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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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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향해 기어오르다 온몸에 상처를 내고

사건에 대한 반응은 과거에 기반한다 그렇다면 나는 유독 이번 사건에만 평소의 나답지 않게, 합리적이지도 않은 온갖 이유를 들며 내 탓을 했던 걸까? 단지 이번 직장상사의 성희롱 사건이 내 생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이런 일만큼은 다시 내 삶에서 일어나지 않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내 모든 행동을 초단위로 뜯어보며 자책하는 행동으로 발현된 걸까? 자문하는 순간부터 답은 알고 있었다. 그

댓글 0 Feb 01. 2025
'내가 다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오만

완벽 혹은 허상 병원에 다녀오고 생애 처음으로 흔히 말하는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자아성찰도 함께 시작됐다. 이 즈음에는 회사도 나가지 않게 됐던 터라 남는게 시간이었고 그 시간들은 오롯이 나를 향한 탐구로 기능했다. 내가 겪게 된 성추행이라는 상황 앞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뾰족하게 굴었다. 이성적인 거라고, 의연한 판단이라고 덧씌운 사고방식 아래에는

댓글 0 Jan 18. 2025
불현듯 머리통을 때린 사실 하나

나는 나를 검열하고 있었다 물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일을 또 한 번 언급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경찰서와 노동청에 가서 했던 것처럼 장소와 시각을 정확히 기억하려 애쓰며 '진술'하는 게 아니었기에 한결 덜했다. 그저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숨이 가쁘고, 식욕이 없고, 두통이 심하고, 잠을 못 자고, 악몽을 꾸고, 택시를 탈 수가 없고, 지하

댓글 2 Jan 09. 2025
생애 첫 정신건강의학과 방문, 생각보다 뭐 없습디다

충격적일지라도, 이불속에서 절망하지 말고 고용노동부 방문으로부터 며칠이 지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없지만, 핸드폰 화면에 뜬 '고용노동부'라는 글자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담당 근로감독관님은 '대표의 괴롭힘이라도 가해자인 대표 측, 즉 사용자가 직접 사건을 조사한다'고 했다.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심장이 귀를 쾅쾅 때리는 것 같

댓글 0 Dec 30. 2024
나를 일으킨 건 다그침이 아니라

투박한 위로와 무심한 응원 결과를 이야기하자면, 내가 내게 다그치고 닦아세웠던 날 선 말들은 결국 아무런 힘이 못 됐다. 힘이 된 건 다른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그냥 따뜻한 포옹. 나보다 더 열을 내주는 목소리.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맛있는 것좀 먹자는 이야기. 어느 밤. 눈물이 잘 참아지지 않아서 더 눈을 부릅뜨고 굳이 지금 할 필요도 없는 원고를 쓰겠다며 노트북을 두

댓글 1 Dec 24. 2024
고용노동부 문턱 넘기가 어쩜 그리 버거웠는지

난 왜 자꾸 나에게 혼을 낼까. 경찰서에 방문한 다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고용노동부 민원 접수였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입증받기 위해 적성에 안 맞아도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이 또한 내가 그간 살아온 세계와는 접점이 없던 곳이었고, 사소한 절차 하나하나가 긴장과 부담이었다. 그러나 접수를 위해 알아보니 참 많은 사람이 노동부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석 달치 임금이 체불돼서, 퇴

댓글 1 Dec 17. 2024
다시는 못 입을 애착 원피스

목표: 의지할 구석이 있는 사람 되기 내 옷이 국과수에 가다니. 뉴스에서 '과학수사'니, '국립과학수사연구소'니, 'DNA 검사'니 뭐니 하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 심지어 그런 기사를 내가 받아 쓴 적도 많다. 그런데 그게 내 인생에 이토록 밀접하게 일어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경찰 조사 당시, 경찰관님은 내게 "옷에서 피의자 DNA가 검출될 수 있는데 증거로 제출해 검사를 받아보겠느

댓글 0 Dec 10. 2024
기록은 나의 힘.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목표: 냉소주의자로 남지 않기(2) 지난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뜻밖의 증거 확보 수단은 또 있었다. 문자메시지. 남자친구에게 걸었던 전화를 끊고도 성추행이 더 이어지자, 나는 그 상황을 남자친구에게 카톡으로 적어 보냈다. 지금 내 상사가 나에게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고 있다. 방금 이런 제스처를 취했다 등등. CCTV도 블랙박스도 아닌데, 이런 카톡도 증거가 되는지 사실 전혀 몰랐다. 이런

댓글 2 Dec 02. 2024
잊지 말되, 매몰되지 말자.

목표: 냉소주의자로 남지 않기(1) 내가 그 택시 안에 갇혀 상사로부터 당했던 일에 대해 상세한 기술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의 쓰라린 상처를 들추는 일일 수도 있고, 그전에 이미 내가 너무 여러 번 내 기억을 들췄다. 사건 당일 경찰서에 가서 한 번, 고용노동부 지청에 가서 담당자님에게 한 번, 근로개선지도과에 진정이 배정된 후 방문 전에 또 한 번 상세한 진술서를 적었다.

댓글 0 Nov 26. 2024
상경의 동아줄은 시작부터 썩어 있었고

나, 그럼에도 냉소에 잠기지 않기를 앞서 적었던 '그 사건'이 생긴 후 내게 닥쳐온 고단함은 부피가 컸다. 배신감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했다. 지방 소규모 언론사를 옮겨 다니던 내게 상경은 외면하기 힘든 기회였다. 독립으로 인해 생길 전세자금 대출이자와 대폭 늘어날 생활비, 부모님의 반대를 감안하더라도 그랬다. 메이저나 중견급을 제외한, 심지어 수도권도 아닌 지방 영세 언론사 기자는 최저

댓글 2 Nov 22. 2024
꿀직장인줄 알았다. 쓰레기인 줄 모르고.

홀로 상경, 하루아침에 퇴사자가 된 건에 관하여. 편의점에 앉아 초코롤과 1500원짜리 커피를 사놓고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월요일 오후 12시 50분. 나는 길 건너에 보이는 경찰서에 들어가 '그날' 입었던 옷을 증거로 제출하기 위해 점심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의 그날은 입사 후 처음 있는, 말하자면 '긴급 초과 야간 근무' 발생일이었다. 퇴근시간이 지난 뒤 받게 된 고객사 팀장의 부

댓글 0 Nov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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