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 관한 이야기 1
엄마와 나는 달콤한 딸기 요플레를 먹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는 기억 속에 없지만, 그 사건의 시작은 분명 달콤했다.
“누나, 엄마가 옥탑방에서 자살했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른 사람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듯, 가족의 죽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항상 남 이야기하듯 말문을 연다. 흔들리지만 조금은 의외의 냉정함이 느껴지는 삼촌의 목소리가 전화기 밖으로 흘러나왔다.
엄마의 손에 있던 숟가락은 힘없이 스러졌고, 이해할 수 없는 ‘자살’이란 단어로, 슬픔과 의문이 차례대로 엄마와 나의 머릿속을 들락거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린 서로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엄마를 보며, 엄마도 나처럼 이 소식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있다고 짐작했다.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열몇 칸의 계단이 물컹하게 파도치며, 움직이려는 내 발을 움켜잡는 듯했다. 한 발 한 발, 중력보다 더한 힘이 계단에 작용하며 다리가 무겁게 계단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축 처진 엄마의 손을 잡고 힘겹게 한 칸씩 내디뎠다. 내가 잡은 엄마의 오른손은 축축한 땀으로 하염없이 미끄러졌고, 꼭 쥔 왼손으로는 펴지지 않는 무릎을 두드리며 재촉했다.
내 방보다도 작은 옥탑방을 들여다보니 두세 명의 사람들이 할머니 곁을 에워싸고 있었고 앉아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로 방의 조명은 얼룩져있었다. 나의 시야에는 내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할머니의 발 한 쌍만 보였다. 그 작은 발로 남들보다 더 많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려고 했던 할머니의 빠른 발걸음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엄마의 손을 더 꽉 붙들었다. 무거워진 엄마의 손을 내 겨드랑이 사이에 결박한 채, 옥탑방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자는 듯 누워있었지만 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처음 만나는 공포로 변해 내 피부로 서늘하게 침투했다. 마지막이니까. 할머니의 손을 잡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차가울까? 딱딱할까? 하지만 여고생의 용기는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할머니의 손을 잡으려던 내 손은 몇 초간 주저하다 파마로 폭신하게 올라온 할머니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할머니 머리카락은, 언젠가 내가 큰 빗으로 빗어드릴 때 마냥, 아직도 포근하고 보드라웠다. ‘이렇게 할머니의 마지막을 기억할 순 없을까. 따스하고 폭신하게.’
할머니 나이 68세 때의 어느 날, 늦은 저녁의 일이었다.
삶에 애착이 강했던 할머니였다. 남들의 시선, 평가, 원망 따위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 할머니의 일상에 숨어있었던 ‘애착’이었다. 누구보다 멋지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할머니의 에너지가 가진 강인함과 뾰족함 때문에 종종 누군가는 찔리고 힘들고, 눈물 흘렸다. 그랬던 할머니가 그 애착을 스스로 포기하고 아무도 봐주는 곳 없는 영원을 택하다니.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를 만났다. 강원도 시골, 여러 형제 사이에서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할머니에게, 서울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훤칠하고 잘 생겼던 할아버지는 다른 세계에서 내려온 구원자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과 구질구질한 시골에서 나를 꺼내줄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이르러 함께했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환멸, 구원자의 무시 속에 하루하루가 힘겨웠지만, 할머니는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았다. 행복과 희망이 끝없이 작아지는 삶 속에서도, 할머니는 작은 두 발로 땅을 딛고 당당하게 걸으며 자신이 여기 이렇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음을 큰소리로 외치는 듯 보였다. 왜소하지만 곧게 펴진 허리와 열려있는 어깨, 빠른 발걸음과 큰 목소리, 내 어린 눈에 할머니는 늘 씩씩하고 또렷했다.
할머니의 구원자는 따로 있었다. 엄마보다 2살 어린 삼촌은 공부를 잘해서 어릴 때부터 전교권을 놓치지 않았고 한국 최고학부에 입학해 의사가 되었다. 마음도 따스했던 삼촌은 늘 본인보다 부모를 챙길 줄 아는 효심 깊은 아들로 자랐다. 내 기억 속에 삼촌은 존재만으로도 할머니의 모든 슬픔과 한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의 청년이었다.
삼촌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빛 속엔 사랑, 벅참, 행복, 자랑스러움, 안도,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이 박혀있었다. 하지만 평생 그 눈빛 속에 소외당한 엄마의 슬픔을, 나는 알고 있었다. 평생 기울어져 있는 사랑의 저울 위에서, 엄마는 본인의 무게를 키워보려고 평생을 바둥거렸다. 엄마의 눈빛 속에 처연하게 녹아있던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원망을 아직도 아프게 기억한다.
‘아직 더 미워해야 하는데, 아직 더 원망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군요. 이기적인 사람. 미움이 되어버린 내 사랑은 또 내 마음에만 담아두어야 하나요. 전하지 못한 이 마음을 어째야 할까요. 차라리 그냥 사랑한다고 할걸, 그렇게 한 번이라도 안아주고 보낼걸. 그러지 못해 가슴 아프게 미안한 마음은 눈물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네요.’
엄마의 원망과 쓸쓸함, 평생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 사랑과 애틋함이 눈물이 되어 할머니의 주검 옆에 흘렀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내일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