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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Mar 06. 2017

나는 조금 더 놀기로 했다(2)

결론을 내리기까지, 고민의 과정에 영향을 준 일들 2탄

영향#2

내 안의 탐험가와 마주한 나 홀로 캄보디아 여행


이전 편에 간단히 썼었지만 2월 초 나는 매우 즉흥적으로 혼자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3박 5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았던 여행. 이 포스팅은 내가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내 인생의 타임오프를 좀 가져보기로 결심하기까지 내가 받았던 영향에 관한 글이니 여행 전반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다시 한번 내 맘을 콕콕 건드린 몇 가지 일들을 공유한다. 



- 캄보디아의 2박은 호스텔에서 했다. 호스텔을 통해서 두 번의 투어를 했는데 돈도 나눠서 내서 엄청 저렴이 가격에 한 것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자연스럽게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 함께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씨엠립의 사원을 돌아다닌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고 투어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노을을 보겠다고 높이 솟아 있는 사원 위에 올라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시각각 색깔이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이야기를 하던 게 생각난다. 내가 느꼈던 건, 길게 여행 중인 여행자들 틈에서 내가 가장 짧게 여행 중이었다는 것, 세상에는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휴가 내서 여행하는 것 외에도 정말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것. (1년 중에 8개월을 일하고 4개월은 논다던가). 워킹 홀리데이로 돈 벌고 여행하고 돈 벌고 여행하고를 반복 중인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섞여 있다 보면, 문화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가치관도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관계없이 통하는 것들이 느껴진다. 세상을 사는데 진짜로 중요한 것들은 그런 겹치는 것들이 아닐까.


-마지막 날 롤루오스의 사원들은 나 혼자 돌아다녔는데, 롤레이 사원을 방문했을 때 바로 옆에 학교가 있었다. 사원은 어차피 공사 중이었고, 나는 학교 구경하고 선생님들이랑 얘기하는 게 더 재밌었다. 캄보디아는 가난한 나라다. 그래서 부족한 것도 많고 교육환경이 열악하지만 그 니즈가 분명한 곳이다. 이 학교는 기부받은 책들과 컴퓨터로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가르침에 대한 선생님들의 열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아, 한국어 책이 너무 없어서 좀 모아서 보내줄까 란 생각이 들었지만, 제일 필요한 게 과연 한국어 책일까? 란 생각도 들었다. 부족한 곳에 와보니 넘침에 둘러 쌓여서 별것 아닌 것에도 소비욕이 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하핳.. 몇 년 전에 라오스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던 내 동생 말대로 집안에 안 쓰는 공책, 책, 색연필, 펜, 연필들이 생각났다. 분명 여기서 더 의미 있게 잘 쓰일 텐데.



- 혼자 씨엠립 시내를 돌아다닐 때 가장 좋았던 골목은 Kandall Village라는 곳. 이 곳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공정하고 선순환적인 발전을 돕는 작고 퀄리티 높은 레스토랑, 카페, 샵들이 모여 있었다. 주로 샵 주인들은 외국인인데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캄보디아에 지속적으로 도움이 되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다. 교육도 같이 시키면서. 내가 점심 먹은 곳도 벽에 코끼리 타지 말라는 포스터와, 구걸하는 아기들에게 돈 주지 말라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그건 코끼리를 위하는 일도, 아이들을 위하는 일도 아니라고. 이 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환경적으로, 경제적으로 좀 더 지속 가능하게, 그러니까 캄보디아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들을 해주고 있었다. 


특히 좋았던 리틀폭스 에스프레소. 호주에서 건너온 바리스타가 오픈한 커피숍이었는데, 이 곳에는 젊은 캄보디아 바리스타들이 매우 행복한 얼굴로 일하고 있었다. (사진만 봐도 밝음 밝음이 느껴지지 않나요 :) ) 호주 바리스타는 청년들에게 바리스타 교육도 시키고, 돈도 벌게 해 주고, 영어도 가르쳐주고 있었다. 내가 카페에 있는 동안 이들(호주인 사장님과 바리스타들)은 '간장공장 공장장은 /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이런 걸 영어 버전으로 하면서 낄낄대고 장난치고 있었는데 그렇게 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르겠다.ㅋㅋ 내가 계속 쳐다보면서 히죽대니까 저 영어문장 읽기에 나도 참여시켰던... 이 공간에 호기심이 생겨서 페북에 들어가 보니 이 카페는 캄보디아의 들판에 나무 심는 프로젝트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던 순간.



- 마지막 날은 홈스테이를 했다. 주인장인 톨라에 의하면 캄보디아 평균 연봉 950불이라고 했다. 950불이면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인데...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톨라는 홈스테이로 번 돈으로 자신의 아이들의 교육뿐만이 아니라 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교육을 돕고 있었다. 내가 홈스테이 한다고 낸 돈은 하루에 2만 원꼴이라 큰돈도 아니었지만 그곳에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내가 내는 돈이 이렇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야. 실제로 수많은 게스트를 대하느라 그런지 이 곳의 아이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영어가 수준급이었다. 


이 홈스테이가 내 트립의 하이라이트였다... 아아 정말이지 이 곳은 작은 파라다이스였다. 홈스테이에서 만난 아이들이랑 손에 손잡고 마을 골목을 뛰어다녔다. 거리에서 500원에 사탕수수 주스 5개랑 망고 시켜서 먹고, (망고는 덜 익은 채로 칠리소스에 찍어먹는다) 해가 지기 전에 아무 책에도 안 나오는 집 주변 사원을 갔는데 보물상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엄청 큰 조각상들이 있는데 언젠가 밝을 때 다시 가보고 싶다. 


이곳에 있는 동안 할머니가 자꾸만 먹을 거를 챙겨주셨다. 우리나라 시골 인심처럼ㅎㅎ 그리고 여기서 먹은 저녁이 트립 전체 통틀어서 제일 맛있었다. 게스트들이랑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또 엄청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네.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호스텔이랑은 또 다르게 좋았다. 


런던에서 온 금발의 부부가 있었는데 둘 다 일을 그만두고 여행 중인 상태였다. 남자애는 변호사였고 여자애는 나와 비슷하게 컨텐츠 마케터 출신이었다. 광고회사에서도 일했었고. 그래서 또 여러 가지로 말이 통했다. 마찬가지로 일을 그만두고 여행 중인 이 친구들을 보면서 꼭 외국이라고 해서 완전히 다른 건 아니구나 싶었다.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저녁에는 서로 머리를 땋아주면서 놀았다. 다 같이 춤추는 시간도 있었다 ㅋㅋ 애기들이 머리 만져주면서 게스트들이랑 섞여서 놀고 얘기하고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거리낌 없이 스스럼 없어진 건 다 애기들 덕분이다. ㅠㅠ 다 같이 카드놀이하고 게임하고 그냥 ㅠㅠ 말도 안 되게 좋았다. 어렸을 때 뭔가를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좋아서 뛰어놀던 때가 떠올랐다. 마법 같은 곳이었다. 언젠가 꼭 다시 가야지. 이곳에서만 며칠 머물러야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왜 회사를 관둔 와중에도 이렇게 시간에 쫓겨서 시간을 쪼개서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탐험가/모험가를 좀 더 마주했던 시간 같다. 가끔 그 자아? 가 불쑥 튀어나오는데, 그 아이는 새로운 걸 발견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관광지보다는 이렇게 현지인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음 좀 작은 것에도 감동을 잘 받는 것 같다. 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또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느낀 건, 늘어질 때면 한 없이 늘어지는 난데. 여행지에선 그렇게 부지런해진다. 진짜 일찍 눈이 떠지고, '오늘 하루를 최대한으로 잘 보내겠다!'는 마음가짐이 자동 세팅되는 것 같다. 집에서도 그렇게 하면 오죽 좋으련만 ㅎㅎ 



영향 3편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내 방에 도착해있던 소포 하나로 시작한다.

다음 편에 이어서 써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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