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하융 Feb 28. 2017

나는 조금 더 놀기로 했다(1)

결론을 내리기까지, 고민의 과정에 영향을 준 일들 1탄

쓰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져서 2화에 이어서 써볼 예정입니다:) 2화로도 부족하면 3화로...

"나는 조금 더 놀기로 했다" 이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 제 고민의 과정을 공유합니다. 



나는 이제 진짜 백수가 되었다. 자발적인 백수 상태.

작년 11월 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은근히 바빴다. 프리랜서 형태로 두 가지 일을 하고, 작년 10월부터 해오고 있는 에어비앤비의 새 서비스 Trips의 호스트로, 한 달에 두 번은 2일간 외국인 친구들에게 서울의 인디 씬을 중심으로 한 가이드 역할을 했다.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올윈 다닐 때도 프로모터로서 많은 분들을 만났었는데, 내가 인복이 많은지,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어떻게 기회가 닿아서 다양한 분야의 정말 멋진 분들을 만났다. 이게 디지털 시대의 일종의 마법? 같은데, 원래 알던 분들도 소식을 접하고 만나자는 분들이 많았고, 브런치나 페북을 통해서 또는 소개를 통해서 새롭게 인연이 닿은 분들도 있다. 이 만남들도 다 너무 좋았던.. :)


12월부터 1월까지는 새로운 일들도 조금씩 하고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빴다면, 2월은 고민의 시기였다. 뭐 이 고민이란 게 예전부터 해오던 거지만... 이전보다 잉여로운 시간이 많이 생기자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더 집중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었다.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을 때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다. 내가 딱 그랬다. 나는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보면 여러 가지 사건, 생각, 영향을 통해서 마음은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고민의 과정이 끝난 시점에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떤 생각들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 기록해두고 싶었다. 


고민의 과정 끝에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 인생의 타임오프 기간을 제대로 가져보기로. 오로지 '나'에게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그래서 프로젝트 두 개가 2월부로 모두 끝나고. 3월부터는 진짜 한가해졌다. 제대로 잉여인간이 된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일들과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볼수 있기를. 이제 다른 핑계가 없으니 내 의지에 달려있겠지.(그래서 기록하는 것도 있어요) 2017년은 나의 해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지.



막상 질러보니 정말 간단해 보이는데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마음은 예전부터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조급해지기도 했고, 의무감에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던 것 같고, 어떤 선택들은 너무 빨리 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가 많아서 더 고민했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계속 떠올랐다. 그래도 맘 속에 뭔가 계속 꿈틀꿈틀 거리고 있었으니. 결국은 마음의 편을 들었다. 이제라도 실천하게 돼서 다행이야.


드라마틱한 사건 하나로 인해서 결정을 하게 된건 아니다. 예전부터 꿈틀거리던 내 마음을 톡톡 건드리다가, '그래 역시 그런가'하고 조금 더 깊이 고민하게 해 준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작은 영향들이 모여 마음이 기울어지다가 굳혀진 것 같다. 나에게 영향을 줬던 일들 중 하나는 독일에서 온 루디와의 만남이었다.



영향#1
독일에서 온 낯선 친구, 루디와 나눈 이야기

나는 에어비앤비의 트립 호스트를 하고 있다. 공간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공유하는 호스트. 운이 좋게도 베타 서비스 때부터 서울의 인디 음악씬을 컨셉으로 호스팅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약 10번의 트립을 진행했는데, 게스트가 1명만 예약한 건 처음이었다. 게스트가 한 명이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나는 이 친구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루디를 만난 날 쓴 글:

에어비앤비 트립 게스트 한 명이랑 하는 건 처음인데 우리는 어쩌다 보니 우주, 일, 사람, 종교, 정치에 관한 조금 더 사적이고 깊은 얘기들을 하게 되었고 이게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나에게 익숙한 공간임에도 나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고 있다 :) 조금 더 나 다운 삶, 나 다운 일, 나 다운 방법을 고민하는 독일인 친구. 나와 비슷한 고민 중인 이 친구의 도전은 지금 이맘때쯤 내가 들으면 좋은 이야기들이었을까. 재밌고도 신기한 우연과 인연.


루디는 15년 차 광고쟁이였다. 나보다 8살이 더 많은 친구로, 이름 들으면 알만한 광고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을 했고 주로 고급 자동차 브랜드의 광고를 만들었다. 커리어적으로 보면 돈도 많이 벌고 명성 높은 회사에서 리더급으로 일하고 있던 이 친구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그에게 가장 낯선 곳인 아시아로. 그리고 그 여행 중에, 불과 나를 만나기 몇 주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았다. 그가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머나먼 나라 일본에서.


루디는 성숙한 사람이었다. 본인이 직접 겪어보고 어떤 깨달음을 얻은 후에 나를 만나서 그런지, 루디가 하는 말들은 그 시점의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말들이 많았다. 멋진 말들도 많이 해주고, 자기 자신과 평안을 찾은 상태로 보여서 무슨 수도승이랑 얘기하는 기분도 들었는데ㅎㅎ 나와 비슷한 고민을 겪은 이 친구와의 만남은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했고, 반가움 그 이상이었다. 


루디의 이야기는 영감을 주는 게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평온해 보이는 루디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쓰레기'였다고 표현했다. 성격이 진짜 더러웠다고. 업무 특성상 야근도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도 있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니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일 정도로 진심으로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다들 그때의 자기를 욕했을 텐데 욕먹을만했다고.ㅎㅎ 내가 만나고 있는 친근한 루디와 너무 달라서 믿기지가 않았는데, 그렇게 왕싸가지로 2년 정도를 지내다가 본인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결심했던 순간을 얘기해주었다. 


좀 사적인 얘기라 자세한 얘기는 배제하고, 포인트만 얘기하자면, 그의 일상 중 벌어진 어떤 사건 도중 우연히 거울을 봤는데 거울 속에 비친 화를 내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쇼크를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거울 속에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나'는 없고 괴물이 있었다고. 그래서 더 이상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 날 이후로 본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던 것들, 주변에 문제가 되었던 것들을 하나씩 없애갔다고 한다. 회사를 나왔고, 문제가 되었던 관계들을 정리했다. 본인에게 악영향을 주던 요소들이 제거되자 점점 다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렇게 주변이 정리가 되고, 스스로 좀 마음의 안정을 찾은 이후, 본인이 힘들고 신경질적일 때도 옆에 있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직접 요리를 해서 식사를 대접했다. 돈이야 광고일 하면서 많이 벌어놓은게 있었고, 정말 '더 이상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떠난 여행지에서 루디는 우연히 좋아하는 일과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았다. 루디는 Kintsugi라는 일본의 도자기 방식에 매료되어 있었다. 나도 잘 몰랐는데 루디의 설명에 따르면, 킨쯔기는 깨진 그릇들을 조각조각 금으로 다시 이어 붙이는 작업이었다. 예술적으로도 아름답고 좋지만 그는 깨진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는 철학에 더 이끌렸다고 한다. 

킨쯔기 도자기


"내 인생이 산산조각이 난 것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이건 조각난 그릇들을 이어 붙여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니까... 오히려 깨지고 다시 붙여짐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도 멋지고. 

... 천천히 작업해야하는 일인 것도 좋고, 예전부터 만들기를 좋아했어. 우리 가족 중에도 화가가 있고, 내게도 예술가의 피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도자기를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져"


루디는 자기의 인생을 빗대어서 도자기를 접한 것 같았다. 자신의 조각난 인생도 다시 이렇게 이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맘 속에 작은 울림을 받았다.


이미 일본에서 킨쯔기 수업을 몇 번 받고 온 루디는 한국을 여행한 이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자신이 오랫동안 부탁한 끝에 섬기게 된 센세이 밑에서 제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테크닉을 익히고 나면, 그 후에 독일로 돌아갔을 때 자신이 배운 것들을 어떻게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적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이후에 킨쯔기를 활용한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게 될까, 아니면 또 새로운 일을 찾게될까.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단계에 만났던 친구의 얘기라 이 이야기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잘 모르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나에게 뭔가를 느끼게 해 준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결론이 어떻게 나든 지금 도전하고 있는 이 시간들은 그의 인생에 있어 엄청나게 의미있는 시간들이겠지. 나보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많고, 생긴건 전혀 다른 처음 만난 독일인 친구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서 나는 나와 닮은 모습들을 많이 발견했다. 이 친구의 인생 2막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진지하지만 의미 있고 재미있었던 첫 만남과는 너무도 다른 의미로 재미있게. 다른 친구들과 합류해서 홍대에서 공연을 보고 채널 1969에서 타이거 디스코의 디제잉에 맞춰 새벽까지 미친 듯이 춤추고 놀았더랬지 흐흐. 


그렇게 우연한 만남은 꿈틀 대던 내 맘을 한번 툭 건드린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내 맘에 자극을 준 일은 그 후에 또 바로 찾아왔다.

자꾸만 떠나고 싶었던 나는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질렀었다.

출발하는 날짜는 채널 1969에서 춤추고 논 바로 다음 날. 

나는 혼자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즉흥여행을 다녀왔고, 짧지만 짧지 않았던 그 여행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생각의 영향을 받게 된다.


영향 2는 다음 편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21세기 집시의 항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