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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Jul 06. 2019

글은 어떻게 쓰세요?

저의 글쓰기 요령을 공유합니다

저는 제가 특별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고, 독립출판을 만들고, 그 독립출판을 정식 출간하게 되고, 북토크도 하게 되면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글은 어떻게 쓰면 될까요?"


'전문가도 아닌 내가 답변을 줄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답변을 하면서 생각보다 할 이야기가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만큼 글쓰기는 시간만 들인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쓰는 시간이 축적될수록 눈에 띄게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글쓰기에 전문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글을 쓰며 터득한 제 나름의 요령을 공유합니다.



생각이 날 때마다 붙잡아 기록하기

글쓰기 요령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게 '기록'입니다. 기록을 많이 해놓을수록 긴 글을 쓰기가 수월해집니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글감을 모아놓는 거예요. 필요할 때마다 그 레고 블록을 조합해 글을 씁니다.


저는 호흡이 긴 글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글 한 편을 쓰기까지 시간도 꽤 오래 들이는 편이에요. 사실 가볍게 쓰고 공유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처럼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제 개인 노트와 메모장에는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메모장에는 폴더별로 분류가 되어 있어요. 크게 아래와 같이 나뉩니다.

- Yoonash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기록하는 곳)
- Brunch (브런치에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르면 기록하는 곳)
- 여행 (여행하며 쓴 글을 모아놓는 곳)
- Space Oddity (스페이스오디티 관련 미팅록이나 갑자기 든 생각을 적어두는 곳)
- 문장 수집 (마음에 드는 문장을 모아놓는 곳)

노션, 에버노트처럼 기능도 많고 좋은 메모 앱이 많은데요. 저는 아이폰 메모 앱을 가장 잘 쓰고 있어요.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에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장점 하나만으로 저에게는 충분하더라고요.


"문장 수집"은 필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노트에 책 속에서 좋았던 문구를 쭉 정리해둡니다. 검색은 되지 않지만, 필사를 하면서 한번 더 기억에 각인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아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싶을 때면 노트를 꺼내 훑어봅니다.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퇴사는 여행>,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브런치에 써온 많은 글이 이런 과정을 거쳐 좋았던 문장을 인용하게 됐어요.


문장을 수집하는 노트에 기록한 흔적들



문장 하나에서 출발해 큼직한 구조 짜기

생각나는 대로 기록했던 메모

저의 글은 문장 하나에서 출발할 때가 많습니다. 가장 최근 글인 "좋아하는 마음이 열쇠가 될 때"를 예로 들면 "좋아하는 마음이 기회가 될 때"라는 문장 하나를 적어두고, 그 아래에 하고 싶은 말을 쭉 정리했어요.


먼저 대분류 아래 소분류 형식으로 생각을 정리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기회를 가져다준 게 뭐가 있었지' 하고 1) 이직의 기회, 2) 콜라보 기회, 3) 새로운 기회 발견 등등을 썼어요. 


이 간단한 메모가 글 한 편의 구조가 됩니다. 구조를 짠 뒤에는 예시로 쓸 수 있는 잘 맞는 문장이나 사례를 키워드로 간단히 붙입니다. 메모장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짧은 생각과 '문장 수집'의 문장들이 글 한 편에 살을 붙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목차를 만들어야 하거나, 여러 개의 글을 하나의 주제 아래 기획하고 싶을 때는 트렐로를 활용해 정리하는 편입니다. <퇴사는 여행>을 쓸 때는 '일이 뭐길래'라고 이름 붙인 트렐로 보드를 활용했어요.

트렐로로 목차 관리하기

여기 있는 대부분의 글이 제 브런치에 올라와 있습니다. <퇴사는 여행> 책을 쓰기로 결심한 후에는 이미 썼던 글과 새로 쓸 글을 구분하기 위해 "퇴사를 고민하는 예비 탐험가를 위한 안내서"와 "나를 새롭게 발견한 여행"이란 보드를 만들어 해당되는 글이 담긴 카드를 모두 옮겨두었어요. 카드를 누르면 위에 제가 예시로 보여드린 '구조를 짠' 메모가 있습니다. 그 메모들을 토대로 글을 썼습니다.


다음 책도 저는 트렐로를 활용해 목차를 짤 것 같아요 :) 위 보드는 저만 보는 비공개 보드였지만, 필요한 경우 누군가를 초대해 하나의 주제 안에서 서로 댓글로 의견을 주고받고 협업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저는 이렇게 쓰기를 좋아해요


1) 담백하게 쓰기

문장은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저는 군더더기 없이 담담하게 쓰인 문장이 좋더라고요. 꾸미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꾸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문장이 너무 길어지면 중간에 쉼표(,)를 넣거나, 두 개의 문장으로 나누는 편입니다. 


3) 글로 찍은 사진

2017년에 혼자 여행을 다닐 때 핸드폰을 방에 두고 나간 적이 있어요. 숙소 앞에 있던 광장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을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장면들을 사진을 찍듯이 기록해봤어요. 저는 이 방식을 “글로 사진 찍기”라고 부릅니다. 글로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니 상세하게 관찰하고,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눈 앞에 내가 원하는 크기만큼의 프레임을 설정해두고, 그 프레임 안에 있는 것들을 글로 써보는 거예요.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글로 사진을 찍듯이’ 기록해보면 특별해집니다. 어떤 것의 색깔, 재질, 움직임, 소리를 관찰하게 됩니다. 기록하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요. 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를 표현할 수도 있고, 종종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기도 해요. 소리와 시간, 움직임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게, 프레임에 제한이 없다는 게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가장 큰 차이점 같아요. ‘글로 찍은 사진’은 제 메모장에 종종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저는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너무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져서 글을 읽는 중간중간 저도 모르게 자꾸만 이슬아 작가의 사진을 쳐다보았어요. 그렇게 그녀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이슬아 작가는 글로 사진 찍기의 달인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의 감독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3)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진짜 글이 안 써질 때는 녹음기를 켜놓고 그냥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혼잣말을 시작해요.ㅎㅎ 아직 생각 정리가 덜 돼서 횡설수설해도 그 녹음본이 단서가 돼서 글을 써보게 됩니다. 시작하는 게 어렵지, 글은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쓰게 되어있어요. 글이 안 써질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로 녹음해서 받아 적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4) 많이 읽고 많이 쓰자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어딘가로 모험을 떠나는 것도 즐기는 편이지만, 한편으론 편안한 옷을 입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제가 좋아하는 공간 안에 늘어진 채,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게 최고의 휴식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제 방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입니다. 제 침대 옆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어요. 창문을 열면 잡초가 우거진 언덕이 보입니다. 창문을 열 때부터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 위한 저만의 리추얼이 시작됩니다. 창 밖으로 새소리가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듣고 싶은 음악을 틀어둔 뒤 노트북을 열거나 책을 펼칩니다. 


한 번에 여러 권을 읽는 편이고, 무조건 많이 읽으려고 하진 않아요. 어떤 책은 정독하면서 몇 주에 걸쳐 느리게 읽고, 어떤 책은 속독합니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너무 좋아서 필사를 하면서 읽어요. 책을 많이 읽는 게 저도 모르는 새 글을 쓰는데 엄청난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측정하긴 어렵지만 제 안 어딘가에 남아서 보이지 않게 저를 이끌어주는 느낌이에요.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시간을 들인 만큼 내공이 쌓입니다. 뭐든 많이 읽고 많이 쓰다 보면, 글쓰기 근육이 생깁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이지만, "계속 쓰면 힘이 됩니다". :)



5) 퇴고 퇴고 퇴고

저는 글 한편을 쓰는데 시간을 많이 들입니다. 문장 하나에서 시작하는 걸 제 글의 첫 기획단계로 몇 달에 걸쳐서 메모장 안에 구조를 짤 대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지' 의식하고 하는 건 아니고요. 문장 하나를 생각이 날 때 적어두고 잊고 있다가 '엇 오늘 본 영화는 그 문장에 잘 맞네!' 하는 생각이 들면 그 메모를 뒤져서 키워드를 적어두는 거예요. 그리고 며칠간 '이제 써볼까'란 생각을 하고 다니다가 쓰는 편입니다. 시간에 걸쳐 발전된 글이 많아서 안 그래도 오래 걸리는 편인데요. 퇴고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


몇 번이고 제가 쓴 글을 읽어봐요. <퇴사는 여행>을 쓸 때는 여러 번 읽고 수정하다 보니 어떤 문장들은 외울 정도가 되어버렸어요. 퇴고할 때는 뺄 건 빼고, '흥미로웠다'같은 두루뭉술한 단어를 조금 더 뾰족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내용이나 문장 형태가 반복되지 않나 확인합니다. 여러 번 읽으면 걸리는 문장들이 보여요. 잘 안 넘어가는 부분을 조금씩 보수하면 글이 훨씬 좋아집니다. 소리를 내서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합니다. 글 한 편을 평생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요령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글쓰기는 요령보다 그 안에 담긴 누군가의 생각이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의 필력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마음을 울릴 때 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글을 잘 쓰는 요령은 있겠지만 정답이 정해져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글쓰기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말로 할 때는 이리저리 돌려 말하면서 이해시킬 수 있지만, 글은 명확해야 하잖아요. 문장의 흐름이 말이 되게끔 정리를 하다 보면 생각도 정리가 됩니다. '아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거구나' 글을 쓰면서 역으로 깨달은 적이 많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중심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어요. 나를 위해서 기록하는 연습, 글 쓰기를 시작해보세요 :) 글을 쓰는 시간이 쌓일수록 분명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올 초에 독립출판으로 만들었던 <퇴사는 여행>을 애정하는 출판사 '북노마드'와 함께 정식 출간하게 되었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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