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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식_시간의 상대적 속도

속도에는 빠름과 느림이 공존한다


#07. 빅 식(The Big Sick) 

시간의 상대적 속도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14살에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청년 쿠마일.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지망생으로 평소에는 우버 택시 운전을 하고, 저녁에는 코미디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한다. 어느 날 한 백인 여성 에밀리가 그의 쇼 순서에 추임새를 넣고, 둘은 가벼운 실랑이 끝에 썸을 타고, 원나잇 스탠드를 한다. 택시 운전사인 쿠마일은 다음 날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면서 서로 사귈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단어 그대로 원나잇 스탠드로 끝나는 사이가 있는 반면, 그 가운데 애정 모드가 솔솔 피어나는 경우도 있다. 쿠마일과 에밀리는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크게 극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게 교제를 하게 된다. 

에밀리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고, 쿠마일은 미국에 이민 온 1.5세인 만큼 꽤나 자유로운 사고를 하지만, 그의 가풍은 파키스탄의 전통적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 즉, 결혼은 반드시 집안끼리 맺어진 정략결혼을 해야 하며, 무슬림 종교로 이슬람의 종교 방식을 강요한다. 쿠마일 개인적으로는 자유롭고 싶지만, 이런 전통을 어기는 것은 집안에서의 추방을 의미한다. 가족을 포기할 수 없는 쿠마일은 엄마의 권유대로 그들의 방식인 맞선을 보고, 에밀리의 존재에 대해서도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에밀리가 쿠마일의 불분명한 태도에 분노하고 둘은 크게 다투고 헤어지게 된다. 

여기서 이야기의 전반부는 끝나고, 갑작스럽게 에밀리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이야기는 전환을 맞이한다. 병원에서는 감염 치료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코마(혼수상태)로 만들고 모든 시술과 수술이 병행된다. 그러던 중에 쿠마일은 헤어진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전 여친의 부모님과 알 수 없는 연대감이 형성된다. 그녀가 혼수상태로 있었던 시간은 14일. 그 시간 동안 쿠마일은 그녀에 대한 마음의 확신을 갖고, 자신의 가족에게도 에밀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보수적인 파키스탄 가정인 그들은 쿠마일을 이해할 수 없다. 당연히 쿠마일은 자신의 가족 일원으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그러던 중에 혼수상태였던 그녀가 깨어난다. 자…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14일 동안 모두에게 벌어진 진짜 인생

어떻게 보면 진짜 같고,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막 욱여넣은 것 같기도 하다. 젊은 남녀가 썸 아닌 썸을 타고, 사랑에 빠지고,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갈등을 겪고… 그렇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어서 어디에나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멀쩡하게 젊은 여성이 어느 날 독감 증세 비슷하게 시작해서 순식간에 원인불명의 감염으로 이어지며 혼수상태에 빠지는 설정은 영화나 소설에나 있을 것 같다. 마치 소설 속 이야기 같은 이 모든 이야기는 실화다. 이야기의 결론이 어떻게 된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 여자 주인공이 코마 상태인 14일 동안 벌어진 모든 정황이 영화의 핵심이다.  


 

바이오 리듬(생체리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고유의 신체, 감정, 지성의 주기가 있다는 이론이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바이오리듬에 크게 관심도 없고, 의존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시험기간에는 신체과 지성 주기가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바이오리듬 자체에 의존도는 낮아도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리듬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존재한다. 흔히 썸을 타거나 사람 간에 감정의 스파크가 튀는 순간도 그 가운데 리듬 수치가 최고조를 향해 달렸기 때문에 가능하다. 감정의 사이클이 비슷하게 돌아가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관계가 형성된다. 나와 남의 관계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처음에 엇비슷하게 돌아가던 사이클도 어느 순간 비껴가게 된다. 감정의 이격 현상이 나타날 때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느 한쪽, 또는 양쪽의 노력으로 그 다름을 맞추거나 채워가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그 틈이 점점 벌어지면서 갈등의 극에 달하면 관계는 끝나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연인 상태라면 헤어지는 것이고, 부부라면 별거나 이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이렇게 감정의 사이클에 맞춰서 설명하면 참으로 건조하지만 크게 특별하지도 대단한 이슈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빅 식을 보면서 가장 공감이 됐던 부분은 에밀리가 14일 동안 코마 상태에 있다가 깨어나고 나서다. 부모에게는 건강한 딸이었고, 쿠마일에게는 밝고 명랑했지만 얼마 전 헤어진 여자 친구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남아 있는 가족이나 연인 입장에서는 그녀의 생환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고, 이전에 겪었던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선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 그녀의 죽음을 원치 않기에 쿠마일과 에밀리의 부모도 그녀의 건강 하나만을 바라는 팀워크의 마음으로 감정 사이클의 속도를 맞춰가게 된다. 같은 목표를 지닌 그들만의 동지 의식은 이전에 가졌던 모든 선입견과 갈등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친밀한 관계로 재형성된다. 

그러나… 

14일 만에 깨어난 에밀리 입장에서는 어떤가? 가족이든 옛 연인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의 입장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코마를 딛고 깬 그녀가 현재 처해있는 시계(視界)에서는 14일동안 움직여야 할 감정의 시계(時計)도 멈춰버린 셈이다. 즉, 그녀의 주변 인물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감정의 사이클은 멈춰 있는 그녀의 사이클과는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져 있다. 

만약 실화가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였다면 코마에서 돌아온 그녀가 자신을 기다려준 옛 남친의 정성에 감동받는 이야기를 좀 더 세련되게 풀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제 이야기였기에 이 부분부터 약간 정신 사나울 정도로 이렇게 비껴가나 싶을 정도다. 영화만으로 생각하면 몰입하기 힘들 수 있고, 설명하기도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난 오히려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계(時計)가 14일 동안 멈춰 있었다. 그동안 쿠마일은 모든 감정을 정리하고, 그 자신도 충분히 발전했다고 믿으며 그녀에게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깨어나길 준비~ 땅!!! 하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에게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전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세 사람의 연기. 특히 홀리 헌터를 봐서 반갑더군 (출처 :Daum 영화)


인간 모두에게는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건 정말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진정 신의 한수인 셈이다. 남들보다 학식이 뛰어나다고, 부자라고, 할 일이 많아서 바쁘니 오늘만 보너스로 1시간을 더 가지겠다고 욕심을 부려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양적인 시간의 길이는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상대적이다. 내 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더라도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따라 한 시간이 길게 느껴질 때도 있고, 5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그러면서 나에게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상대성 이론이 적용된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삶의 기능적 요소로 보면 찬성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효율성이라는 것은 무조건 부지런하게 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상대적 속도에는 나와 타인의 관계성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바쁘게 달려가고 싶어도 내 주변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기도 하고, 반대로 주변은 격정의 시간으로 흘러가도 마치 나는 그 가운데 스톱모션처럼 멈춰 있고 싶기도 하다. 살면서 무엇이 정답이겠는가? 혼자서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에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고, 그들과의 감정의 사이클을 요령 있게 맞춰 나가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내 주변을 둘러본다. 지금 나와의 감정 사이클이 상당히 멀어진 경우도 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사람이라면 조금씩 그 격차를 줄이며… 그 가운데 나에 대한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된다면 꽤나 멋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속도라는 말에는 빠름만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양한 시간의 속도를 즐기는 전환이 된다면 꽤나 성공적이고 바람직한 변화라고 믿는다.



*리뷰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상당히 재밌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유머 코드도 맘에 들고, 긴장을 풀고 영화에 감정을 맡기면 극장으로 나오면서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올 수 있는 그런 영화다.


영화 메인포스터 (출처 : Daum 영화)


분명 내 스타일 아닌 남자인데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 배우의 매력에 솔솔~ (출처 : Daum 영화)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윤지영

*사진 출처 : Daum영화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 관람 후 올린 글입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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