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화낼 경우, 거기에는 대개 ‘이러이러해서 화난다’는 줄거리가 있다(그것이 적절한지 어떤지는 둘째 치고). 그러나 여자는 내가 본 바,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평소에는 특별히 눈초리를 추켜올리지 않고 온화하게 넘기던 일도 하필 화나는 시기에 걸려버리면 화를 낸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화를 낸다. 말하자면 ‘지뢰를 밟은’ 것이다.
신혼 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횟수를 거듭하는 동안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하고 대충 그 구조를 알게 됐다. 상대가 화를 내면 방어는 단단히 하되, 얌전히 샌드백이 되는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를 정면으로 맞서봐야 어차피 이길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현명한 뱃사공처럼 그저 목을 움츠리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하며 무지막지한 태풍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18~19쪽)
이렇게 하루키를 엄청 좋아하면서도 나는 그의 소설 중 대부분이 당최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예전부터 ‘양 사나이’니 ‘쥐’니 할 때부터 수상하더라니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등으로 나아가면서 점점 더 내가 뭘 읽은 건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최근작인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무려 ‘메타포’와 ‘이데아’가 직접 등장해서 말까지 한다(진짜 이 대목에서는 생애 최초로 중도포기할 뻔)! (문유석 <쾌락독서> 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