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발레를 보다_라 바야데르

오리엔탈 글램록을 만나다



4. 라 바야데르

부제 : 오리엔탈 글램록을 만나다




데이빗 보위 사망에 관한 칼럼도 아닌데 발레에서 갑자기 글램록을 언급하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라 바야데르... 발레 애호가가 아니라면 제목부터 생소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좀 무식한 고백이지만 발레에 문외한이었던 나 역시 이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작품이 <라 바야데르>였다. 



취미발레를 시작하고 여러 발레 작품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알게 된 라 바야데르, 뜻은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라 바야데르는 인도 황금 제국의 회교 사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랑과 음모와 배신의 3종 세트를 잘 버무린 이야기이다. 상당히 통속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이국적 배경과 캐스팅 인원, 무대장치 등 워낙 많은 물량이 투입돼서 엄청난 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우선 출연진의 인원도 상당하고, 무대 세트와 소품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국내에서는  1999년 유니버설 발레단에 의해서 초연됐는데 2막에 남자 주인공인 전사 솔로르가 대형 코끼리를 타고 등장하는데 객석에 있던 모든 관객이 "우와~~"하면서 탄성을 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발레 작품이지만 인도의 황금 제국이라는 배경 때문일까? 의상과 춤의 분위기마저 참으로 이국적이다. 무용수들은 밸리 댄스 의상과 같이 복근을 드러내는 의상을 입고 나오지만 발레라는 춤 특성상 몸통을 딱 고정시키고 팔과 다리 동작만으로 표현하는데 그 느낌이 경직되거나 딱딱해 보이지 않고 기묘하게 아름답고 여성미를 강조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3막 또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서는 인도 사원 최고의 무희 니키타와 전사 솔로르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연인이다. 하지만 사원 최고의 승려인 브라만이 니키아에게 연심을 품고 고백하지만 니키아에게 거절당한다. 왕은 전사 솔로르에게 자기의 딸인 감자티 공주와 결혼할 것을 권하자 솔로르는 감자티의 아름다움에 빠져 결혼을 승낙한다. 니키아의 마음을 얻지 못한 승려 브라만은 왕에게 솔로르가 니키아와 연인 사이라고 밀고를 한다. 브라만은 솔로르에 대한 질투심에 그를 없애고 싶었지만, 막상 이 사실을 안 왕은 신분이 미천한 니키아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원의 무희 니키아와 왕국의 공주 감자티는 한 남자(솔로르)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춤으로 표현하는데 상당히 극적인 장면으로 묘사된다. 
2막은 인도 궁전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디베르티스망이 가득하다. 우선 감자티와 솔로르의 파드되가 열정적으로 펼쳐진다. 이어서 북춤, 여러 무희들의 춤, 부채춤, 황금신상의 춤 등이 등장하고 결혼식에 신전 무희 니키아가 솔로르, 감자티의 결혼식을 위해 축하의 춤을 추는 아이러닉한 상황이 벌어진다. 춤은 슬프고도 매혹적이다. 의문의 꽃바구니가 니키아에게 전달되는데 솔로르가 보낸 것이라고 기뻐하는 니키아. 하지만 그것은 감자티가 보낸 바구니였고 그 안에 있는 독사가 니키아를 물게 된다. 독사에게 물려서 온몸에 독이 퍼지는 상황에 이르는 니키아에게 승려 브라만은 해독제를 건네지만 니키아는 해독제를 마시지 않고 죽음을 선택한다.

3막은 자기 때문에 니키아가 죽었다고 비탄에 빠져있는 솔로르에게 탁발승이 신비스러운 힘으로 코브라를 일으키며 위로의 춤을 춘다. 아편에 빠져 환각 상태에서라도 니키아를 만나고 싶어 하는 솔로르 앞에 망령들의 왕국의 춤이 펼쳐지며 그 안에 있는 니키아를 찾고 환각 속에서라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서두에서 나만의 관점으로 '오리엔탈 글램록'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발레는 이탈리아 궁정 사교춤에서 시작돼서 프랑스에서 지금의 발레 형태로 크게 발전하며 러시아, 영국, 미국의 손을 거치며 현재의 클래식 발레 예술로 꽃피우게 되었다. 그래서 배경이나 저변에 흐르는 여러 감정선들이 지극히 서양적이다. 그러나 라 바야데르는 서양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동양의 매혹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그래서 동양인인 우리가 바라보는 동양의 시선보다 조금 더 과장되고 화려한 면모를 보여준다. 기존 클래식 발레에서 볼 수 없었던 과감한 의상 패턴, 원초적인 모습을 지닌 탁발승의 등장, 사랑하는 한 남자를 두고 치열하게 쟁투하는 두 여인, 금기된 사랑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는 승려, 다른 여자와 혼인하게 되는 사랑하는 남자 약혼식에서 춤을 추는 무희의 운명, 독살하려는 자, 환각 상태에서 죽은 자를 만나는 의식 등 마치 1970년대 화려함과 과장된 음악 세계의 정점을 보여주었던 글램록의 모습을 발레에 담은 것 같았다. 화려함 가운데 사랑과 음모, 배신의 복합적인 감정이 실컷 어우러져 있고, 자극적이면서도 가벼운 퇴폐미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2014년 우리나라에서도 선보였던 앙쥴렝 프렐조카쥬의 'Snow White'에서 보인 파격미의 원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Snow White는 현대 무용의 장르이면서 파격적 안무, 장 폴 고티에의 의상, 구스타프 말러의 음울한 선율을 극적인 곳에 배치해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발레의 새로운 기법으로 해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라 바야데르가 187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황실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도 이보다 더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것이다. 당시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의 모습은 충분히 이국적이고 미스터리하며 매혹적이었기에 실제 인도의 일상적인 모습보다 더 자극적인 이미지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라 바야데르는 클래식 발레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과는 다른 색채를 뿜어낸다. 어쩌면 화가 고흐가 아를로 떠나기 전 일본 그림의 영향을 받고 이전과 다른 과도기적 화풍을 보이다가 인상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과정처럼 라 바야데르도 발레 작품이지만 이전엔 없었던 동양의 모습을 애써 보여주며 이전 발레와는 또 다른 발레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상세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더라도 라 바야데르는 충분히 볼거리가 많은 발레 작품이다. 상징적 소품인 스카프를 이용한 군무도 멋있고, 감자티 바리에이션과 솔로르 바리에이션은 콩쿠르의 단골 메뉴로 등장할 정도로 멋진 기량이 담겨있다. 니키아의 춤은 슬프면서도 아름답기에 발레리나로서 꼭 접해보고 싶은 바리에이션이고, 3막의 망령들의 왕국의 군무는 발레블랑의 진수를 보여준다. 간단한 아라베스크와 깜브레(허리를 뒤로 젖히는 동작)의 반복만으로도 탄성이 나올 수 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단, 아이들과 함께 관람할 때 솔로르가 환각상태에 빠져드는 장면에 대해 아이들이 저게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조금 지혜롭게 대처하는 센스를 장착하길 바란다. (같이 관람한 내 아이가 환각에 빠진 솔로르의 모습에 저게 꿈이에요? 진짜 죽은 거예요? 란 질문을 던졌을 때 살짝 당황하며 답변을 했었다)

이런 요소 때문에 라 바야데르는 은근 오리엔탈 글램록이 맞는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라 바야데르 최종 리허설 장면. 3막 망령들의 왕국 (국립발레단, 스튜디오 리허설, 2014)



  

그냥 군무 아니고 칼군무의 진수를 보여준다. 역시 망령들의 왕국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장면이다. (국립발레단, 스튜디오 리허설, 2014)




발레 교본에 나올법한 확실한 5번 포지션, 종아리 사이에 저런 다이아몬드 물방울 모양이 나오고 양발이 딱 교차되어야 제대로 된 동작. 물론 몸통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똑바로 서야 한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리허설, 2014)



  

열정과 애환을 한 몸에 지닌 니키아를 열연 중이다. 라 바야데르의 무희가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사법과 포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은원, 2014)




시원하게 날아보자. 개인적으로 그랑제떼 저렇게 한번 뛰어보는 게 소원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생애에는 불가능할 듯...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슬기 니키아, 2014)




  

명불허전 김지영표 그랑제떼. 순간 중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니키아, 2014)




여러 사람 동작이 마치 하나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을 한다. 멋진 군무로 유명한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2016년 3월에 만날 수 있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스튜디오 리허설, 2014)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 김경식, 김윤식(형제발레리노)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은 형제발레리노에게 있으므로 무단 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댓글을 통해 많은 구독자와 발레에 관한 즐거운 소통의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발레 공연 관람_좌석 예매하는 요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