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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May 28. 2017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존재만으로 다양한 편견을 깨버리는 스무살 하영님과 진짜 공부의 의미

내가 최근에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놀라움을 안겨줬던 사람은 하영님이 아닐까 싶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지만 나이는 역시 숫자일 뿐이라는 걸 하영님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엄청난 독서량으로 고전문학, 역사, 정치 등 여러 방면에 두루 박식하기도 하지만, 어찌나 생각이 깊고 균형 잡혀 있는지. 배울 점도 많았고 보면 볼수록 놀랍고 또 놀라웠다. 


아직 조금은 쭈뼛쭈뼛 쑥스러움도 많아 보여 첫인상은 영락없는 스무 살이지만,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고 책을 읽어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건강하고 중심 잡힌 사고를 하는 사람인지, 결코 범상치 않은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사람인지가 금세 느껴진다. 손미나 작가님은 하영님을 두고 "혼자서 우리가 가진 다양한 편견을 깨 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말이 정말 딱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삶의 키를 잡고 방향 설정을 한 후 멋지게 인생을 표류하며 항해 중인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우리가 가진 수많은 편견을 존재만으로도 우르르 깨버리는 하영님에 대해 소개할 수 있어 무척 기쁘다 :)




배움의 주체가 '나 자신'이 되는 언스쿨링(un-schooling)


하영님은 하루도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받은 교육은 유치원 때까지가 전부였다. 유치원도 잠깐 다니고 말았지만. 6살 때부터 그는 집에서 여동생과 함께 홈스쿨링을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스쿨링'을 했다. 


언스쿨링은 나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개념인데, 홈스쿨링은 교과 과정과 유사하게 어느 정도 정해진 스케줄 내에서 집에서 교육받는 것이라면, 언스쿨링은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일,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걸 가장 잘 아는 게 본인이란 생각에서 출발한 교육 방법이다. 아이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어 원하는 공부를 찾아가고, 부모는 지시하기보단 옆에서 아이의 관심사와 호기심에 귀를 기울여주며 아이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돕는 역할을 한다. 


하영님의 이야기를 접하며 나는 작년 하반기 정말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캡틴 판타스틱'이 떠올랐다. 


작년 하반기 나에게는 최고의 영화였던 '캡틴 판타스틱'


캡틴 판타스틱에 나오는 가족은 시스템에 속하길 거부하며 아예 숲 속에서 살면서 음식까지 사냥해 먹을 정도로 훨씬 더 극단적이긴 하지만 ㅎㅎ. 매일 요가와 운동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고, TV를 보는 대신 온 가족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즐기던 모습, 교육이 독서를 통해 이루어지던 모습, 책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읽은 후에 깊이 있는 토론을 통해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를 배우던 판타스틱 가족들의 모습이 하영님과 조금 겹쳐 보였다. 이 가족은 산타클로스보다 노엄 촘스키를 더 좋아하는데, 하영님은 10대 초반에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철학을 만들어나갔고 "에밀 졸라와 같은 행동하는 지식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음악을 통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자연과 벗하며 생명의 고귀함을 깨달았습니다. 돈에 관심이 생길 무렵부터는 세계의 화폐를 수집하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했습니다.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그들이 기뻐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할 때 함께 눈물 흘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옳지 못한 일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 머리로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법, 그리하여 사람들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지은이의 말 중 -


하영님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대신 주변 모든 것들로부터 배움을 얻었다.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곤충학자를 꿈꾸기도 했고, 장수풍뎅이 분양 사업을 벌이기도 하고, 주식투자를 해보기도 했다. 88일간 카우치서핑과 거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홀로 유럽 여행을 했고,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나 고민이 생겼을 때는 인생의 멘토들을 찾아 나섰다. 15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뉴스를 접하기 위해 홍세화 선생님과 함께 불어로 르몽드를 읽는다. 이 모든 과정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이 학교"인 언스쿨링 덕분인지 하영님은 일찌감치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호기심에 따라 움직이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과 그에 필요한 능력


이미 자기만의 철학이 꽤 견고하게 자리 잡아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고 만들어나가고 있는 하영님에게도 불안함이 엄습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남들은 모두 정해진 길을 따라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데, 자신은 혼자 길 밖에서 그것도 수풀이 가득한 곳에 홀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는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시기에도 책을 통해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홍세화 작가의 <생각의 좌표>를 읽으며 그는 생각을 정리했고 다시 삶의 방향 설정을 할 수 있었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은 여러 사람이 꾸는 꿈이지만 실제로 그걸 원하는 만큼 실현하기란 쉽지가 않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도 많고 현실의 벽에 자꾸만 부딪히기 때문이다. <생각의 좌표> 홍세화 작가에 따르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가질 것. 이 능력이 없으면 세상은 아예 얘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능력이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그 보잘것없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영님의 책 속에서도 소개가 되지만 저자와의 북 토크 시간에도 또 소개가 될 정도로 하영님에게 영향을 준 말인 듯했다. 나에게도 마음에 와 닿기도 하고, 새겨듣게 되는 말이었다.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외부적 방해 요소가 있을지언정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생기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가 인정한 나의 능력이 보잘것없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가장 중요한 것들 -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들 - 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현실과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 보면서 행동하게 될 테니까.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는 서른 살 까지는 <생각의 좌표>에서 말하는 이 능력을 키우고 그 능력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데 쓰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책 속의 스승과 찾아가는 인연

사실 나는 책을 읽기 전부터 하영님과 손미나 작가님이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직접 들어 알고 있었다. 손미나 작가가 하영님으로부터 메일을 받고 까무러치게 놀랐던 이야기부터 하영님이 걸어온 길을 알게 되며 어떻게 교육받았는지 더욱 궁금증이 생겨 하영님의 부모님까지 뵙게 된 이야기까지. 

손미나 작가와 임하영 작가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책을 들고 찰칵! 사진은 instagram.com/minaminita1202

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말 재미있게 들었었다. 인생에 고민이 생겼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보는 것도, 그리고 그 손을 잡아 주는 것도 모두 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두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될 인연이 아니었을까.


손미나 작가뿐만 아니라 홍세화 작가와도 하영님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데,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은 모두 책 속에 들어있으니 직접 한번 읽어보시길. :) 10대 때 하영님이 보낸 메일도 압권이지만 홍세화 작가와 손미나 작가 두 분이 보낸 답신 역시 멋지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 중 책에 없는 이야기라면, 손미나 작가와 이영미 에디터가 하영님의 집을 방문했을 때 어떻게 교육시켰냐는 물음에 부모님은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저희는 아무것도 가르친 게 없어요. 그냥 조금 도와줬어요."


와. 절로 감탄사가 나왔던 것 같다. 이 답변은 얘기를 건너 듣는 나에게도 꽤 긴 여운을 남겼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직접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는

진짜 공부의 의미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나면 공부도 끝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나이브한 생각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죽을 때까지 전혀 공부를 하고 싶지 않은가? 이 질문은 공부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험은 별로 보고 싶지가 않다. 시험 보는 것 자체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는 시험이 아니다. 공부를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오히려 괴롭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심이 가는 것을 파 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궁금한 것을 찾아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고문에 가까울 것 같다. 언어를 배우는 것도, 여행에서 뭔가를 느끼고 책을 읽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음악을 듣고 보고 연주하고 춤을 추는 것,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드는 것. 이 모든 게 다 공부인데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모든 '배움'이 끝난다면 얼마나 삶이 무료해질까. 


우리 엄마는 요새 스페인어와 일본어 공부에 빠져있다. 언어를 배우며 그 나라의 드라마를 보고 동화책을 읽기 시작한 엄마는 매우 즐거워보인다. 지난번 'Big Magic' 책을 읽고 소개했던 90살의 할머니가 기억나는지. 80살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 10년 후인 90대때는 전문가가되어 있던 그녀. 공부는 배움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우리를 '나이가 숫자일 뿐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공부다.


하영님에게 싸인 받는 꼬마 독자들 (셋다 너무 귀엽...)


나는 하영님처럼 학교를 안 다닌 것은 아니지만, 남들은 안 해봤을 법한 꽤나 독특한? 경험이 많은 편이라 하영님이 가진 공부에 대한 생각에 많이 공감한다. 나는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학교에 가는 것도 무척 좋아했지만, 시험을 보고 돌아서면 잊어버렸던 지식들 보다도 당시에 읽었던 책이나 친구들과의 대화, 자연, 음악, 책 등 다양한 세계 안에서 놀면서 얻은 경험들이 사회로 나와 일을 하면서도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더 큰 발판을 마련해줬다고 생각한다. 


하영님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진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는 획일화된 기준에 맞춰 줄 세우기 급급한 마음에 정작 진짜 중요한 것 '그래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너무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누구를 위한 공부이며,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은 누구를 위한 길인가. 


하영님이 말하는 공부는 '머리에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궁금증을 발견하고 내 나름의 답을 내려보는 것이다. "1등이 아닌 부끄러움을 아는 공부"를 해 지식만 많이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길러야 한다. 하영님이 지금까지의 경험을 진솔하게 적어 내려간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읽어보면, 공부에는 딱 한 가지 방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떤 방법이 더 좋고 나쁘고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이 책은 그저 우리에게 길 밖에서 출발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진실된 목소리로 전해주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알려줄 뿐이다. 


나에게 옳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면 수많은 옵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다르다. 나에게 옳은 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공부고, 그렇게 수많은 선택이 모여 나만의 길이 완성된다. 


이 시대의 많은 기업가와 지식인들은 이미 많이 변한 시대에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교육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옵션에 대해서 얘기한다. (대학교 때 세스 고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학교에서 와서 한다는 소리가 학교를 당장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하영님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학교에 다니지 않고도, 규정된 시스템에 속해 있지 않고도 얼마나 멋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가 증명이 된다. 그래서 하영님이 가진 경험들은 우리의 다양한 편견을 깨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은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과 다르게 출발했지만 멋지게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며 순항중인 하영님이 앞으로 가게 될 길도 기대가 된다. 무한 응원을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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