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자꾸 사진을 찍어달라는 이유

by Libra윤희

삼촌 큰아들 결혼식 날, 친정식구 모두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꼬맹이부터 어른들 모두 결혼식에 어울리는 의상을 골라 한껏 차려입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우리 아빠도 그날은 웬일로 넥타이까지 하시고 깔끔한 정장을 입으셨다.


갑자기 아빠가 내 옆에 바짝 다가앉으시며 귓속말을 하신다.


“니가 오늘 내 사진 좀 여러 장 박아봐! 엄마 사진도 많이 찍고.”

‘평상시 사진 찍는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시며 멀찍이 프레임 밖으로 나가시던 아빠가 웬일이실까.’

“왜요, 오늘 의상이 맘에 드셨어?”

“그냥, 이렇게 차려입은 김에 사진 많이 좀 찍어놓으려고.”


그동안 사진을 너무 안 찍어 드렸나? 오늘은 좀 많이 찍어 드려야겠고 생각했다. 식장의 은은한 조명 덕인지 분위기 있는 사진도 몇 장 나왔다.


“엄마랑 아빠 좀 다정하게 가까이 좀 앉으셔봐.”


최대한 두 분 다정해 보이는 사진을 남기고 싶은 나는 두 분이 함께 계실 때를 이용해 여러 차례 사진을 찍었다. 해야 할 일은 거의 다했다 싶어 한숨 쉬는 순간, 역시나 아이들이 나를 편하게 놓아줄 리가 없다. 큰 놈은 말없이 식장에서 나가서 안 돌아오고 작은놈은 조카랑 장난질하느라 부산스럽기 짝이 없다.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그때 다시 아빠가 내 옆에 바짝 오신다.

“둘이 같이 말고, 따로따로도 여러 장 찍어봐라. 자꾸 붙으라 하지 말고.”


아빠의 의외의 주문.

독사진은 더욱이 꺼리시던 아빠가 무슨 일로 특별히 나한테 독사진을 주문하실까? 엄마랑 다투셨나? 그런데 눈치 없이 자꾸 사진을 찍으라는 아빠의 주문도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식장 밖에서 애들 뛰어놀라고 하고 찍으면 좋을 텐데 왜 자꾸 찍으라고 하시는지, 오늘 아빠의 주문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저런 생각도 잠시, 아빠가 자세를 잡으시곤 찍어보라는 손짓을 보내신다. 난 또 아빠의 주문대로 이런 포즈 저런 포즈 독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빠는 나를 응시하신 채 엄마 쪽으로 손짓을 하며 엄마도 좀 찍어보라는 눈짓을 보내신다.

아빠의 주문은 이제 귀찮은 심부름이 되었고 그런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아빠도 더 이상은 찍어라 마라 말씀이 없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주차장에서 아빠가 다시 내 옆에 바짝 다가오신다.

“니 오늘 찍은 사진 싹 다 나한테 보내라. 잊지 말고 꼭 보내.”


아빠에게 사진을 보낸 지 며칠 후 아빠는 몇 장의 사진을 보내오셨다. 무슨 작업을 하신 건지 배경은 지워져 있고 인물들만 사진에 담겨 있다.

나 이 중에 제일 자연스러운 걸로
영정사진 하나 만들고 싶은데. 니가 좀 도와줄래?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엄마 사진도 니가 좀 골라봐라.

아빠의 톡을 보고 나는 순간 기분이 멍해졌다. 미안한 마음, 짜증 나는 마음, 놀란 마음, 여러 가지 마음이 뒤섞여 그냥 화가 났다. 난 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드렸다.


“아빠, 아직 건강하신데 무슨 영정사진 타령이야. 어쩐지 자꾸 사진 찍어 달라고 하셔서 이상하다 했어~!! 나한테 그런 거 부탁하지 마. 기분이 좀 그렇잖아~.”


“그동안 찍은 사진 보니 독사진도 없고 다 후줄근하더라. 이렇게 찍어두면 니네들도 나중에 당황할 일 없고. 난 사진관 가서 어색하게 찍은 영정사진을 싫으니까 니가 잘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잘 써도.”


기분이 많이 이상하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영정사진이 필요한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직은 아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 ‘우리’의 시간이 끝나버린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슬픔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란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감당하기 힘든 ‘부모님이라는 존재의 끝’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의 담담한 목소리와 식장에서의 즐거운 표정을 떠올려보면, 아빠는 벌써 수년 전부터 본인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다. 이제는 담담하게 얘기할 정도로 여러 번 생각했을 아빠의 마지막은, 나에게 ‘영정 사진’이라는 생소한 단어로 너무도 갑작스럽게 훅 들어와 버렸다.


아빠의 부탁을 못 들은 척할 수도 없고, 사진을 지울 수도 없었다.

아빠 일단 이 사진 가지고 있을게요.
근데, 이 사진 쓸 날이 안 오면 좋겠다.
적어도 늦게 늦게, 이 사진이 나한테 있었는지도 기억에서 사라질 만큼 긴 시간이 지난 후에 그날이 오면 좋겠다.
'영정 사진' 그 단어가 나는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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