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소울메이트와 같은 언니가 있다. 공연장 뒷풀이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거꾸로하면 서로의 이름이 된다는 이유로 (그리고 물론 음주가무를 좋아한단 공통점으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언니가 방콕으로 이사를 간 후 지난 5월, 언니를 보러 방콕에 다녀왔다.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이 좋고, 삐까뻔적 한것보다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나는 유명한 관광지나 쇼핑거리보다도,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바나 거리음식, 사람냄새 나는 벼룩시장과 골목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언니는 나보다도 이러한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다.
방콕에 처음 왔을 때, 관광의 필수코스인 몇몇 장소들을 미리 방문했던 덕분에 이번에는 오로지 방콕에서의 현지인 라이프를 즐기고 올 수 있었다. 현지인들 중에서도 취향이 통하는 사람의 라이프를 들여보고 온듯한 기분으로 방콕이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여행하고 왔고, 이곳에서 나는 며칠간 이베이의 광클을 통해 구입한 야시카 T4의 첫롤을 개시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방콕에서 쓴 필름들을 스캔한 나는 그 결과물에 신날 수 밖에 없었다. 색감이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게, 나의 손을 벗어난 무엇인가를 통해서 야시카가 발휘하는 마법 같았다.
방콕에서 야시카 T4로 담은 나의 첫번째 롤을 공개한다. 모든 사진은 크롭하지 않은 무보정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야시카 첫 롤이다. 필름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사진을 찍고 지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장 한장 아껴찍게 된다. (그래서 내 핸드폰에는 가득한, 그 흔한 음식 사진 하나 없다.) 이 몇 장의 사진만으로는 내가 느꼈던 방콕의 매력을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 순간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불러올 수 있다면 만족이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몇장의 사진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수많은 사진들보다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