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다. 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오른다. 모든 시곗바늘을 수능 날에 고정시켜 두면서도 그날이 오지 않기만을, 그저 간절했던 기도. 공부를 한 날도, 별로 못 한 날도 힘들긴 매한가지였던 하루하루. 나와 싸우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가, 매일 지고 또 지고를 반복했던 나날들.
“시험만 딱 끝나봐라. 그때부터는 신나게 놀아도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까. 응?”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이 시절이 참 좋았다 싶을걸? 이때로 돌아오고 싶다.. 그럴걸? 그러니까 좀만 더 힘내.”
지금 와서 돌아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 여러 번 했었으니까.
당시엔 그런 위로들이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펴고 앉아 있는 게 더 위로되어서 매일 새벽처럼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갔었다. 친구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더 씩씩한 척했던 나였지만, 친구들의 약한 모습은 보고 싶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너도 많이 힘들구나.’ 하는 공감, 그 공감만이 날 버티게 했던 고등시절이었다.
인생의 조언 따위는 필요 없는 것 아닐까? 이 어둡고 힘든 순간이 지나면 바로 다음에 동이 튼다 해도, 그 사실이 지금의 나를 딱히 위로하는 건 아니다. 지나고 나서 ‘그렇게 힘들 일이 아니었어.’하는 진단도 세상 쓸데없는 것 아닐까? 결국 그 시간을 어렵게 살아 내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으므로. 그러므로 모든 위로의 지점은 그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너도 그랬구나.’하는 공감이 아닐는지.
(이수지 『만질 수 있는 생각』 p112)
수능 날 새벽 3시, 밖이 소란스럽다. 푹 자야 시험을 잘 보는데, 도대체 누구길래 수험생의 소중한 잠을 방해하는지 가만히 들어보니 아빠 목소리다. 거실에 아빠는 술에 취해 고개를 떨구고 있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제발 좀 조용히 하라며 단도리를 하고 계신다.
“어! 윤희 깼구나. 니 내일 시험 못 봐도 되니까 그냥 잘 갔다만 와라. 그거 못 본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니까…. 아빠 걱정은 하지 말고. 알겠나?”
최대한 힘주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알코올의 방해로 자꾸 뭉개지던 아빠의 발음. 그래도 난 그 말이 최고의 위로였다. 못 봐도 된다는 말, 그래도 세상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인생 선배의 단단한 위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만큼 울림 있는 그 단단한 위로가 참 좋았다.
이젠 내가 인생 선배로서 얼음보다 차가운 평가의 시선 앞에 멈춰 선 후배들을 위로하고 싶다.
“얘들아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쫄지 마. 오늘 시험 망치면 당연히 속상하겠지만, 좌절하진 마. 그냥 인생의 또 하나의 챕터가 시작된 거에 불과하니까 기운 빼지 마. 인생, 이제부터 또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