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하융 May 16. 2017

메뉴판을 보고 책을 고르는 음악 서점

염리동 소금길 동네 책방 '초원서점' 이야기 #2

이 글은 초원서점 1편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2편을 그냥 읽어주셔도 좋지만 1편과 이어서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음악과 책을 대하는 새로운 방법 - '초원서점 메뉴판'


초원서점에는 조금 독특한 메뉴판이 있다. 

초원서점에 들어서면 보이는 초원서점 메뉴판!


서점인데 웬 메뉴판? 하실지 모르겠지만, 초원서점 메뉴판은 어떤 책을 고를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점 주인장의 시선으로 책을 소개해준다.

새로 나온 봄 특선 메뉴! 궁금한 분들은 직접 가서 보시길 :) @pampaspaspas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 "난 이 곳을 다녀왔어"라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 "난 이 곳에서 이런 걸 느꼈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 것에 관심이 갔는데 한 번 보지 않을래?"하는 사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한다. 그 사람이 그 장소에 머무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전해지고,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이 '초원서점 메뉴판'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메뉴판을 천천히 읽어보면 이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 음악과 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느껴진다.


나 역시 아날로그한 것들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주인장 언니와 통하는 게 많지만 그래도 다르다. 특히 음악과 책에 있어서 깊이가 다르다고 느낀다. 깊이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게 되면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달라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스쳐 지나갈 장면일지라도 그 안에서 특별함을 포착한 사진처럼 말이다.


초원서점의 음악 책들

사람들은 거짓된 의도로 머리를 굴려서 만든 일과 진정성 있는 이야기의 차이를 결국에는 알아차린다. 나를 감동시킨 경험을 남에게 전해줄 때 다른 사람도 감동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언니의 진정성이 담긴 글들은 우리에게 편안하게 그리고 고스란히 전달된다. '초원서점 메뉴판'은 의무감에 억지스럽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인 음악과 책, 그리고 그를 통해 언니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소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덕분에 음악과 책을 원래부터 좋아하던 사람도, 잘 몰랐던 사람도, 누구든지 편하게 '음악과 책을 대하는 새로운 방법'과 만날 수 있다. 초원서점과 이 독특한 메뉴판을 통해 취향을 발견하고, 또 재발견하게 된다. 



조금은 수고스럽게, 하지만 낭만스럽게


"음악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모여라~~~"

서점을 오픈할 때부터 첫 소개글이 이랬다. 아 뭔가 촌스러운듯한 이 말투. ㅋㅋㅋ 하지만 그래서 더 좋고 정감 가는 문장.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정말 언니스럽다고 생각했다. 송골매의 모여라가 맴돌면서...


초원서점 주인장 그녀


이쯤이면 모두 예상하겠지만 언니는 정말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옷도 빈티지 옷에 이렇게 공지사항들을 타자기로 쳐서 올리는 것도 그냥 언니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다. 초원서점의 책을 사면 껴주는 독자엽서도, 적립카드 개념의 스티커도, 기억하란 의미의 날짜 스탬프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깜짝 선물 대작전] 소포들

1년 내내 진행 중인 이벤트도 있다. 이름하여 <깜짝 선물 대작전!>  

초원서점에서 CD나 책을 고르고 선물을 주고 싶은 친구를 알려주면, 초원서점에서 그 친구에게 보내는 이를 밝히지 않고 '누군가가 당신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낸다. 문자를 받은 친구는 선물을 받기 위해 서점으로 직접 찾아와야 한다. 서점에 오기 전까지는 누가 보낸 것인지, 어떤 선물인지 서프라이즈로 남아 있다. 선물을 받기 위해 서점으로 걸어오는 길은 얼마나 기대되고 설렐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작은 이벤트가 되어주지 않을까.


초원서점의 많은 것들은 이 이벤트처럼 조금은 오래 걸리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한 과정 속에는 우리가 너무 빠르게 사느라 잊고 지내는 낭만이 있다. 그렇게 초원서점과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느리고 수고스럽게, 하지만 낭만스럽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가끔 독자 엽서를 받으면 그렇게 반갑다고 한다 @pampaspaspas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동네 서점'


+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오래되고 촌스러운 이름 
+ 평화로운 곳을 향한 지향
+ 좋아하는 이미지들의 집합


그 결과로 '초원서점'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언니가 좋아하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초원사진관도 작명에 한몫했다고 한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초원사진관'이 있는지. 추억이 깃든 공간은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매일 떡볶이를 사 먹던 학교 앞 분식집이 그렇고, 군것질거리를 하던 슈퍼가 그렇다. 오랜만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느끼는 반가움과 향수는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해준다. 그런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가슴 쓰라린 일이다. 나의 이야기들을 꺼내볼 수 있었던 곳이 사라짐으로써 우리는 그 기억들을 더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 상실감을 느끼곤 한다.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초원 사진관. 초원서점의 이름은 이 영화에서 따왔다.


초원서점은 누구보다도 이런 오래된 공간과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유행처럼 지나가는 '힙플레이스'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동네 슈퍼 드나들듯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 염리동 소금길의 오래된 골목과 가게들을 지키고 싶어 한다.


언니는 동네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써의 이 골목길을 매우 존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마음가짐은 오랜 시간 이 골목길을 지켜온 동네 사람들에게도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오픈한 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언니는 이미 아직 옛 정이 살아있는 이 골목길의 진짜 주민으로 잘 녹아든 것처럼 보였다.


초원서점 단골 고객인 해피와 꼬마숙녀


초원서점에 오랜 시간을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자주 들어와서 인사를 건네고 간다. 소금길의 터줏대감인 강아지 '해피'는 초원서점의 제일 큰 단골 고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와서 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가고, 산책을 하는 할머니도 근처에 사는 아이도 편안하게 다녀가곤 한다. (몇 달 전 해피가 며칠간 실종된 일이 있었는데, 해피를 다시 찾는데 온 동네 사람들은 물론 언니도 커다란 역할을 했던 사건도 있었다.)



광고회사를 다닐 때 70년대생이었던 나의 선배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었다. 그녀는 80년대-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우리가 "아날로그 시대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같다고 했다. 아이패드보다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고, 지도를 들고 길을 찾아야 했던, 핸드폰이 없어서 친구와 약속을 하면 엇갈리지 않게 시간을 꼭 지켜야 했고, 멀리 사는 친구와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매일매일 우체통을 확인했던 기억을 간직한 세대. 그녀의 얘기를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생각이 다르다. 아무리 세상이 빨라진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쫓는 사람들과 공간이 있는 한, 사람들은 무작정 빠르고 편한 것만 추구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라 할지라도 우리가 사이버 공간 속에 사는 것은 아니니까. 오래된 것들은 조금 느리고 불편할지라도 기술이 주지 않는 따스함과 인간다움, 현재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 그만의 장점이 분명히 있으니까.


얼마 전 초원서점에는 중학교 학생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그 학생들은 초원서점에서 턴테이블과 LP를 처음 보고, "저희 이런 거 엄청 좋아해요!!"라며 잔뜩 설레어하고 즐거워하다 갔다고 한다. 이렇듯 초원서점은 언니만의 방식과 언니만의 페이스로 그 공간의 주인을 닮은 따스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언니는 말했다.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서 꿈1에 도착한 느낌은 들어


초원서점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초원서점의 일상



나이, 성별 등 우리를 손쉽게 구분시켜버리는 모든 것들을 떠나서 '좋아하는 것'으로 함께 분류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좋아하는 것'이란 분류 아래 세상의 구분 지음과는 관계없이 소통이 가능한 것도 멋진 일이다.


'이런 것도 있어'하고 친근하고 편안하게 소개해주는 초원서점 같은 공간이 오랫동안 머물렀으면 한다. 그리고 초원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나는 이 곳에 있었다'를 인증하기 위해 가는 사람보다는,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책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언니가 필카로 담은 초원서점 내부


누군가의 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가고, 누군가의 시간은 천천히 여유롭게 흘러간다. 시간이란 게 그렇다. 절대적으로 같은 질량인 듯 보이지만 매우 상대적이다. 시간에 떠밀려 있다면 시간이 머물러 있는 초원서점에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으며 한 템포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이곳에서만큼은 나를 세상과 즉각적으로 연결해주는 것들과 잠시 떨어져, 책과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며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마음껏 만끽해보길.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기들 나름대로의 배경음악을 불러올 수 있다면 좋겠다.



초원서점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488-15

초원서점 페이스북

초원서점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일상에 배경음악이 흐른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