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구정 설날 둘째 아이 출산으로 산후조리원에 있었던 나는 못 가는 건 당연하지만 큰며느리 된 도리로 시댁에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사정이 이렇게 되어 찾아뵙지 못하네요. (아싸! 둘째 덕분에 설날에 쉬다니 둘째는 효자인가 봐.)
죄송해요~ (죄송이 뭔가요. 먹는 건 가요.).”
어머님 애씀으로 어색하지만 밝은 목소리
“그래 내년부터는 니가 차례상 차릴 거니까 올해는 쉬어라.”
“....... 네?”
시엄마는 '시'엄마일 뿐 엄마가 될 수 없다. 그건 알고 있었지만.
“아이고 얘야, 죄송은 무슨.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너무 고맙다. 푹 쉬면서 아기 잘 키우고 나중에 만나자.” 이 정도는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곧장 거대한 재해가 닥쳐올 것이 분명해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과 야간 수유 호출로 얼마나 잠을 설쳤던지.
뼈에 사무치는 그날의 통화. 그날의 통화는 말투 하나하나 발음 하나하나 기억 속에 슬로비디오처럼 남아있다. 아마 내 영혼은 위험을 직감하고 무의식 속에 이 장면을 길고 정확하게 저장해 놓은 모양이다.
내년
차례상
니가
경고! 위험! 코드 레드! 코드 레드!
그런 통화가 있은 후 막 태어난 둘째 덕분에(효자 확정!!) 몇 년이 흘러갔고 거짓말처럼 차례와 제사에 필요한 제기는 우리 집으로 순간 이동되었다. 어머님네, 동서네보다도 작은, 제일 작은 우리 집에 날만 되면 복닥복닥 모인다.
왜 왜 제일 작은 우리 집에 모이냐고.
왜 40대 초반인 내가, 본 적 없는 시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냐고.
시부모님 다 살아 계신데.
왜 왜 왜.
‘응, 니가 그 남자랑 결혼해서 그런 거야. 그 장남. 걔.’
인간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심지어 자기 태어나는 날과 죽는 날까지 선택할 수 없다. 다행이 인생의 반을 함께할 남편은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었는데, 난 그 장남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추석, 설 차례와 제사가 모여있는 9월~2월까지는 나에게 잃어버린 반년이 되었다. 9월 즈음되면 아들들도 직감하는 것 같다. 엄마의 반년이 시작된다는 것을. 남편은 슬슬 눈치를 챙겨야 함을 아는 눈치다. 일단 9월이 되면 작은 선물이라도 건네는 그 장남의 마음을 알면서도 받아주기 싫다. 그 장남은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말이던 해야 한다. 나도 그런 걸 알기 때문에 마음속 불덩이를 잠깐 잠재우고 일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피하고 싶지만 너무 와버린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길로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
올해도 곧 시댁 제삿날이 온다.
지혜롭고 인자하고 너른 마음의 큰 며느리는 단단하게 박제되어 영영 안 열어보는 창고에 처박힌 것 같다. 분명 현대 사회에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지 오래일 테지. 난 나 생긴 대로 사는 거지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매번 애쓰고 있다. 잘 치러 내려고, 이겨내려고. 꺼져가는 마음의 불씨에 매일 쏘시개를 대가며 힘내라고 토닥이고 있다. 매번 그날이 오기 1달 전부터 스스로를 달래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등과 같은 조언들 마음에 새기며, 제사 날 기름 냄새에 힘겨워할 미래의 나에게 속이 뻥 뚫릴 사이다를 건네고 있다.
제사상 싸며 바쁜 척 그 장남 씨
'덤덤하게 이날을 지낼 날이 분명 올 거야.
아직은 난 1단계지만 3단계 4단계도 있을 거야.
어? 제사가 내일이었네? 하는 날도 오겠지?
심지어 제사 날을 까먹어서 그 장남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반년도 올 거야. 오겠지?'
성격 탓이니 편하게 생각하려 노력하라고도 하고, 차라리 교회를 다니라고도 하고, 대충 하라고도 한다.
아무래도 그런 방식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 묵묵히, 익숙함이 느껴질 때까지 동굴에서 기다리면서 그 장남도 동굴에서 못 나가게 붙드는 게 내 스타일이다. 하지만 대충 하지도 않을 것이고,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릴 것도 아니다. 나에게 어느 날 떨어진 폭탄, 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 참이다.
제사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가면 나는 항상 두 팔을 올리고 '끄읏'하는 외침을 뱉어 낸다. 점프도 살짝 곁들여서. 아들들은 나의 그 얼굴이 좋다고 한다. 엄마의 ‘끄읏’ 소리에서 느껴지는 그 행복한 해방감을 전달받고 그들도 안도하겠지.
‘어후, 우리도 눈치보기 끄읏! ’
작은아이 “엄마 신나 하니까 좋다!” 밝은 웃음과 함께.
큰아이 “엄마, 나 게임.” 나도 노력한 거 알지? 하는 표정.
그 장남 “자기 고생했어.” 그리고 따뜻한 포옹.
내 눈치 보느라 고생했어. 내 푸념 들어줘서 고마워.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오빠가 나 없이 갈비찜도 할 수 있는 때가 오면(안 올 것 같음), 눈치 안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