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함께 읽어왔고 이미 취미발레 세계에 입문을 한 독자라면 이제 더 이상 <발레>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발레가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첫 발레 공연 관람은 은근히 낯설다.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나 역시 취미로 발레를 시작하기 전에는(클래식 공연을 간간이 보러 가는 관객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지는 발레 공연을 보러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발레를 배우게 된 해에 처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호두까기 인형>으로 소심하게나마 발레 공연 관람 세계에 첫 발을 딛게 되었다. 그 이후로 발레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면서 공연 관람에 관한 여러 가지 노하우와 팁을 터득하게 되었다.
발레 공연 관람에 있어서 고수 단계의 관람객이 이 글을 보면 '에이... 당연한 이야기를 뭘 이렇게 설명을 하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 우리나라에 한 번도 발레 공연을 '직접' 관람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발레 공연을 자주 본 사람보다 높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나도 40년 동안 여타 공연 관람 경험은 있지만 발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았을까? 이번 단원에서는 발레 문외한 초보 취미인들이 발레 공연 관람을 재미있게 하는 여러 가지 꿀팁을 대방출할 계획이다. 이런 이야기는 <웰컴 투 발레월드>니까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 왜냐하면 어디 가서 묻기도 참 애매한 내용일 수 있으니까... 이 단원에서는 초급 단계를 넘어선 독자를 위해 공연 관람을 하는 전반적인 내용에 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요령을 터득하고 가면 관람의 재미 요소가 훨씬 다양해진다. 미리 알고 '더욱' 재미있게 공연 관람의 세계로 웰컴 하길 희망한다.
발레 공연을 보려고 하면 도대체 어떤 작품을 골라야 할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국내에서 하는 대부분의 공연은 초등학교 이상이 볼 수 있는 공연이다. 비교적 대작 중에서 미취학 연령(만 4세 이상)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모든 발레단에서 무대에 올리는 '호두까기 인형' 작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호두까기 인형은 마냥 어린이 취향일까? 그렇지 않다. 신인 무용수가 주역으로 나갈 수 있는 등용문 작품인 호두까기 인형은 경쾌하지만 젊은 무용수의 기운 덕에 춤 동작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공연이어도 좋다. 우선 작품을 선정했다면 내용을 파악하고 관람하기 좋은 좌석을 예매해야 한다.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라고 한 이유는 미리 알고 보면 공연 관람의 몰입도도 높아지겠지만, 내용에 따라서 좌석을 예매하는 요령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발레의 분위기가 스토리 위주인 드라마 발레 작품인지, 군무가 돋보이는 작품인지, 2인이 추는 파드되가 돋보이는 작품인지 잘 생각을 하고 내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관람을 할지 결정을 해야 한다.
스토리 위주인 드라마 발레라면 무용수의 마임이나 표정을 잘 볼 수 있는 1층의 비교적 앞좌석이 좋다. 공연 티켓 예매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유명 작품 공연 같은 경우는 인터넷으로 티켓 예매를 하려고 보면 좋은 자리는 거의 다 빠져나가고 없다. 티켓 오픈하자마자 부지런 떨어서 예매하는 열혈팬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자. 유명 공연 티켓 오픈 날에는 광클릭으로 좋은 자리를 획득해야 한다. 같은 금액의 돈을 지불하더라도 이왕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은 공연의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발레 공연을 자주 볼 것 같으면 공연 예매 시 할인 혜택이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니 꼭 참고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터득하길 바란다.
드라마 발레의 경우 1층의 중앙 앞자리는 예매하기가 쉽지 않다. 가운데 블록 앞자리가 가장 먼저 매진되고, 그다음 양쪽 사이드 블록이 순차적으로 매진된다. 사이드 블록 중 가장 끝쪽은 앞자리라고 하더라도 공연을 볼 때는 무대의 한쪽만 보게 되기 때문에 처음 발레 관람을 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약간 뒤쪽이더라도 무대 전체를 볼 수 있는 객석을 권장한다. 특히 앉은키가 작은 어린이를 동반할 경우 너무 앞에 앉으면 눈높이가 무대 높이에 걸려서 발레리나의 토슈즈 발동작을 잘 못 보는 경우도 있다. 나도 키가 작은 편이라서 아무리 드라마 발레라도 맨 앞줄은 좀 곤란하다. 참고로 어린이용 좌석 높임 보조 시트는 신장이 130cm 이하 일 때만 사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군무가 돋보이는 공연을 보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땐 오히려 1층보다 2층 이상으로 올라가서 봐야 군무의 전체 대형이나 움직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발레 작품 중에서 발레 블랑(Ballet Blanc, 백색 발레)이라고 불리는 장면이 있다. 모든 발레리나가 백색 튜튜를 입고 나와서 환상적인 군무를 보이는 장면이다. 대표적인 발레 블랑은 지젤 2막(윌리들의 숲), 라 바야데르 3막(망령들의 왕국), 백조의 호수 2막과 4막(백조의 호수), 라 실피드 등이 있다. 발레 블랑이 돋보이는 작품도 좋지만 모든 발레 공연에는 주옥 같은 군무가 존재하기 때문에 군무에 좀 더 중점적으로 관람을 하길 원한다면 2층 가운데 블록을 추천한다. (예술의 전당의 경우 2층 가운데 블록 3열 정도까지는 2층인데도 R석으로 분류된다. 앉아보면 안다. 독무를 보기에도 그리 멀지 않고, 군무를 보기에도 환상적인 자리라는 것을...)
2층 이상의 좌석에 앉을 때는 오페라 글라스를 대여하거나 개인 소장 소형 망원경이 있으면 소지하고 가는 것이 좋다. 마임을 할 때나 독무를 할 때 무용수의 표정을 생생히 볼 수 있고, 폴 드 브라나 발 끝 동작을 자세히 보기도 좋다.
클래식 공연 좌석의 좋은 자리는 매뉴얼처럼 어떤 법칙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술의 전당 음악당은 오케스트라의 규모나 협연자의 악기의 종류에 따라서 잘 보이고 잘 들리는 위치가 각각 다르지만 거의 공식처럼 지정이 되어 있다. 독주회나 작은 규모의 실내악은 음악당보다는 좀 더 작은 리사이틀홀이나 여타 작은 음악 전문 공연장이 더 나은 악기 소리와 연주자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발레 공연을 여러 자리에서 관람한 결과 정답 같은 공식보다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선호하는 좌석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내 경우는 맨 앞자리 앉을 때 무용수의 발동작이 안 보여서 별로이고, 바닥이 평평하게 되어있는 1층 앞 블록 좌석에서 내 앞에 덩치 큰 남자분이 앉는 순간 그날의 공연은 남자분 등짝과 뒤통수만 바라보며 무용수들이 뛰어 다닐 때 나도 앞좌석 좌우 사이사이로 고개를 움직여가며 공연을 관람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예매하면서 내 앞자리에 어떤 덩치 있는 분이 앉을지 거대한 머리의 소유자가 앉을지는 알 수 없는 거다.) 그래서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내가 좀 선호하는 공연장도 생기고, 나에게 맞는 좌석이 어떤 식인지 알게 되기도 한다. 사실 처음 가보는 공연장의 경우 앉아보기 전에는 어떻게 무대가 내 눈 앞에 펼쳐질지는 알 수가 없다.
하나의 노하우를 알려주자면 한번 가본 극장을 공연만 보고 "아~ 정말 좋았어~"하고 휙~나올 것이 아니라 공연장의 좌석배치도와 공연장 관람석의 기울기 각도 등을 숙지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케스트라 피트가 있는 공연장인지 측면에서 보더라도 시야가 잘 확보되는 각도로 되어 있는지 등등, 공연 관람날에는 시간에 쫓기지 말고 미리 여유 있게 가서 관객석이 열리면 들어가서 전체적으로 보거나 인터미션 타임에 다른 층의 각도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이 부분은 내 경우 약간의 직업병 일지 모르지만 난 처음 가는 공연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편이다) 그러면 다음에 그 공연장 좌석을 예매할 때 어떤 식으로 무대가 시야에 들어올지 대충 감이 잡히기 때문이다.
이왕 같은 금액을 내고 좋은 공연을 관람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대충 뽑기하는 식으로 좌석을 아무렇게나 선택하지 말고, 잘 생각해서 예매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발레 공연은 여타 다른 공연과 마찬가지로 실시간 라이브로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복불복 게임하듯이 '공짜 초대권으로 주는 자리 앉겠어! 좋은 자리 얻어 걸려라!'라고 기대하기 보다는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예매하는 순간부터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미 공연 관람을 준비하는 게 더욱 멋진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관람 문화가 무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무용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애절함과 격정적 감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면. 이처럼 드라마적 요소와 연기를 가까이 보고 싶다면 무대와 가장 가까운 가운데 앞좌석을 추천한다. 발레리나, 발레리노의 숨결과 땀방울 튀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은원, 수석무용수 이동훈, 아를르의 연인, 2013)
단체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비교적 먼 거리에서 봐도 전체 무대 느낌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각 무용수의 생생한 표정을 보고 싶다면 오페라 글라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립발레단 왕자호동, 2015)
위에서 언급한 발레 블랑(Ballet Blanc) 중 하나인 백조의 호수 군무씬. 이 사진은 과연 몇 층에서 바라본 장면일까? 정답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4층에서 촬영한 것이다. 분명 무대에서 먼 거리이지만 군무와 오케스트라 피트와 극장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보는 전지자 시점에서 발레를 보고 싶다면 때론 이런 좌석도 시도해 볼 만하다.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2015)
또 다른 발레 블랑의 한 장면인 라 바야데르 3막 <망령들의 왕국> 장면이다. 이런 군무는 위에서 멀리 봤을 때 전체의 대형과 움직임을 보면서 크게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 정도 각 맞춤이면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2013)
사진 작가만이 찍을 수 있는 극적인 각도. 이 사진을 찍은 발레리노 김윤식 군에게 촬영 위치 물었더니 박스석에서 더 끝으로 나와서 무대 쪽을 촬영했다고 한다. 그래서 군무와 오케스트라 피트까지 하나의 영화 장면처럼 연출이 되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참 맘에 들지만, 발레 공연을 처음 보는 사람이 이 위치에서 본다면 가장 끝에 서있는 단원 옆모습이나 뒷모습만 볼 수 있으니 가운데 좌석을 추천한다. (국립발레단 지젤 2막 윌리의 숲 장면, 2015)
하나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전 수많은 스태프의 준비와 노력이 숨어있다. 무대에 필요한 소품을 준비하는 이 사진 한 장만으로도 무대 뒤의 풍경은 충분히 치열하다. 이런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무대를 직접 관람하는 것도 관객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특권이기도 하다. (국립발레단 말괄량이 길들이기 소품, 2015)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 김경식, 김윤식(형제발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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