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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_SPECIAL GALA

손님을 배려한, 정성스럽고 솜씨 좋은 정찬(正餐)을 마주하다.


2018 Special Gala 공식포스터_포스터를 처음 딱 본 순간 이 공연은 되겠다 싶었다.




UNIVERSAL BALLET <SPECIAL GALA>

손님을 배려한, 정성스럽고 솜씨 좋은 정찬(正餐)을 마주하다.



발레 갈라 공연은 쉬운 듯 하지만 어려울 수 있다. 유명 작품에서 내놓으라 하는 유명한 장면만 모아서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자칫 발레단 입장에서는 아무 말 대잔치보다 더한 이것저것 보여주기 식의 기량 뽐내기 대잔치가 되기 쉽다. 엑기스만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신나지만, 보다 보면 약간 지루해지고 식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솔직히 나는 갈라 공연보다 전막 공연을 훨씬 선호하는 편이다.




며칠 전 UBC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공연 시간을 보니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길다. 1막 65분, 인터미션 20분, 2막 65분…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미리 알았던지라 내심 ‘좋은 작품이 많으니 지루하지 않고, 잘 봤으면 좋겠네…’싶은 기대가 있었다. 온 가족 함께 보는 올해 첫 공연이라 연령이 어린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태까지 내가 본 갈라 공연 중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프로그램의 구성이 아주 뛰어났다. 클래식과 모던, 캐릭터를 적절히 섞고, 클래식 중에서는 테크닉이 돋보이는 것, 대중적인 것, 드라마 발레를 아주 훌륭하게 조합시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갈라 공연 중 작품을 보고 전막이 보고 싶다면 그건 아주 성공한 것이라고. 적어도 오늘 갈라를 보고 여러 개의 전막이 보고 싶었고, 특히 공연 보는 내내 UBC의 공연을 정말 챙겨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 정도였다.



무용수에 대한 캐스팅 배려도 뛰어났다. 예를 들어 이번 시즌 수석으로 승급한 홍향기 발레리나는 그녀의 강점과 기량이 돋보이고, 무대에서 화려한 데뷔식을 하는듯한 흑조 파드되, 여지없이 그녀를 잘 받쳐주는 든든한 파트너 이동탁 발레리노, 드라마 발레(춘향, 오네긴)에서 한없는 몰입을 보여준 강미선 발레리나, 이현준 발레리노의 절절한 연기, 지젤이 환생한듯한 한상이 발레리나, 지젤의 알브레히트와, 돈큐 바질의 너무나 깔끔한 본인의 색을 보여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해적, 돈큐에서 오늘 푸에테의 진수를 보여주마를 작정한 조이 아나벨 워막, 말이 필요 없는 춤이 아닌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춤춘 롬앤줄 발코니 파드되의 마리아 쉬린키나, 블리디미르 쉬클리야로프… 작품 속 인물을 보면 더 유명한 사람이 있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무용수가 자기 옷을 잘 입을 것처럼 편안하게 잘 소화한 훌륭한 캐스팅이었다.



무용수만 보였겠는가? 사실 발레 101을 볼 땐 나도 모르게 나의 든든하고 고마운 파트너 남동생 윤군(김윤식 발레리노)이 먼저 떠올랐다. ㅎㅎ 또한 국내에서는 도대체 그 전막으로 보기 힘든 작품 해적(Le Corsaire)의 파드트루아를 볼 수 있는 게 심쿵 하면서도 설렜다. 오네긴은 마지막으로 치달을 때 너무 몰입이 돼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연기가 훌륭했다. 갈라에 빠지지 않는 돈큐 그랑파… 귀갓길에 아이들에게 이런 설명을 했다. 돈큐 그랑파는 한정식 정찬에 나오는 기본 중의 기본인 김치에 해당하는 거 같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막 웃더라. 그렇지 않은가? 한정식에서도 김치는 꼭 있어야 할 기본찬이지만, 맛이 없으면 다른 음식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진다. 김치를 만들 때 지역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이 있지만 뭔지 모르게 절묘한 타이밍의 맛있는 김치는 '이때다!' 싶은 순간이 있다. 그래서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게 한식 중 김치다. 내가 보기 돈큐 그랑파는 발레에서 그런 존재 같다. 관객은 누구나 알고, 무용수는 누구나 할 줄 알지만 정말 잘해야 하는 그래서 더욱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돈큐 그랑파는 젓갈 맛을 줄인 시원하게 청량감이 돋보이는 깔끔한 맛의 기분 좋은 김치 맛이 떠올랐다. 전체 프로그램에 잘 어울려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마지막 작품인 <화이트 슬립>은 '아… 근래에 본 가장 충격적이면서 인상적인 최고의 작품'이었다. 처음 본 작품인데 도입이 너무 강렬하고, 무대 장치, 뒷배경 영상, 조명까지… 초반에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러서 스스로 당황할 정도였다. 뭐 공연 보다가 눈물 흘리는 건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눈물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놓칠세라 가방 속에서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냅킨으로 황급히 눈물을 닦고 끝까지 몰두해서 봤다. 너무 감동을 받으면 브라보 소리도 잘 안 나오더라. 목이 메어서 묵묵히 박수만 쳤다. 아직도 그 순간 무엇이 나에게 그런 강렬한 감동을 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신 그 작품을 꼭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훌륭한 기획을 하고, 무엇보다 관객을 정말 소중히 생각하고 준비한 공연이라서 기뻤다. 내가 초대받은 잔치에 주인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려고 마련된 곳에 동원된 자리가 아닌, 나를 생각하고 준비해준 정성스러운 정찬(正餐)이라서 고마웠다. 150분 동안 나를 위해 준비한 만찬에 정서적 포만감과 안도감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물론  UBC의 다음 잔칫날을 벌써부터 기다리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이 리뷰는 공연 관람 후 지극히 주관적, 개인적 관점에서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취미발레 윤여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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