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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May 15. 2017

나의 일상에 배경음악이 흐른다면

염리동 소금길 동네 책방 '초원서점' 이야기 #1

이 글은 천천히 여유롭게 읽어주세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비가 오는 날이면 방 안에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창 밖에 비 내리는 모습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방 안을 채우는 음악 소리는 빗소리와 섞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조금 조급해졌던 마음에도 여유 공간이 생기고, 내 주변의 시간은 조금 더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날씨와 무관하게 이런 기분이 들게끔 해주는 곳이 있다. 이대 역으로 나와 언덕을 터벅터벅 올라가는 길도 정겨운 진짜 동네 느낌이 물씬 나고, 시간의 무게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 곳이다.


초원서점 주인언니가 필름카메라로 담은 사진.


"책으로 음악을 읽는 서점." 염리동 소금길에 위치한 음악 책방 '초원서점'이 그 주인공. 서점 앞에서부터 음악이 흘러나오고, 책방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음악 관련 책으로 가득 찬 오래된 책장과 가구에 둘러싸여 마치 내가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그 언젠가로 타임슬립한 듯한 기분이 든다.


오픈한지는 1년 정도가 되었지만, 예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듯이 정말 친근한 '동네 서점'의 모습을 띈 공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초원서점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봐 온 친구로서 느꼈던 점들과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소개한다:)




시작은 가볍게


전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던 언니는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나 서점 하려고. 음악 관련된 책들 파는 서점.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웃음), 조용하고 평화롭고 그냥 좋을 것 같아."


우리가 처음으로 이 대화를 나눈 게 겨울이었는데, 겨울이 미처 가기도 전, 한 2개월쯤 지났을 때였을까. 이 말은 얼마 가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처음에 이랬던 공간이...> 어디선가 하나둘씩 이것저것 들여오더니 이런 모습을 거쳐 >

사진은 by @applemanism

이렇게 멋진 공간이 되었다.

언니는 서점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본인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엄청나게 심오한 뜻을 가지고 하고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내가 재밌자고 한 거였지."


뭐 내가 보기에도 대단한 준비 과정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때론 무진장 잘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도 힘을 빼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더 어렵다. 세세한 계획이 없으면 오히려 유동적일 수 있다. 언니는 상황에 맞춰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저 자연스럽게 초원서점을 만들어나갔다.


오래되었지만 그래서 더 멋진 가구와 소품들을 어디서 그렇게 잘 주워 오는지. 그녀는 오죽하면 쓰레기 감별사란 뜻의 '쓰물리에'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하하) 그렇게 하나둘씩 낡고 버려진 램프와 책상 등을 들여와 이 공간을 채워가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리기도 했지만, 사실은 나도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고 아날로그에 일종의 로망? 같은 게 있는 사람이기에 그 과정을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누군가에겐 쓸모가 없어진 물건도 초원서점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세월을 견뎌온 만큼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낡은 가구와 소품들은 초원서점 안의 시간을 머무르게 만들었다.


언니는 이 램프를 데려오고 매우 신나했다ㅎㅎ. 그 옆은 음악가들의 추천서 '음악가의 서재'
턴테이블과 엘피와 테이프들. 저 괘종시계는 정시가 되면 댕댕댕~ 하고 울린다.
취향이 느껴지는 콜렉션. 주로 중고 테이프와 엘피들.


언니는 서점 경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자기만의 컨텐츠로 쌓여오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 공간을 통해 구현되었을 뿐이란 생각이 든다. 과거의 경험들이 자양분이 되어 그동안 심어 놓았던 씨앗들이 하나둘씩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느낌이랄까. 초원서점을 오픈하기 전, 언니는 상수역 근처의 공연장 겸 카페에서 4년간 매니저로 일했고, 그 전에는 방송 작가로도 잠깐 일을 했다. 서점을 채우는 음악과 책, 다양한 이벤트는 언니의 감성과 취향에서 비롯되고, 언니가 쓰는 글은 초원서점처럼 따뜻하고 포근하다.


1년이 지난 이제 와서 갑자기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던 나에게 언니가 무심코 던졌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축적된 취향이나 가치의 지향이 
어느 순간 터질 때가 오는 것 같아.

누구에게나.



음악을 책으로 읽는다는 것

'왜 음악 서점인가?' 이 질문에는 언니가 직접 쓴 글만큼 잘 표현하긴 힘들 것 같다. 그 글을 이 곳에 있는 그대로 옮겨와 소개한다.


[음악을 책으로 읽는다는 것]

"어째서 음악 서점을 하게 됐나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냥 제가 좋아해서요"라고 간단히 대답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대답을 내놓자면, 음악에 담긴 사연들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고, 책을 통해 만난 새로운 음악들을 찾아 듣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 시대의 흐름들을 읽는 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음악책을 읽는 것은 음악에 대한 지식만을 쌓는 일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니, 제 경험입니다. 음악책을 읽는 것은 음악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을 눈물을 사랑을 읽는 일이고 역사를, 변화를 읽는 일입니다. 사람을 읽는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음악이 늘 깔린다면 매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 가슴에 지니고 있는 음악이 다양하다면, 그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역사적 의미를 많이 알고 있다면 우리는 다양한 음악들을 내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겁니다. 그건 꽤 멋진 일이지요. 아무에게도 안들리더라도요. (이것은 음악책이 주는 즐거움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일뿐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음악책을 읽고 음악책을 알리고 음악책을 팝니다. 멋있는 음악과 사연이 담긴 책들로 더 많은 사람들의 순간 순간이 멋있어지길 바라면서요.

여러분이 서점에 오시면 그런 책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단은 조용히 혼자서 이 책 저 책 많이 들여다보면서 고민해 보세요. 그러다가 잘 못 고르시겠다면 저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음악을 남들만큼 많이 모른다고 걱정하지마세요. 자기 안에서 발전하는 것. 그게 더 중요한 일이잖아요.

내일 만나요. 여러분.


"다양한 음악들을 내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마음속에 이런 음악이 흐르고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일상의 단편들은 조금 더 특별해 보이지 않을까. 삶이 풍요로워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지만 이건 그중에서도 정말 멋진 일 같다.




초원서점 이야기는 다음 편("메뉴판을 보고 책을 고르는 음악 서점")에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초원서점의 매력은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 직접 가보시면 바로 느껴지실거예요. 이곳에서만큼은 급하지 않게, 느긋하고 여유롭게 서점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마음껏 누리다가 오시면 좋겠습니다. 초원서점에 대한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



초원서점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488-15

초원서점 페이스북

초원서점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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