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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_연기 천재 등장

작품마다 새로운 도화지를 준비하는 배우_김향기



#17_증인

작품마다 새로운 도화지를 준비하는 배우_김향기



2018년 11월부터 개인적으로 무척 바쁜 일이 생겼다.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2019년을 맞이한 것 같다. 문득 오늘이 며칠인가 봤더니 1월 중순. 그 사이에 몇 번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신청 기회가 있었지만 도저히 참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몇 번의 신청 메일을 패스했다. 아… 명색이 무비 패스 작가인데 시사회를 좀 보긴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신청했던 영화. 메일에 조그맣게 나오는 사진으로 볼 때 유심히 보지 않으면 한국 영화인지 일본 영화인지 대만 영화인지도 알 수 없다. 그렇게 한 달 여, 제법 오랜만에 시사회를 가게 됐다. 극장 이름 확인하면서 도대체 무슨 영화인가 제목을 봤더니 [증인]이다. 이것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하여 스마트폰 액정화면을 마구 확대해서 봤더니 정우성 비슷한 실루엣이 보인다. ‘아! 한국 영화군!’ 영화 제목으로 검색해보니 주인공이 정우성, 김향기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 또 김향기 영화네?


나는 영화 [영주]를 통해서 김향기를 처음 알게 됐다. 워낙 TV를 보지 않고, 특히 영화 중에도 아역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영주]에서 김향기를 처음 본 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뭐 저런 배우가 다 있나?(좋은 의미다)하고 놀라서 영화를 다 보고 함께 간 친구에게 물었다.

“영주 역 맡은 배우 누구야?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그 있잖아. 김향기. 아역부터 했던 아이인데 많이 컸다. 쟤 연기 미치게 잘하는 애야.”

정말 친구가 표현한 연기가 미쳤다는 게 딱 맞는 것 같았다.

그 이후 김향기에 대해서 소위 팬심 덕질을 시작했다. (스토커는 절대 아니다. ㅎㅎ) 인스타도 팔로우하고, 김향기가 나오는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됐다. 김향기 특유의 보이스 톤이 있다. 평상시 말할 때는 살짝 중저음이지만 톤을 높이면 뭔가 통통 튀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열심히 덕질을 하다가 나와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반가운 소식까지 알게 됐다.

우연 아닌 우연한 관람이 된 이번 영화에서 김향기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사뭇 기대를 됐다.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는 양순호(정우성)는 민변 출신이다. 변호사 초기에 가지고 있는 신념과 대형 로펌에서 적응하고 돈을 벌고 출세하고 싶은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미묘한 내적 갈등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다.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할 수 있는 큰 기회가 걸린 사건의 변호사로 지목되자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16세 소녀 지우(김향기)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려고 한다.

“목격자가 있어. 자폐아야”

자폐증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순호는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지우를 찾아가고, 자폐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두 사람 간의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조금씩 지우를 이해하게 된다.

살인 용의자의 변호사와 사건의 증인으로 두 사람은 법정에서 마주하게 되고, 사건은 마침 일단락되는 것 같지만 또 다른 진실이 보이게 된다.



작품마다 새로운 도화지를 준비하는 배우 김향기

영화는 그다지 복잡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영화가 시작하고 보다 보면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파악되고, 휴먼 스토리를 가진 영화의 클리셰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사실 나는 영화가 시작되고 그리 어렵지 않게 영화의 결말과 어디쯤에서 나름 반전의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눈치 빠르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이런 영화의 전형이 딱 보이기 때문이다.

클리셰가 있는 영화는 보다 보면 지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인]이 제법 긴 러닝타임인데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역할은 배우 김향기 때문이었다. 김향기는 귀여운 인상의 마스크를 지니고 있지만, 요즘 스타일처럼 핫하게 생긴 배우는 아니다. 솔직히 팔등신 미녀도 아니다. 그런데 김향기는 영화에서 배우로서 관록이 드러난다. 아역부터 활동을 했던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이 정변의 법칙으로 예쁘고 멋있게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대중은 그들이 좀 더 예뻐지고, 잘생겨지고, 키도 크고 그렇게 되길 원한다. 뭐… 그렇게 성장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런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넘어갈 때 아쉬운 점은 배우들이 뭔가를 너무 열심히 하려 든다는 것이다. 스크린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은 분명 연기 잘하는 배우이긴 한데,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연기 잘하는 ㅇㅇ(이)가 맡은 ㅁㅁ’ 같은 식이다.

그런데 김향기는 영화에서 그 사람 자체로 녹아 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의 역할은 영화에 종종 등장한다. 자칫하면 굉장히 오버해서 하는 연기가 눈에 거슬리기 십상인데 김향기는 연기가 아닌 그냥 지우가 되어 있었다. 그건 일반인이 자폐증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한 연기가 아니라 자폐증 자체를 보여준다. ‘이런 게 자폐증입니다.’ 관객에게 억지로 인지시키려 하지 않고, 흔하지 않지만 우연히 보게 되고, 만나게 되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다. 심지어는 눈빛을 넘어서서 동공으로도 세밀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정도였다.

마치 어떤 장르의 작품을 내밀어도 밑그림이 없이 깨끗한 도화지를 준비하는 배우 같다. 그래서 작품마다 이전의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영화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인터뷰에서의 사진을 보면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팔색조를 띤 배우라고 단정 짓기도 힘들다.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자체가 되는 것은 대단한 노력 아니면 타고난 천재성이 아닐까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연기 천재인 것 같다. ㅎㅎ)

매 순간 상대와의 훌륭한 케미를 보여줬던 배우 김향기 (출처 : Daum 영화)

그리고 여기서 또 한 사람. 배우 정우성. 그는 항상 잘생긴 외모에 가려진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중년으로 접어든 정우성이 더 배우답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정우성은 주연이지만 혼자서 독주를 하기보다는 상대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서 빛이 더 나기도 하고, 빛이 바래 보일 수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영화를 보면 그저 연기 잘하는 사람만 눈에 들어오기 십상인데 요즘에는 영화라는 장르도 혼자서만 연기를 잘해서는 조화로움을 이룰 수 없다. 등장하는 배우가 대부분 발연기를 하는 상황에서 혼자 혼신의 연기를 하면 그 배우는 눈에 띌지 모르지만, 작품으로서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내가 본 정우성은 혼자서 완벽한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대에 맞춰서 좋은 연기 메이트가 될 수 있는 배우라고 본다. 사실 상당히 멋진 얼굴을 가진 배우지만, 어쩌면 약간은 부족한 여백이 있기에 상대와 연기 합을 맞출 때 백 퍼센트에 가까운 형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이번 김향기와 정우성의 조합은 영화의 전개를 이끌고 나가기 상당히 완벽한 캐스팅이었다고 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 연기의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았던 영화 (출처 : Daum 영화)



실제로 자폐증 환자의 일상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영화를 통해서 나오는 자폐증은 대부분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다. 자폐증이나 지적장애 등 인지 능력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 중 극히 일부 특정 분야에서 보통사람보다 능력을 크게 뛰어넘는 경이로운 천재성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모든 자폐증과 아스퍼거 증후군에 서번트 증후군이 내재돼 있다고 착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개념이다. 실제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영화에는 ‘자폐=서번트 증후군’의 공식이 있는 점은 아쉽다. 물론 이런 접근으로라도 자폐증을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것은 좋지만, 마치 폐쇄적인 천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서도 히트를 했던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레인맨]을 시작으로 박정민 주연의 [그것만이 내 세상], 장나라 주연의 [하늘과 바다]등이 있다.)

영화에서 지우의 특징은 서번트 증후군과 자폐의 묘한 경계에 있다. 그래도 조금 안심스러운 것은 서번트 증후군의 극적인 능력(?)으로 억지스러운 감동을 끌어낸 쪽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폐에 대한 이해와 일반적인 상태, 그리고 아니라고 해도 은연중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스토리에 녹아들게 했다. 스토리의 전개상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다양한 관객층이 편견을 없애고 현재의 모습을 잠잠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형식을 갖춘 것은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만족스럽다.

잔잔하지만 다양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기는 영화가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런 작품이 많아져야 영화를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교과서 같은 질문이지만 많은 어른들은 이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면서 배우의 관록이 보이는 정우성 (출처 : Daum 영화)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윤지영

*사진 출처 : Daum영화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 관람 후 올린 글입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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