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박애희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었던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가질 수 없었던 기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나서야, 해낼 수 없었던 수많은 일들 앞에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오래도록 걷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멋진 일이라는 것을. 인생이란 내내 그렇게 우리에게 한계를 가르치며 겸허하게 살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112쪽)
인생은 너무나 자주 내가 기대한 엔딩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처음엔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잘난 사람이, 나보다 너 많이 가진 이가, 나보다 더 운이 좋은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현실.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꾸었던 꿈들 중 몇 가지나 이룰 수 있을까. 아니, 인생이라는 무대에 내 자리가 있기는 한 걸까. (중략) 내 자리인 줄 철석같이 믿고 기쁨에 들뜨는 날도 있지만, 어느 순간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를 절절하게 외치며 무대 밖으로 밀려나는 날도 있다. 우리는 꿈의 그라운드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걸 확인하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다. 그래도 모두 묵묵히 살아간다. (150~151쪽)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결심이다. 때로 그건 나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일 앞에서 끝까지 버티겠다며 괴로움을 참아가며 애쓰는 것보다 조용히 손을 놓고 내가 다치지 않는 법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결심일 수 있다. 모르는 문제만 풀겠다고 그 문제만 잡고 있으면 아는 문제도 풀 수가 없다.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견디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 말고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266~267쪽)
생각해 보면 아프기만 한 시간도 아니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누가 나를 이끌어주길 기다리지 않았고, 열심히 시간을 바쳐 성실하게 일을 했고, 그 돈으로 엄마에게 적지 않은 생활비를 드릴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던 시간이었다.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글쓰기의 성실함에 대해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상처받고 훌쩍이면서도 열심히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지난날의 어린 나에게 이제라도 말해주고 싶다.
“애썼어. 진짜 수고 많았어. 이제 조금 편안해져도 괜찮아.” (256~257 쪽)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다.
인생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지만,
누구나 언제든 다시 인생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3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