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시부모님과 3박 4일

by Libra윤희

둘째가 태어나고 100일이 채 안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100일 잔치를 서둘렀다. 남편의 해외발령이 결정 나고 가족들과 함께 아이의 100일 기념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을 공항으로 보내면서, 아직은 어린 유치원생 첫째와 젖먹이 둘째를 안고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던지...


해외파견은 2년 정도로 예상했었지만 남편의 해외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해외에 있을 때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2,3주에 한 번은 꼭 시댁을 방문했다. 힘들었지만 남편이 없어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자주 보여드리고 싶었다.


토요일에 시댁에 방문을 하니 오기로 했던 작은집 식구들이 안 보인다.

“걔네, 하와이로 여행 갔다네. 우리끼리 맛있는 저녁 먹자. 할머니가 맛있게 고기 구워 줄게~.”


4 가족이 함께 해외로 여행 갔다는 소리에 갑자기 마음이 갑자기 쓸쓸해졌다. 2년 동안 그렇다 할 여행을 떠나지 못한 건 여행을 많이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남편 없이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을 엄두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끔 친정식구들과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기도 했었지만 아마도 나는 4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고 싶었나 보다. 무척 덤덤하게 2년을 지내온 나였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저녁식사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우리 같이 제주도 여행 갈까 하는데 어떠니? 애비 없어서 여행도 못 다니고 해서 아빠가 마음이 많이 안 좋아요~. 좋은 호텔 예약해서 엄마랑 나랑 니네 셋이랑 해서 비행기 한번 타자!!"(아버님은 본인과 어머님을 '아빠, 엄마'라고 지칭하신다.)

그날 저녁 내 표정에 마음이 비쳤던 걸까.. 아버님의 전화가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다. 솔직히, 부담스럽고 걱정되기도 했다. 남편 없이 시부모님과 3박 4일은 상상해보지 못했다.

'나... 괜찮을까?'




떠나는 날 아침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혼자 두 아이들 챙기고 짐정리하고 대충 집청소, 집단도리까지 하고 나가려니 내 정신이 어디로 달아난 듯, 아득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몰골을 하고 집밖으로 나가는 건지 스쳐가듯 거울 비춰볼 여력도 없었다. 2년간 묵은 짜증이 발끝에서 올라와 브레이크 없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머님, 아버님 만나면 화도 못 내니 쏟아낼 거 다 쏟아내고 출발하는 거야. 그래~ 그래야 나도 살지~.'


스스로를 위안하면서도 출발부터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걱정을 하든, 이미 여행은 시작됐고 그냥 시간의 흐름에 상황을 맡겨보는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아는 척도 많은 유치원생 첫째, 능력에 비해 하고 싶은 게 너무 과한 2살 둘째, 남편 없는 독박 육아로 극심한 우울감과 자기 비하에 빠져있는 나. 우리 3 가족은 서로 다른 기대감과 걱정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티켓팅하고 비행기에 타고 보니, 어머님 아버님 표정도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두 어르신과 가족으로 연결되면서 이런 조합으로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었고, 큰며느리인 나는 애교와는 거리가 있는 타입이라 적잖이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다. 거기에 천방지축 손자 둘까지... 다정하게 시작하지만 이 여행의 끝에 우리가 어떤 표정으로 헤어지게 될지... 부디 무사 귀환만을 바라는 나의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출발됐다.




아버님은 말씀하신 대로 꽤 근사한 호텔을 예약해 두셨고, 공기에서 느껴지는 여름 제주도의 비릿한 바다내음과 이국적인 분위기에 나의 기대감도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 조금 기대해도 되려나?, 여름 제주도, 나 처음인데?'


잠시 후 체크인 하시러 가셨다 돌아오시는 두 분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두 분이 싸우신 건지 어머님은 몹시 화가 나셨고 아버님은 미안한 얼굴을 하고 계신다.


상황은 아버님이 예약을 하실 때 우리 5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큰 방으로 예약을 하셨고, 때는 초 성수기여서 당일에 2개의 방으로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즉 이 말은 내가 꼼짝없이 아버님 어머님과 같은 방에서 아이들과 3박 4일을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려, 남편도 없이!!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고 싶었던 어머님은 예약을 그런 식으로 했냐며 역정을 내셨고 나도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소심하고 낯가림 심한 나에게 이런 상황은 너무도 가혹했다. 여행이 고되고 조심스러워도 숙소에 들어오면 다 팽개치고 편안한 포즈로 자유를 즐기며 모처럼의 '좋은 호텔'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정말.. 아침에 한바탕 소리라도 지르고 나오길 잘했다..'


여행이 끝나기 전까지는 24시간 풀코스로 이미지관리에 들어가야 했다. 괜찮겠냐며 손을 잡으시는 어머님께 쿨한 얼굴 장착했었는데.. 잘 전달이 되었었는지는 모르겠다.


첫날밤, 나는 다소곳하게 여행에 대한 모든 기대감을 내려놓고,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려 안간힘을 썼다. 최대한 아이들 챙기면서 어른들께 불편드리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무사히 3박 4일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주도의 3박은 서울의 3박보다 빠르게 가길.. 서울에서 한껏 느려져도 좋으니, 시간아! 제주도에서만은 빨리 흘러가주면 안 되겠니..?'

아버님은 생각보다 꼼꼼하게 여행계획을 짜셔서, 자동차도 렌트하시고, 아쿠아리움, 음식점까지 예약을 해두셨다. 덕분에 심심할 틈 없이 제주도 여행을 완성해갈 수 있었다. 남는 시간은 호텔 수영장에서 지겨울 때까지 첨벙 대고 아이들은 돌아와서 쓰러져 자기 바빴다.


반면 아버님 어머님은 일찍 누우셔도 좀처럼 잠을 청하지 못하셨다. 한알만, 한알만 하며 서로 나눠 드시는 약이 두 분에게 꼭 필요해 보였다. 모두가 잠든 후에나 꼬르륵 잠으로 빠져드는 나는 두 분이 한알씩 드신 후 주무시는 소리가 들리면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분 모두 불면증이 심해져서 수면제를 드신다고 하셨다. 한방에서 같이 자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이었다.

며느리 힘들까 봐 유모차 운전은 아버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식당에 갈 때마다 어린이 의자에 앉기를 거부하는 둘째와 천방지축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궁금이 첫째를 데리고 시작한 시부모님과의 3박이 무사히 흘렀다. 호텔방에서 자유롭게 화장실도 못쓰고 편하게 한 번 누워보지도 못했지만 나만 불편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려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렇게 까불기만 하던 첫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나 만큼 아이에게도 긴장되는 여행이었을까? 고열로 짜증을 내며 축 쳐져있는 아이를 붙들고 화르륵 나의 짜증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왜 방은 한방을 잡으셔가지고, 사람을 한 번 편하게 쉬지도 못하게 하고. 남편도 없는데 도와달라는 말 한 번을 편하게 못하는 고행의 3박 4일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여행이었냐고~. 여행 끝나자마자 열나는 애 봉양하게 생겼네...!!'


말은 못 했지만 내 짜증은 표정이나 안색에서 드러났음이 분명했다. 마지막까지 어머님 아버님도 내 눈치만 보다 끝나게 된 여행이었다. 분명 행복했던 순간, 감사했던 순간, 추억으로 남을 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당시 내 깜냥은 딱 그 정도였다.


서울로 돌아온 다음날 큰아이 괜찮냐며 전화를 주신 어머님. 근데 아픈 건 내 아들만이 아니었다. 아버님도 여행 후유증인지 잇몸이 모두 부어서 치과에 가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또 죄송한 마음이 몰려왔다. 우리에게 즐거운 여행, 오래 추억이 될 만한 여행을 선물하고 싶으셔서 얼마나 마음 쓰고 스트레스받으셨을까.


"아버님~ 같이 여행 가자고 말씀해 주실 때 저 많이 든든했습니다.

지금도 큰애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갔던 제주도 또 가고 싶다고 종종 얘기해요. 아이들에게 사진 보여주고 추억하고, 오래 기억에 남을 소중한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우리 여행 한번 다시 같이 가요~. 아버님의 큰 아들, 해외발령 이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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