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집들이가 있던 날, 양가의 부모님들이 함께 방문하셨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초보 주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기억된다. 유난히 무뚝뚝한 친정 아빠와 시어머님. 하지만 정적을 참지 못하는 다른 두 분이 계셨기에 분위기는 아슬아슬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정적을 싫어하는 최고참 아버님께서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시던 중, 급 소재가 고갈되었고, 찰나의 침묵으로도 분위기는 빠르게 냉각되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시작된 아버님의 뜬금포 같은 말씀.
“여기 있는 수납장을 똑같은 걸로 하나 더 사서 놓아야겠다. 짝이 안 맞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별 뜻 없이 던진 ‘정적 깨기 용’ 대사였지만, 혼수를 마련했던 친정 부모님들의 얼굴은 감추기 어려운 당황스러움으로 붉어졌다. 그날 이후로 아버님은 ‘까칠남’ 친정 아빠에게 ‘찍히게’되었고 한동안 친정식구들과의 대화에서 아버님은 혼수를 지적질 한 ‘매너 없는 사람’으로 종종 등장했다.
한국에서 친정과 시댁 사이가 더없이 좋은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 정도 오해와 기싸움은 예상했던 딱 그 정도였다. 서로의 마음속에 묻어 두고 그렇게 ‘가깝고도 먼 사이’로 지내기에 적당한 정도의 사건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 돌, 혹은 양가 다른 가족들 결혼식, 장례식, 이런 굵직한 행사 때만 만나서 잘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안타깝게, 두 분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애주가’라는 것이었다. 마침 친정 아빠의 사위이자 아버님의 아들인 나의 남편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었고, 아버님은 본인께서 대신 친정 아빠의 술친구가 되어드리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술자리가 몇 차례 계속되면서 두 분의 만남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외향적인 아버님께서 친정 아빠께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와 함께 계절에 맞는 사진도 추가하여 톡을 보내신다.
“날이 아주 좋습니다. 시간 되실 때 연락 주세요. 한 번 봬야 지요.”
처음엔 다소 불편한 기색이셨던 아빠도 못 이기는 척 슬쩍 톡을 남긴다.
“저번에 같이 오셨던 최 회장님은 언제 시간이 되시나요? 같이 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분도 추가되어 자리가 풍성해지는 분위기였다.
아빠가 아버님을 만나러 외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불안과 짜증이 몰려왔다.
유난히 술을 사랑하시는 두 분이 만나 분위기가 무르익고 슬슬 속마음이 나오기 시작할 때, 그 ‘매너 없는 사람’ 사건이라도 불쑥 등장하면 어쩌나. 아버님이 또 정적을 깨려다 이상한 말씀을 하셔서 영영 ‘매너 없는 사람’으로 끝나버리면 어쩌나. 사돈 지간에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는데, 묘한 경쟁심으로 과음이 되어 추태가 되고 사건이 되면 도대체 누가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 술자리에 없었지만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두 아버지들의 술자리 귀퉁이에서 벌을 선 기분이었다. 술자리 다음 날에는 아빠에게 전화를 드려 무슨 이야기가 오갔냐며 캐물었다. 별문제 없이 즐겁게 만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 만남에서 여행계획을 세우시더니 양가 부모님들은 여행도 다녀오셨다. 아빠는 여행에서 불편한 부분도 있고 또 다시 같은 조합으로 여행을 가진 않을 것 같다 하시고는 얼마 후 함께 또 여행을 다녀오셨다. 애주가라는 것 외에는 딱히 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 두 분의 만남이 며느리이자 동시에 딸인 나에게 반가울리는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빠는 아버님의 연락을 내심 기다리신 것 같다. 딸내미가 자꾸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니, “나도 불편해서 다음은 없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음이 오면 아버님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겠지. 어쩌면 아빠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을지 모른다. 그건 정말 이제 나도 모르겠다.
“아빤 싫다면서 왜 자꾸 아버님 만나러 나가는데?”
“너, 가족 중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 느낌인지 아냐? 문제가 생겨도 상의할 데도 없고 기댈 데도 없고. 그래서 난 너네 아버님 만나는 게 좋더라. 좋은 분이잖아.”
그 말씀에 그 간의 짜증 났던 마음이 한 꼭지 한 꼭지 모두 죄송함으로 변한다. 단순히 술친구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가족 내 최고참으로서의 어려움과 외로움도 나누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어르신’이 되어드리고 있었던 걸까.
결혼한 지 15년이 지났다. 아빠는 요즘도 가끔 아버님을 만나러 나가시는 것 같다. 하지만 만났다는 사실을 두 분 모두 나에게 말하지 않으신다. 친구 만나러 나가는데 굳이 나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는 듯.
언제부터인지 나도 두 분이 만나셔서 술잔을 기울이셨다 해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친구끼리 만나셨는데 내가 그 내용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