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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May 15. 2016

'죽이는 한 마디'

실전에 도움되는 글 쓰기 요령 몇 가지

나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했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때 '카피라이팅'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생전 처음으로 '글 쓰기'에 재미를 붙였다. 그 이후 몇 년간 나는 '마케터'로서 내가 알려야 하는 상품에 대한 컨텐츠 이야기를 PR, SNS, 광고, 상품 에디팅 등을 통해 이런저런 형태로 정리해왔다. 전문 카피라이터라 보기에는 부족한 실력이고, 지금은 글을 쓰는 게 나의 주된 업무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흡수하고 터득해온 몇 가지 글 쓰기 TIP을 나누고자 한다.



"글쓰기 하수가 카피라이터가 되기까지"

글 쓰기 실력을 늘리는 것은 가능하다. 나는 글 쓰기에 타고난 것이 없었다. 카피라이터도 광고 AE로 지원하려다 면접시험 결과를 보고, 주니어 카피라이터로 들어오는 건 어떻겠냐는 회사의 제안에 시작하게 되었었다. 그 전까지 나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멘토라고 부르게 된 당시 나의 상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20년 넘게 터득해온 것들을 너에게 모두 퍼 줄 테니 흡수할 수 있는 만큼 흡수해봐". 그 말은 나에게 엄청난 원동력이 돼주었다. 


나는 '카피'란 것을 잘 쓰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순식간에 나의 실력을 업그레이드시켜준 책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카피라이터 '탁정언'님의 "죽이는 한 마디". 이런다고 될까 싶었지만, 효과가 있었다. 평범하던 카피들이 좀 더 뾰족해졌고, 신기하게도 회사의 전문 광고인들은 그 차이를 단번에 알아봤다. 이후 나는 몇 달만에 주니어에서 카피라이터로 승진을 받기도 했다.

카피라이터 탁정언의 '죽이는 한마디'

아래는 책 "죽이는 한 마디"를 통해 내가 터득했던 TIP들과 나의 경험에서 나온 TIP들의 합이다. 기억나는 대로 적은 간략한 요약본이니 글 쓰기와 카피라이팅에 관심 있는 분들은 '죽이는 한 마디'를 직접 읽어보는걸 추천한다. 


1. 단정의 원리 (A=B)
딱 부러지게 말하면 기억에 흉터를 남긴다

'A는 B다'의 간단명료한 형태로 표현하는 방법. 사람들은 심플하고 직관적인 것을 좋아한다. 앞뒤로 멋져 보이는 단어를 붙이거나 미사여구를 붙여 표현이 구구절절해지면 오히려 사람들은 흥미를 잃고 만다.

- 만들기: A와 B는 둘 다 명사로 > A와 관계없는 B를 떠올린다 > 적절한 단어를 선택한다

- 예시: 아는 것이 힘이다, 사랑은 동사다, 인생은 쇼다

* 나의 한 마디: 가장 쉽고도 강력한 방법인 것 같다. 광고회사에 다닐 때 나랑 같이 일하던 아트디렉터 언니는 '라면'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라면은 싸가지없는 미녀다'.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자꾸만 끌린다고. 


2. 치환의 원리

익숙한 말에서 하나만 바뀌어도 마음을 혹하게 한다

치환이란 말의 부속품을 바꾸는 것이다. 쉽게 말해 패러디하는 것. 유행하는 노래 가사, 개그맨의 유행어, 명언 등을 살펴보고 단어 하나만 바꿔도 재미있는 카피가 탄생할 수 있다. 

- 만들기: 말을 나눠본 후 각각의 단어 바꾸기 > 일상화된 단어 바꿔치기  

- 예시: e-편한 세상, 딴지의 제왕, 내 멋대로 해라, 네 맛대로 해라 등등

* 나의 한 마디: 치환의 원리를 쓴 카피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만 해도 '꽃보다 할배'라던지 무도의 '식스맨', '못친소', '봄날은 온다', '토토즐' 등 모두 치환의 원리를 쓰고 있다. 나는 치환의 원리를 쓰고자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현재 상영하고 있는 영화 제목이나 영화의 카피들, 명대사, 관련 기사, 유행하는 노래 가사들을 자주 찾아본다. 이런 의미에서 치환의 원리를 잘 사용하려면, 현재의 컨텐츠 트렌드를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3. 충돌의 원리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부딪치면 호기심의 불꽃이 튄다

내가 개인적으로 재미있어하는 원리. 한 마디 안에 대립적인 단어를 충돌시키면 눈길을 끌게 된다. 서로 반대되는 의미 같아도 생각을 해보면 묘하게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다.  

- 만들기: 대립되는 어휘 찾기 > 엇비슷하게 대립되는 단어 찾기 (적당히 대립될 때 더 절묘해진다) > 조사와 접속사로 연결하기

- 예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소리 없는 아우성, 돈 버는 카드, 성공은 99%의 실패, 죽어야 사는 여자

* 나의 한 마디: 나는 충돌의 원리가 주는 반전의 느낌이 좋다. 모든 것에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다른 관점도 있다는 것을 제시해주는 것 같아서 더 재미나다. 


4. 인접의 원리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 만나서 서로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관계없는 어휘를 붙여놓으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고정관념을 깬 서로 다른 카테고리의 단어를 인접시킬 때 호기심을 일으키는 놀라운 반응이 나올 수 있지만 너무 멀리 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 만들기: 중심 어휘 찾기 > 인접한 어휘 찾기 > 관련성을 따지며 좁혀나가기

- 예시: 바다 목장, 살인의 추억, 8월의 크리스마스, 아름다운 구속, 행복 주식회사 등

* 나의 한 마디: 인접의 원리를 쓰고 있는 카피들은 그 한 마디 속에 벌써부터 '스토리'가 등장한다. 한마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에 자신을 대입해보게 되는 것 같다. 윤종신이 작사하고 김연우가 부른 '이별택시'도 제목만 듣고 '이건 무슨 말이지?'했다가 가사를 보고 단번에 이해가 가듯이. 
예전에 르네 마그리트는 푸른 하늘을 그리고 '저주'라는 제목을 붙였었다. 그 작품과 제목만으로도 르네 마그리트는 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왜 이런 푸른 하늘에다가 어울리지 않는 '저주'란 제목을 붙였을까. 무슨 일이 있었나. 이와 비슷한 포인트에서 인접의 원리는 사람의 감성과 궁금증을 자극한다.


5. 반전의 원리 

앞뒤가 다른 이야기의 힘으로 무관심을 죽인다 

앞에서 한 말을 뒤집는 스토리텔링. 처음엔 이런 얘기인 줄 알았다가 끝까지 들어보면 의미가 뒤집어지는 원리가 마음을 움직인다.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서로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 만들기: 중요한 두 마디를 정하고 > 한마디로 잇는다 > 두 마디는 서술어로 끝나는 게 좋다

- 예시: 박수칠 때 떠나라, 너무나 사랑해서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배가 고프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6. 부정의 원리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져 상식의 뒤통수를 때린다

부정의 원리가 성공적이려면, 고정관념에 대한 통렬한 부정과 부정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대안이 없으면 한마디가 공허해져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뻔한 부정이 아닌 역발상이 필요하다.

- 만들기: 'a는 b가 아니다'로 고정관념 뒤집기 > 대안 찾기

- 예시: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과학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언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7. 의미부여의 원리 

오직 나만 주장할 수 있는 뜻밖의 진리로 인식을 바꾼다.

'남'을 몰아내고 '나'로부터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란 문장은 어떤 여자도 사랑하는 아내만큼 아름답진 않단 의미를 담고 있다. 의미부여는 '모호하게 만들기'가 가능해져 해석의 다양성을 열어두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게 된다.

- 만들기: 명백한 무언가에 새로운 의미 더하기> 하나의 대상에 의미 부여하기 연습

- 예시: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 나의 한마디: 문득문득 드는 생각을 적어두는 노트가 있었다. 뻔해 보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순간이 특별해지는 힘이 있다.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내가 보고 있는 모든 크고 작은 간판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매일같이 걷던 길, 매일같이 보던 장면인데 그런 생각이 들자 집 앞에 있는 꽃집도 카페도, 미용실과 음식점도, 그 날은 왠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평범한 간판과 가게를 넘어 그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번에 상상해보게 됐다. 


8. 영어 짜맞춤의 원리

초등학생 영어 실력으로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던진다.

어려운 영어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영어를 조합해서 짜 맞추는 원리다.

- 만들기: 동기상구의 원리에 맞는 단어 나열하기 (동기상구란 같은 소리끼리 서로 응하여 울리고, 같은 무리끼리 서로 통하여 자연히 모인다는 뜻) > 단어 뒤에 쉬운 단어 넣기 > 일부를 치환하기

- 예시: Impossible? I'm possible, yes24, think big, OK SK, 최근에 나온 카페베네의 베네글도 영어 짜맞춤의 원리가 되겠다.



&...

오랜만에 봐도 도움이 되는 원리들이다. 글을 쓰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조건 쉽게

어떤 글이든 쉬운게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 글 쓰기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니까. 영문이든, 한글이든 어렵게 써서 좋을게 없다. 


허세 없이 담백하게

그런 의미에서 '있어 보이는' 글은 구구절절해지기 마련이고 와 닿지도 않는다. 쉽고 담백한 글이 더 큰 감동을 전달할 때가 많다. 

>> 고은 시인의 시를 보면 문장들이 짧고 어렵지 않은데, 강력한 힘이 있다. 예를 들어보면,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천 개의 물방울

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다'      라든지, 


'뭐니 뭐니 해도

호수는

누구와 헤어진 뒤

거기 있더라'        라든지. 

스토리도 있고, 여운도 있고, 감동도 있다.


익숙한 것도 낯설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나는 비행기를 타면 창가 쪽에 앉기를 좋아한다. 창가 쪽에 앉으면 엉뚱한 상상을 하며 창 밖을 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가 보고 있는 창 밖이 지구가 아니라 외계 행성이라면?' 이런 생각이랄까. 그러면 갑자기 구름도 신기하게 보인다. 좀 별날지도 모르지만 '외계인의 눈'이란 생각을 하고 보는 세상은 매일 보던 것이라도 좀 더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땅에 기어가는 개미도 신기하고, 매번 폈다가 지고 다시 피는 꽃도 신기하고, 모든 게 신기해 보인다. 내가 '카피라이팅'에 매력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조금은 다른 관점'이 핵심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관점'은 조금은 새로운 기획과 컨셉으로 이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글 쓰기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제일 좋은 건 아무래도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써보는 것인 것 같다. 광고 카피든 회사 마케팅이든, 브런치에 개인적으로 쓰는 글이든 계속해서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고, 그 능력을 키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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