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후기 2편, [더 발레 클래스] 출간 후 근황
원래 예정대로라면 이번 회차에서는 따땃하고 뭉클한 저자들과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는 게 항상 계획대로 되란 법은 없다. :)
[더 발레 클래스] 첫 출고 날, 총 8천 부 중 2천 부가 넘는 책이 하루 만에 전국 대형 서점과 발레용품 전문숍에 배본됐다. 예약 판매에서 이미 선주문이 많았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초도 물량이었다. 당연히 판매처가 한 두 군데가 아니기에 출고 첫날 거의 정신줄을 놓을 지경이었다. 좋기도 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왜...?'라는 의문과 함께 우리나라에 발레책을 읽고자 했던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하는 의구심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그래... 초도 물량이니 그럴 수 있어. 없던 콘텐츠니 궁금한가 보다.'
둘째 날, 당연히 대량으로 책을 입고했으니 한동안 재주문은 없겠다 싶었는데 판매처가 더 늘었다. 이름만 봐도 꽤 오랜 역사의 향기가 풍기는 각 지방 서점에서 책 주문하는 문자와 전화가 왔다. 도대체 총판 거래도 안 하는 내 핸드폰 번호를 이분들이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서 거래 중에 도리어 여쭤봤다.
"사장님, 그런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 출판사는 총판 거래도 안 하는데"
"(경상도 사투리로) 교보문고에 나오지예. 도서관 희망도서로 들어와서요. 우리 서점이 지역 담당입니데이"
그러고는 다급하게 발주만 후다닥 넣으시고 계산서 발행을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문자와 메일로 투척해주셨다. 솔직히 자세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분명 서점 계약 거래할 때 대표, 영업, 정산, 홍보 담당 등에 전부 내 번호를 직접 기입했으니 그런가 보다 싶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서점도 정말 많구나 생각이 들었다.
셋째 날, 여전히 바쁘다. 대형 온라인 서점의 재주문과 동시에 교보문고 오프라인 서점에 우리 책이 배본되기 시작했다. OMG... 영세 출판사는 배본도 어려운 광화문 교보에 종당 5~10권이 배본됐고, 강남 교보에는 무려 종당 20권이 배본되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발레 전문 오프샵에서도 계속 재주문이 들어온다. 오히려 거래를 많이 하셔서 물류의 베테랑이신 발레숍 사장님께서 나에게 문자를 보내주셨다.
"윤 대표님, 축하합니다. 이번에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온라인몰 오픈 36시간 만에 그 많은 초도 물량 솔드아웃! 바로 재주문 들어갑니다."
넷째 날, 그렇게 다급하게 나흘을 보내고 나서 배본소의 재고를 확인하니 책을 미리 만들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제작에 시간이 좀 걸리기에 자칫 이 속도대로 나가다 품절 사태가 나면 출판사도 독자도 모두 낭패라는 생각에...
다섯째 날, 원래는 며칠만 사태 더 지켜보고 인쇄소와 재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에 또다시 엄청난 재주문.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다. 바로 2쇄 결정을 내렸다.
출고 2주 차, [더 발레 클래스] 시리즈는 실물 책을 수령한 독자들 사이에서 '영롱'이라는 호를 얻게 됐다. 표지 중 후가공으로 들어간 홀로그램 부분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마케팅 기류가 흘러갔다. 소비자들이 좋아서 스스로 네 권의 책을 놔두고 인증샷을 찍어서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꼭 들어가는 멘트는 '영롱하다'라는 말이었다. 내용도 좋은 책, 이왕이면 더욱 예쁜 책이 되었으면 했는데 지점이 딱 들어맞았던 것 같다.
출고 3주 차,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교보문고에서 초도 물량만큼 많은 양의 발주가 들어왔다. 며칠 후 지인과 독자의 제보로 [더 발레 클래스] 시리즈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평대에 올라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로 출근했다 놀란 마음에 교보문고 강남점에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주말에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서 벅찬 마음을 다잡았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관해서는 나만의 기억이 있다.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던 책들을 보며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에 그 날의 기억을 소환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그리고 파리크라상
인스타를 뒤적였더니 2019년 1월 7일이었다. 출판사를 시작한다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용기가 없던 날들. 오랜만에 친구이자 출판사 선배 격인 포노출판사 최재균 대표를 만났다. 갑작스럽게 출판사를 시작할 거 같다는 뜬금없는 이야기에 함께 고민하며 이런저런 방향을 제시해줬다. 그가 하는 워딩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배가 고파서 주문한 치즈롤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장소가 교보문고 광화문점 파리크라상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혼자 들어가 책으로 뒤덮인 우주 속에서 심장이 서늘해질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머리가 멍했다.
2년 동안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냥 걸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물성을 가진 책은 분명 가격이 매겨진 물건이지만, 가격 이상의 마력이 있다. 아마 진짜 큰돈을 벌려면 출판사를 하면 안 된다는 선배 출판인들의 말이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안다. 그렇지만 난 책이 너무 좋다. 책을 쓰고, 기획하고, 책을 짓고, 저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서점 MD들에게 주접을 떨며 우리 책을 홍보하고, 여기저기 책을 파는 이 짓이 너무 좋다.
지난주 교보문고 전국 지점에 플로어웍스의 [더 발레 클래스] 시리즈가 당당하게 베스트셀러 평대에 올랐다. 오늘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서 책들을 봤다. 그렇게 꿈꾸던 그 자리에 우리 저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은 책들이 올라 있었다. 자랑스러움보다는 감사함과 겸손함이 먼저 밀려왔다. 다 이룬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할 수 있음에 더 좋은 토대를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한다.
가족과 함께 갔지만, 그 파리크라상에서 와인으로 혼자 축배를 들었다.
저자분들, 가족들, 독자분들, 그리고 여전히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날이다.
이렇게도 많은 분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는 [더 발레 클래스] 시리즈.
다음에도 더 좋은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이 암울한 코시국 시대에서 어떻게 하면 팬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과 클럽하우스 북토크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지난 2월 20일 1차 랜선 출판 기념회를 열고(5인 이상 집합 금지 방역 수칙을 지킴) 밤에는 클럽하우스에 북 토크 방을 베타 테스트로 열어보았다. 2월 27일(토) 오후 4시에는 2차 랜선 출판 기념회를 열고, 밤 9시30분에 매주 새로운 주제로 북 토크+저자와의 만남+워크숍 기능을 가진 방을 열게 된다.
많은 독자와의 만남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2월 27일(토) 9:30pm 플로어웍스 북클럽 | 발레리노, 그들의 이야기 | 발레리노+팬들 모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