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업계에 발을 들이고, 이 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이유
스타트업. 요즘 들어 잘 알려진 기업이나 큰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도 부쩍 관심을 많이 보이고, '스타트업'이란 단어가 유행어?처럼도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나 전에 다닌 회사나,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아니에요. 전에 다녔던 회사의 경우에는 제가 막 조인했을 때 창업한지 2년째였고, 지금 다니고 있는 '올윈'의 경우에는 대표님을 비롯해 몇 분이 아주 오래전부터 밑바닥부터 착실히 준비해 이미 53개국에 특허도 받은 상태이고,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투자를 잘 받은 이례적인 회사입니다.
그럼에도 전회사는 한국에 진출한지 1년 정도 됐을 때 제가 조인했었고, 한국의 직원 수가 11명 정도로 작아서 직원들 한 명 한 명의 힘을 합쳐 점점 한국과 아시아에 자리를 잡아간다는 느낌이 있었고요, 올윈은 작년 12월에 1.0 버전의 서비스를 오픈하기 위해 막 달리기 시작할 때, 10월에 합류해서 함께 없던 서비스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있었어요.(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에 정리해보았어요: 0에서 1 만들기) '스타트업'이란 단어로 다양한 회사들의 상황을 모두 포괄시키긴 힘들겠지만, 저의 개인적인 경험 선에서 제가 꽤 자주 받았던 질문, "스타트업이 왜 좋아?"에 대한 제 나름의 답변을 적어보려 합니다 :)
스타트업이 왜 좋아?
전 회사에서는 매주 대표와 1:1 미팅을 했었어요. 한국, 일본, 중국 및 아시아의 마케팅을 혼자서 담당했던지라 본사와도 일주일에 한 번씩 미팅을 하고,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고 어떻게 마케팅할 건지, 한국 지사장과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게 필수였죠. 지금 회사에서도 위에서 아래로 통보하는 식의 구조가 아니라, 할 말이 있으면 누구나 편하게 의견을 얘기할 수 있고,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상사와의 소통을 통해 설득이 가능한 수평적인 분위기입니다.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상사'분들이 저를 대할 때, '내 밑에 있는 직원'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동료이자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대해준다는 점이에요. 물론 저보다 연차가 훨씬 높은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도 마케팅이라면 마케팅, 이벤트라면 이벤트, 홍보라면 홍보에 있어 이 분야의 전문가는 담당자로 봐주고, 최대한 많이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좀 다른 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운이 좋게도 전회사와 현재 회사에서 제가 만난 상사들은 얘기도 잘 들어주고 제가 원하는 일을 맘껏 실행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지만, 어려운 커뮤니케이션은 직접 나서 주거나 멘붕의 상황이 닥쳤을 때는 든든하게 길을 찾아주는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 저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게 가장 감사하면서도 제가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개개인의 능력치가 연차와 상관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숫자로만 일반화시켜서 판단하기에는 절대적 관계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회사가 막 생길 때 밑바닥부터 시작해 빡세게 2-3년간 일한 사람이 6-7년 이상 일한 사람보다도 어떤 분야에 대해선 더 깊게 알 수도 있는 거니까요. '나이'와도 관계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가치관과 철학이 확립된 이후라면,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위에서 말했듯이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조언과 가이드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스타트업에선 개개인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스타트업에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인 것 같아요.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게 회사의 분위기를 만들고, 성과로 돌아오는 게 보이거든요. 전 회사 같은 경우는 일본 담당자 한 명, 한국 담당자 두 명, 마케팅 한 명, 중국 두 명 등등... 이런 식으로 소수의 인원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 아주 컸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너무 중요해서 사람을 빨리 뽑아 무조건 덩치를 키우는 전략은 자칫 잘못하다간 그 회사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로드가 걸리게 되면 사람을 뽑아주는 게 맞지만, 어떤 사람을 뽑느냐가 회사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 같아요.
책임감이 큰 만큼 좋은 점은 그만큼의 권한이 있다는 거예요. 혼자서 기획했던 것들을 몇 단계 안 거치고 빠른 시간 내에 컨펌받아 바로 실행해볼 수도 있죠. 그래서 그만큼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빨리 성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잘 모르더라도 직접 맨땅에 헤딩하고 부딪혀보면서, 절차대로 배우는 건 좀 부족할지라도 오히려 생각했던 대로 부딪혀봤을 때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날 때도 있는 것 같고요. '하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온몸으로 실감하게 될 때도 있었어요.
권한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건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거예요. 사실... 뭐 하나 결정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을수록 비효율적인 면이 있어요. 정말 간단한 결정도 (짜장 먹을까 짬뽕 먹을까) 사람이 많아지는 순간 배려한답시고 남들에게 결정을 미루고 회의를 하게 되면서 우유부단 해지는 것 같아요. 권한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나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의사결정 단계를 줄일 수 있죠.
그래서 재밌는 건, 같은 스타트업에 있는 분들을 만나면 '우리 이런 거 이런 거 같이 해볼까요?'란 아이디어가 있을 때, 큰 조직에서는 보고하는데만 오래 걸릴 일도 스타트업에선 바로 공유하고 실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내가 생각하고 기획한 일이 빠르게 실행되어 결과물로 나타날 때 그만큼 뿌듯합니다.
제가 스타트업 업계가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제 주변 분들은 이미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이에요. 생각해보면 3달 전 우리 회사와 현재의 우리 회사는 아주 다른 회사거든요. 전 회사에서도 그랬어요. 1년 전과 지금이 달랐고, 그만큼 저 역시도 저 모르는 사이에 많이 성장해 있었죠.
'미래의 불확실함'이 안 좋은 면일 수도 있지만, 1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잘 안돼서 힘들어질 수도 있는 반면에 정말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멋진 모습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정해져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길을 함께 만들면서 나가보는 재미가 있어요. 내년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 회사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저 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 다른 분들의 모습도 궁금해져요. 1년 후 우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는 게 재밌기도 하고 때론 설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떻게 되든 이곳에서 있는 저의 시간들이 제가 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만큼 의미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지난 1-2년 새에 저도 모르게 참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모바일 업계에 있을 때는 워낙 업계가 좁아서, 해외에 있는 전시회를 가더라도 만나는 사람들은 비슷하더라고요. ㅎㅎ 한국에서도, 상하이에서도, 도쿄에서도 전 세계 곳곳의 어디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누구를 만나는 게 비슷한데 그게 또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세상이 넓어지는 동시에 좁아지는 기분이었어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큰 세상으로 나왔지만 또 좁은 업계인지라 웬만하면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였으니까요.
현재 일하고 있는 '올윈'에서도 재미있고 소중한 인연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공감이 가고 얘기가 잘 통해서 새롭게 사귄 친구들도 많고요, 그 친구들은 놀면서 만나는 건데도 옆에서 보고 배우는 것도 많아요. 그리고 또 올윈에서는 엠디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제가 좋아했던 장소나 공간, 브랜드의 누군가를 업무로 만날 수 있어 더 좋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 라이프스타일과 제가 가진 경력의 중간지점에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제 이야기를 관심 있어하고 들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는 점. 브런치에서 만나는 분들도 저에게는 신기한 경험 중 하나랍니다:)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올윈은 4월 중으로 웹 서비스를 오픈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어요. 지난달 정신없이 흘러갔는데 틈나는 대로 브런치 글은 더 자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목표가 생기면, 주변에 많이 말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그 목표를 더 잘 지키게 된다고.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봐주세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