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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Oct 18. 2024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변화에 관한 이야기 1

 다이어트 목적으로 운동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운동은 다이어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거나, 다이어트에 실패하면 중단되었다. 꾸준하게 1년 이상 지속한 운동은 어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시작한 수영이 전부였다.


 2020년은 달랐다. 그 해 어느 날 집에서 갑자기 시작된 운동이 현재 만으로 4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운동을 좋아한 적도 없고 잘한 적도 없었지만 4년 넘게, 주 5회에서 6회, 꾸준하게 해 왔다. 운동하기 귀찮은 날은 있었지만, 특별히 슬럼프라 여길 만한 위기는 없었다.      

 



 2019년 인류는 ‘코로나 19’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단어도 생소했던 ‘팬대믹’이라는 공포 속에서 인류는 모두 평등하게 자유를 반납해야만 했다. 멈춰진 듯한 시간 속에서 삶의 공간도 제한되었고 얽혀있던 삶의 실타래는 더 꼬이고 꼬인 채 덩그러니 놓여져 실체를 숨기지 못했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 자신의 삶을 꾸역꾸역 맞추어 살아가야 했다. 


 코로나 19가 시작된 지 7개월 후쯤, 무력할 대로 무력해져 소파에 길게 누워있었다. 아이들은 함께 놀아달라고 아우성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전신에 힘이 빠져버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일어나 화장실까지 걸어갈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의 끝은 ‘이러다 내가 여기서 조용히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상상에까지 닿았다. 죽을 만큼 무력했고, 놀라울 만큼 내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다음 날도 소파의 가장 아래까지 닿은 느낌으로 무겁게 누워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뇌의 한구석이 아주 작게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반짝임을 느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난 벌떡 일어나 유튜브를 켜고 가장 유명하다는 홈트 영상을 보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어이없이 시작된 운동은 어찌 된 일인지 그 후로도 계속됐다. ‘완전하게 내 의지로 제어되는 시간’이라는 선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은, 내 삶도 조금씩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줄 것 같은 기대감과 희망을 품게 했고, 그 감정으로 하루, 일주일, 한 달, 조금씩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내가 홈트할 때 쓰는 덤벨

 운동 시작하면서 체력이 좋아졌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가장 체감되는 부분이다. 약속이 잡힌 날에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느라 어떤 사건이나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던 나는, 이제 하루에 약속 두 개 이상도 소화한다. 가족들과 외부활동을 할 때 마지막에 체력이 남는 사람은 나뿐인 경우도 종종 있다. 


“야 너네, 늙은 엄마보다도 힘들어 보인다?” 


 맞는 말이라 부정 못 하는 아들들의 표정도 볼만하다. 


 체력은 마음에 여유를 가져왔다. 내 에너지가 남으니 비로소 상대방의 상황도 들여다볼 마음이 생긴다. ‘힘들어 죽겠어. 나 지금 지친 거 안 보여?’하며 나 좀 봐달라는 불만도 언제부터인지 종적을 감췄다. 표정과 태도에 여유가 생겨 더 젊어지고 더 예뻐지는 듯한 착각도 든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인생은 조금씩 옳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건강해졌고, 조금씩 내 인생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운동이 꾸준하게 지속되면서 글쓰기에도 도전해 볼 마음이 생겼다. 나란 사람도 무언가에 빠져 오랜 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좀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끌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 인생은 또다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더 나를 들여다보면서 나를 알게 되고 또 나와 친해졌다. 나와 친해지고 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니 더 열심히 운동하고 싶어졌다. 운동이 주는 활력과 에너지를 놓치고 싶지 않아 더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그 열정은 다시 단단한 내적 에너지가 되어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게 도와주었다.




 운동 4년 글쓰기 1년의 습관, 아직 꾸준함이 내 삶의 전반을 지배한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하지만 나에게 두 가지의 정체성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건강한 사람’, 그리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그것만으로도 난 내가 기특하다.     


습관이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될 때,
그것은 습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해야 한다가 
하고 싶다로 바뀌기 때문이다.
백영옥 작가의 <힘과 쉼> P49     


 난 ‘운동’을 만나면서 인생의 분기점을 지나온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늘 가던 길이 아닌 조금 다른 길로 들어선 것 같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 스스로 강렬하게 변화를 원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여기 익숙한 이 길로 계속 걸어가면 점점 더 잘 못 된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라는 불안감, 이렇게 영원히 길을 잃게 될 것 같은 불길함을, 그때의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나이 45살, 실제 근육이 있어야 ‘글 근육’도 ‘웃음 근육’도 생기는 나이다. 어느 정도는 몸이 마음을 지배하는 나이에 와버렸다.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매일 하고 싶다. 글쓰기보다 더 성의 있게 운동에 매달리고 싶다. 몸에 에너지가 있을 때 비로소 글도 써진다를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이 선순환의 열차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계속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4년을 해왔기 때문에 계속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자신감이 있다. 내 삶을 내가 바꿔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이제 조금씩 생겨난다. 그것만으로도 난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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