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가 슬쩍 흘려주는 꿀팁
홀로그램 영롱한 네 권의 책이 독자들에게 도착하기 시작했다.
네 가지 형형색색 달콤한 표지 컬러에 마음을 뺏기고, 홀로그램의 마법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독자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올바른 발레 용어, 발레 작품의 세계, 발레 음악 산책, 발레리노 이야기.
‘우왓!!!!! 전부 알고 싶었던 분야인데 도대체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당신 마음 가는 대로 끌리는 표지, 제목 순서로 읽어도 된다.
하지만 에디터가 4종이라는 책을 와장창 낼 때는 작은 것 하나에도 비밀과 비법이 있다.
[더 발레 클래스] 순서의 비밀은 무엇일까?
사설에도 기승전결, 소설에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있듯이, 1권 ⟪올바른 발레 용어⟫부터 순서대로 정주행해야 한다. 발레는 문화이자 예술이자, 특이하게도 무언극이다. 무언의 코드가 텍스트로 변환된 순간 용어를 알아야 이해가 깊어진다.
에디터가 라라자매 작가의 샘플 초고를 처음 받았을 때 접한 페이지는 chapter 1의 <발레나라 말, 눈을 뜨다>의 첫 단락이다. 샘플 원고를 받고 너무 재미있어서 에디터 매의 눈이 아닌 독자로 빙의해서 바로 낄낄거리며 정신없이 원고를 읽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낯선 발레나라 말을 이렇게만 이끌고 가준다면 이 시리즈의 후속도 계속 출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때는 독자가 아닌 에디터 상태로 정신 차리고 돌아왔다)
도저히 한 번 잡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재담꾼 라라자매의 글. 발레나라 말의 낯선 여정을 만담 개그와 때로는 병맛 디스로 깔아놨다. 헨젤과 그레텔 빵조각 주워 먹듯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당신은 마녀의 집이 아닌 발레나라에서 편안하게 족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언어를 알아야 그 분야를 알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숏컷이다.
궁금하다면 어서 책을 펼쳐서 재담꾼의 이야기에 맘껏 빠져들라.
1권 ⟪올바른 발레 용어⟫를 정주행했더니 프헝쓰 너낌 가득한 발레나라 말을 두뇌에 장착했다.
앙트르샤 씨스는 지젤에서 알브레히트가 뛰던 동작, 푸에떼는 백조의 호수에서 오딜이 무섭게 돌던 동작, 랑베르쎄(헝베흑쎄)는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바리에이션 등장씬에 나온다.
가만있어 봐라…
그런데 내가 아는 클래식 발레 작품이 도대체 몇 개나 될까?
호두, 백조, 돈큐, 지젤, 라바, 롬앤줄, 고딸…
해적, 레이몬다, 파키타, 코펠리아…
나열하라고 하면 이름은 줄줄이 댈 수 있지만, 과연 내가 이 배경지식을 정확히 알고 있을까? 궁금할 때마다 찾아볼 수 있지만, 이걸 한 번에 볼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한 작품을 깊이 다루는 것도 좋지만, 꽤 많은 작품을 설명해줄 수 있는 책. 취미발레 입문자나 어린 학생, 전공생, 발레 애호가 모두 요약 노트처럼 들고 다닐 책.
[더 발레 클래스]가 출간되자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이런 기획을 했나요?”
대답은 간단하다. 발레애호가이자 취미발레인이자 발레맘인 내가 평소에 궁금했고, 알고 싶었던 부분이다. 더 알고 싶었고, 내게 필요한 레퍼런스가 있었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그것에 부합하는 책이 부족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는가?
목말라 죽을 지경인데 우물을 파야 하는 상황에 구원투수로 나서 준 사람이 바로 2권 ⟪발레 작품의 세계⟫의 저자 한지영 작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방대한 발레 전문 지식을 일반인에게 친절히 해설했다. 에디터는 무슨 복? 작가의 원고를 미리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교양의 우물을 집중적으로 팔 수 있었다.
덕분에 그냥 물이 아닌 백두산 암반수급의 맑고 시원한 생수로 나의 목마름을 충분히 해갈했다.
서른 개의 작품 해설과 삽화는 작품의 시그니처 장면을 표현했다.
클래식 발레 서른 개 정도 정보와 배경지식을 아는 것.
그게 발레애호가의 기본 아띠뛰드 아닐까? 우훗!
취미발레에 입문해서 직접 배워보니 몰랐던 것을 하나 알게 됐다. 클래스 시간에 분명 기존 알던 멜로디가 나오는데 내가 알던 그 음악이 아니다. 나중에 발레에 사용되는 음악은 ‘발레 음악’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재창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기존 클래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발레를 위한 고유의 리듬과 박자와 비트가 있다는 것을…
클래스에 사용되는 발레 음악과 공연에 사용되는 발레 음악의 차이점. 그래서 공연에서는 MR보다 숙련된 발레 전문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것이다. 무대 위의 무용수가 춤을 출 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는 춤을 빛나게 하는 연주자가 있었고, 클래스 스튜디오에서는 발레 피아니스트가 연습을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내 비밀 연애할 때 아무도 모르게 연인 서랍에 간식을 넣어주고, 상사에게 업무로 혼쭐이 나면 몰래 위로의 문자를 보내는 연인 같은 존재랄까? 발레와 발레 음악은 그런 사이였다.
3권 ⟪발레 음악 산책⟫을 기획하면서 비밀 코드를 몇 개 넣었다. 산책길이라는 큰 주제 아래 시간의 흐름대로 그 길을 따라간다. 클래식 음악계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가의 연대기를 따분한 도표가 아닌 산책길 위에 얹고, QR코드로 계속 길을 걷게 해준다. 봄에서 시작한 산책은 만추의 계절로 마무리된다.
부족한 레퍼런스 안에서 어려운 작업을 마무리한 국내 최고의 발레 피아니스트 김지현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작가의 밝은 에너지가 발레 음악 산책길의 햇살과 산들바람으로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해준다. 애쓴 이린 삽화가와 마지막 발레 클래스 영상을 협업한 아름다운 김성은 발레리나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이제 발레와 음악의 연인 사이를 공개하라!
다 들켰단 말이다!!
1권 ⟪올바른 발레 용어⟫, 2권 ⟪발레 작품의 세계⟫, 3권 ⟪발레 음악 산책⟫을 정주행으로 읽어 보면 알게 된다. 어려울 수 있고, 모를수도 있는 사실을 쉽게 썼구나. 발레를 몰라도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이 시리즈의 독자라면 ‘레베랑스(révérence)’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필진 1기 저자들은 독자에게 발레를 소개하며 다정한 레베랑스를 건넸다.
4권 ⟪발레리노 이야기⟫의 탄생 비화가 있다. 에디터의 아들은 현재 발레를 전공하고 있다. 어느 날 개인 레슨 시작 전에 (간달프) 선생님이 아들의 옷 매무새를 잡아줬다.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옷 입는 법 가르치는 것처럼. 남자 선생님이 남학생에게 서포터즈 착용법, 타이츠, 허리 밴드, 티셔츠 착장을 도와주는 모습이 기시감(旣視感)으로 각인됐다. 두 선후배 발레리노를 보며 순간 머릿속 섬광처럼 무언가가 지나갔다.’
‘아… 이 장면을 책에 담아야겠다.’
발레리노의 희로애락을 소개할 사람이라면 단연코 이영철 작가였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후배들에게 세세한 것을 전수해주세요. 관객들이 궁금해할 모든 캐릭터를 주・조연 상관없이 영철 작가님 느낌대로 분석해주세요. 발레리노의 젠틀함이 무엇인지 써 주세요.” 이영철 작가는 진정성 담은 문체로 나를 감동시켰다. 초안부터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아티스트 이전에 멋진 인간이구나. 인간이 멋있어서 춤도 멋있었구나.
⟪발레리노 이야기⟫는 단순한 에세이의 차원을 넘는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그대로 담았다. 그래서 이 책을 1기 마지막으로 잡았다. 발레 시리즈로 마냥 고조된 당신의 감정을 벽난로 앞에서 마시는 따뜻한 코코아처럼 살포시 이완시켜 줄 한 권의 책이다.
이영철 작가의 숨결까지 담아낸 김윤식 포토그래퍼의 사진은 보너스로 선물한다.
*글 : 플로어웍스 에디터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