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에 관한 이야기 1
3월은 만물이 태동하는 설렘의 계절이라고들 하는데, 나에겐 겨울도 봄도 아닌 채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어색함의 계절처럼 느껴졌다. 쌀쌀하고 새침한 공기가 차가운 ‘개학 날’ 아침은 항상 가장 긴장되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그랬고, 중학교 때도 성적표 나오는 날보다 개학하는 날이 더 떨렸다. 설렘과 불길함 그 중간쯤의 감정이 나를 힘들게 했다.
아는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새로운 친구가 인사해주면 뭐라고 하지?
내 표정이 어색하면 어쩌지?
처음 만나는 사람, 생소한 장소에 대한 ‘약간의 공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옅어졌다. ‘늘 긴장되지만 결국은 별 것 아니었다’라는 경험치, 늘 익숙한 상황에 있을 수만은 없다는 ‘체념’이 공포의 감정을 조금씩 이겨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런 나의 성격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고치려 노력했다. 모르는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최대한 친절한 얼굴로 “안녕?”이라고 인사하려 했다. 처음 만나는 아이 엄마에게도 이것저것, 궁금하지 않은 것까지 물어보며 이야기의 물꼬를 터 보려 했다. 더 밝은 척, 더 친절한 척 애썼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첫 만남에 호감을 얻어 좋은 관계로 발전되기도 했고, 그런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니까 내 성격도 변하는구나. 성격이 바뀌니까 좋은 일도 많네?!’ 하며 살아갔다.
극복한 것만 같았다. 버리고 싶었던 그 긴장감도 다 사라진 것만 같았다. 한동안은 그렇게 친절의 가면이 내 본연의 얼굴이라 믿고 살아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 가고 애써야 하는 상황이 줄어들면서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나’로 빠르게 복귀했다.
성인을 넘어서 어른이 된 지금도 내가 꺼리는 것은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다. 짜장면집에 전화를 걸어 음식 시키는 일, 편의점에서 계산하는 일, 카페에서 커피 시키는 순간에 이상하게 난 몸이 조금 쪼그라들면서 피하고 싶은 긴장감이 올라온다. 아이들 학교 상담 기간에 담임선생님 처음 만나는 날에는 마치 학생이었던 시절 개학 날처럼 약간의 공포 같은 긴장감이 그날을 채운다. 학부모 모임이 있는 날엔 제일 구석에 앉아서 누군가 먼저 물어볼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투명인간처럼 앉아있다. 아직도 난 내가 만든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 얼마 전, 함께 글 쓰는 분들과의 카톡방에서 ‘번개 모임’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함께한 지 3개월가량 되었을 때의 상황이었고, 매일매일 톡방에서 오가는 이야기, 진심이 담긴 그분들의 글을 읽고 나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글을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다져왔다. 그분들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내적 친밀감은 두껍게 쌓여갔다.
난 ‘이상하게도’ 그 ‘번개 모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분이라도 더 만나고 싶어서 내가 솔선해서 시간이 되는지 물었고, 선약이 있다는 분께는 ‘그 선약보다 우리 만남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하는 뉘앙스로 만남을 은근히 강요했다. 평상시의 내 모습 같지 않게 갑자기 폭발적인 적극성이 드러났고 만남이 성사되지 못할까 봐 조금 초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성사된 번개 모임에 나가는 날 아침, 긴장감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내가 1등으로 도착하면 어쩌지? 뭐하며 기다리지?’ 하는 긴장감이 오랜 병마처럼 다시 도지는 듯했지만 이내 설렘으로 맑아졌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담아 1대 1 편지를 나누었던 ‘펜팔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궁금함, 기대감, 설렘이 느껴졌고, 그런 내가 살짝은 생경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러 가다니, 내가 정말 변한 걸까? 하는 물음에, 만남의 장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내가 변한 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난 짜장면집에 전화를 거는 것보다 배달 앱이 편하다. 카페에 키오스크가 생겨서 좋다. ‘저기요’하지 않고 콜버튼을 누를 수 있는 음식점이 안심된다. 하지만 함께 읽고 쓰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 또한 행복하다. 살아온 길도 목적지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솔직할 수 있는 만남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처음 보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긴장감보다 설렘이 컸던 경험치가 하나 추가됐다. ‘설렜고 그것은 별 것 아닌 게 아닌 특별하게 붕 뜨는 감정과 경험’이었다는 기억이 나의 다른 면을 밝혀준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에 대한 걱정보다 상대방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로 나를 반겨줄지 더 기대되어 설렜던 경험, 그날은 정말 순수하게 행복했다. 만남의 번개, 또 맞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