영감을 받은 순간까지. 나는 실제로 이 메모장 속에 있는 생각을 조합해 글을 쓸 때도 있고. 가끔 예전 메모를 찾아볼 때도 있다. 스스로의 생각과 느꼈던 점을 어딘가에 아카이빙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꼭 나중에 꺼내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메모하는 것 자체가 곧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다. 그 이유는 5번과 연결된다.
글 쓰기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것이든 쓰고 나면 비로소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그냥 흘려보낼 수 있었던 걸 붙잡아 둘 수 있다. 기억 창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오래전에 썼던 내 글을 읽으면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 내가 쓴 건데도. 어떤 감정이든 시간이 흐르면 조금은 빛이 바라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시 툭 건드려주기만 해도 살아난다. 가장 생생하게 느낄 때 기록한 글에는 타임캡슐처럼 그 감정이 살아 있다. 개인적으로 그 순간들을 다시 접하는 건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다. 감정이 담긴 글은 대부분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니까. 기쁜 일이든 마음 아픈 일이든.
감정적인 글이 아니라 정보를 제공하는 형태의 이성적인 글일지라도, 내 언어로 내가 전하는 글은 어떤 지식이든 내 것으로 소화시킨다. 머리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남들에게 소개할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 글을 쓰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말로 얘기할 때도 더 자신 있고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신기한 순간이 많았다. 특히 가장 신기했던 건 내 글이 메인에 오를 때였다.
메인에 뜨는 경험
꽤 여러 번 내 글이 다음이나 카카오 메인에 노출되었다. 브런치 내부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그냥 신기했다.
내 글이 공유가 되는 경험
어떤 글은 폭발적으로 공유가 되기도 했다. 내 글 중 가장 많이 공유가 된 글은 '너 여기 평생 있을 거 아니야'라는 글이다. 내가 이전 직장에서 감동받았던 경험을 쓴 글인데 이 글은 8,000번 넘게 공유되었다... 다시 봐도 신기한 숫자.
그 외의 글들도 1,000번 넘게 공유될 때가 많았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신기했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누가 읽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잊고 싶지 않은 나의 경험들을 나를 위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내 글을 공감해주고 공유해줄 거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는 괜히 부끄러워서 내가 쓴 글들을 내 SNS에 잘 공유하지도 않았다. 별도의 홍보활동을 한적도 없다.
예상치 못하게 훨씬 더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경험은 나에게 작은 성공처럼 느껴졌다. 진심으로 쓴 글에 함께 반응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해질 때도 있었다. 이런 작은 성공을 통해 성취감이 느껴지면서 나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쓴 글, 나의 생각을 주변에 나누는 것에도 조금 더 익숙해졌다. * 제 글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새로 알게 된 사람들, 그를 통해 생기는 기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회와 만남이 찾아왔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나를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만남을 통해 재미있고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을 기록해두는 공간이자 나도 모르게 나를 알리는 창구가 되어준 브런치에 늘 고마운 마음이 있다. (브런치야 고마웡)
예를 들면 작년 초, 나는 이태원에 있는 인생학교와 미나 대표님과 함께 스토리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브런치에 써온 글이 있었기 때문에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를 준 인생학교에도, 미나 대표님에게도 너무 감사했다.
ㅍㅍㅅㅅ에도 가끔 내 글이 올라온다.
지금은 퍼블리에서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PM인 우창님은 함께할 후보를 물색할 때 조건 중 하나가 '그동안 글을 오래 써왔거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브랜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더 즐겁고, 평소에도 관심 있게 보던 퍼블리와 저자로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
지금 진행 중인 퍼블리 프로젝트.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글 쓰는게 좋아서 계속 써 온건데, 이게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제목 그대로다. 계속 쓰면 힘이 된다! 처음엔 어려울지 몰라도 쓰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계속 쓰다 보면 스스로 자라나는 것이 느껴진다. 계속 쓰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도 느껴질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종종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글을 쓰면서 또 어떤 길과 마주치게 될까. 어떤 문을 열어보게 될까. 설레고 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