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발레 영화_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Hold! Nice straight leg. Good arch..."



2.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부제: "Hold! Nice straight leg. Good arch..."



발레에 관련된 영화라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모든 장르를 통틀어서 꼭 봐야 할 추천 영화 리스트 안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줄거리를 딱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작은 시골 탄광촌의 한 소년이 운명적으로 발레를 만나고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이야기" 
보통 춤과 관련된 영화의 클리셰는 춤을 좋아하는데 역경이 닥치고, 절호의 찬스의 공연이나 무대를 통해서 반전이 일어나고, 그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때로는 다른 장르와의 댄스 배틀 같은 것으로 눈요기와 동시에 심박수가 좀 빨라지게 만들고, 마지막엔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를 나누고 주변에서는 마구 춤을 추고, 엔딩 크레딧 올라가고... 그래서 처음 한 두편을 볼 때는 재미를 느끼지만 이런 장르의 영화가 킬링타임 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이에 반해서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남자 주인공인 소년(제이미 벨)의 연기부터 영화의 끝내주는 편집까지 정말로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어... 소년이 발레를 좋아하게 되고,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 멋진 발레리노가 되어가는구나.'라는 정도로 보게 되는데 이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면 놓쳤던, 그러나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놓쳐서는 안될 명장면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영화 소개에는 그 포인트를 몇 가지 짚고 넘어갈까 한다. 잘 읽고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빌리 엘리어트>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1. 빌리가 처음 발레를 배우던 날, 바워크 중 데가제를 할 때 선생님이 다가와서 빌리의 다리를 보며 넌지시 던지는 말
"Hold! Nice straight leg. Good arch..." 

여기까지 말하고 역시 그 선생님 스타일대로 다리를 홱~ 내던지듯 내려놓는다. 
항상 담배를 물고 사는 불량스러워 보이는 동네 아줌마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 하지만 이 분은 그냥 선생님이 아니다. 한 번에 빌리의 다리와 체형을 보고 보통 재목이 아니라고 여기는 매의 눈을 지닌 선생님이다. 데가제 상태에서 버티고 홀드하는데 다리 라인이 내가 봐도 기가 막히다. 요즘 말로 무심한 듯 시크하다 못해 츤데레 끝판왕을  달리는 선생님은 발레의 B자도 모르는 빌리를 자신도 모르게 발레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 춤추는 즐거움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일등 공신이 아닐까 싶다.

권투 배우러 왔다가 자석에 철가루 붙듯이 발레 클래스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빌리. 발레와 운명적 만남을 하는 첫 장면. (윌킨슨 선생님 딸인 데비가 같이 배우자고 한다.)



2. 빌리가 처음으로 피루엣을 배우는 장면
발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장면이다. 어쩜 무용수들은 더블, 트리플, 16회전, 32회전 피루엣(턴 또는 스핀)을 뱅글뱅글 돌고도 멀쩡히 서있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게임하다가 코끼리 코 10바퀴만 돌고 직진본능이 안돼서 사선본능의 고도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바로 시연할 수 있다. 춤을 배워보지 않은 사람은 궁금하다 못해서 마냥 신기하기만 한 피루엣의 세계. 비밀은 바로 스팟(spot)에 있다. 거울에 내 눈높이에 나만의 점(spot)을 딱 찍어놓고 응시하다가 몸의 축을 바로 세우고 (준비자세) 홱~ 돌아서 다시 그 점에 올 때까지를 최단시간 내에 동작을 수행하면 바로 싱글 피루엣(한바퀴 턴)이 완성된다. 영화에서 빌리가 혼자 화장실에서 돌고, 물건 떨어뜨리고, 욕조에 빠지고 하는 과정을 교차편집하는데 계속 들리는 소리는 '준비'(prepare, 영국식 발음으로 프리패~~아, 발레 클래스에서는 흔히 프레파라시옹이라고 한다)와 '고우 빌리!!!(Go Billy!!)'만 들린다. 클래스의 청일점 빌리가 튜튜 입은 소녀들 사이에서 거울에 자신의 스팟을 찍어놓고 심각하게 피루엣을 처음으로 완성하는 장면, 게다가 싱글도 아니고 더블을 완성하며 만족도에 씨익~ 웃는다. 이 장면의 화룡점정은 피루엣의 완성보다 츤데레 선생님의 이어지는 말이다. "빌리 팔은 어떻게 된 거니?" 
하하하!!! 취미발레인은 안다. 피루엣 할 때 스팟이 되면 몸의 축이 안 서고, 축 겨우 세우면 팔(폴 드 브라)이 코미디 수준으로 된다는 것. 한 번에 우아한 싱글 피루엣을 수행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선생님의 '프리패~~아' 구령(?)에 긴장 준비 모드 장착인 빌리. 한 바퀴 돌아주시면 되겠다.



3. 선생님과 비밀 레슨을 하고 런던 로열 발레학교 오디션을 준비하며 추던 바워크의 아다지오
어려서 엄마가 죽고 무뚝뚝한 광부 노동자 아빠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광부이자 노조 운동을 하는 형과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와 살고 있는 빌리.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많지만 그것조차 표현하는 방법을 아예 모르는 빌리. 자신의 발레 선생님이 엄마처럼 다정한 사람은 아니지만 티격태격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밤중에 치매 걸린 할머니의 몽유병적인 잠꼬대를 보며 우유를 마시러 나온 빌리에게 생전의 엄마가 환상으로 나타나서 '우유병에 입대고 마시지 말아라, 뚜껑 닫아서 냉장고에 넣어놓지 그러니...'라는 지극히 일상의 엄마의 모습으로 빌리 앞에 잠깐 나온다.  빌리가 꿈결처럼 엄마의 환상과 조우하고 나오는 바로 다음 장면이 선생님과 마주 보며 바워크의 아다지오를 하는데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폴 드 브라는 알라스콩으로 고정, 파쉐, 데벨로페 드방, 파쉐 데벨로페 데리에... 5번 쑤쒸 앙오로 고정... 지극히 간단한 동작이지만 빌리는 이 장면에서 결코 완벽하지는 않지만 호흡을 들고 내리고 표정과 발끝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춤을 추고 무용수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선생님이 빌리를 한 번도 칭찬하지 않지만, 선생님의 눈빛과 음성에도 무한의 감격이 묻어나오는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인 제이미 벨의 무릎 아래부터 종아리, 발등 아치와 라인으로 마치 초보 티를 벗어나 제법 괜찮은 무용수로 성장한 듯한 모습을 연기한다.(실제 제이미 벨은 이미 춤을 잘 추는 아역 배우였다) 발레의 아다지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쉐 좋고~~ 제법 무용수다운 모습. 어려움 속에서 얼마나 춤을 진지하게 대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명장면...



빌리 엘리어트 하면 발레는 여자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빠 앞에서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막무가내 열정의 춤을 추는 장면(결국 이 춤을 보고 아빠는 편견을 접고 빌리를 장래를 위해 아들을 지원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지막 성인이 된 빌리가 로열발레단 공연에서 주역 백조로 나오는 장면(매튜 본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아담 쿠퍼가 이 연기를 대신했다)에서 눈물 가득 고인 아빠가 금방이라도 심정지를 일으킬 것 같은 격한 감동의 표정을 짓는 씬이 가장 유명한 장면일 것이다. 발레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 두 씬은 감동적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멋지다.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가 발레 영화를 떠나서 훌륭한 영화라고 하는 이유는 발레에 대한 편견을 은근한 비유로 세련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발레를 하는 남성에 대한 성 정체성에 대한 부분인데 발레를 했던 빌리가 아닌 오히려 가장 친했던 친구가 게이었다는 설정, 아버지가 포함된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이 결국 실패로 끝나고 아버지와 형은 갱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땅 속 깊으로 곳으로 '내려가는' 장면에 이어서 런던으로 떠나는(수평이동) 빌리의 버스에 이어서 시간차를 뛰어넘어 어색하게 애써 정장을 갖춰 입은 아버지와 형이 런던의 메트로를 타고(수평이동) 극장에 도착하는 장면에 이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땅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이때 아버지는 올라가는 방향과 반대로 몸을 향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 비해서 원대한 꿈을 펼치고자 했던 빌리의 이상향은 아버지와 형의 희생과 지원으로 이뤄낸 것이지만 이것을 신파로 엮지 않고, 세련된 비유와 이성적 상징의 미장센으로 풀어낸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다. 



감독의 훌륭한 기획과 소년 주연 배우의 열연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고, 단순히 발레 영화라고 해서 짜릿하고 시원하게 춤을 추는 무용수가 아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실력이 조금씩 늘고 눈빛이 점점 진지해져 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취미발레를 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가? 취미발레인인 나로서는 이 영화를 아무리 무한 반복하고 봐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괜스레 거울 뚫어져라 째려보면서 진지하게 싱글 앙디올 피루엣 한번 해보고 싶은 날이다. 



우선 내일 발레 클래스 가면 제대로 된 1번 아라베스크라도 연습을 좀 해야겠다.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출처 : 영화 <빌리 엘리어트> 이미지 (네이버, 다음)


댓글을 통해 많은 구독자와 발레에 관한 즐거운 소통의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발레 영화_백야 (White Night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