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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고픈 그들의 이야기_최영규 01

숨겨놓기에는 그 아우라가 너무 강한 발레리노



우리가 사랑하고픈 그들의 이야기_최영규 01

제2부 / 우리가 사랑하고픈 그들의 이야기



1. 최영규 발레리노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Dutch National Ballet)_01

숨겨놓기에는 그 아우라가 너무 강한 발레리노



2016년 1월 필자는 SNS에서 공연 후 무대 뒤 단원들의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시즌 마무리를 하며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 막공을 마친 단원들에게 수고했다는 멘트 중간에 한 단원을 소개한다. 주역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불려 나오고, 매니저급 감독으로 보이는 이 남성의 한 마디에 동영상을 보던 내 몸에 소름이 쫘악 돋는다.

~~blah, blah, blah… "from now on you are a PRINCIPAL!!!”

함께 있던 동료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내고, 이 청년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감격스러워한다. 이 동영상에 ‘Young’이라고 불려서 나오는 남성은 이번 연재 기획에 첫 주자로 나설 최영규 발레리노다. 그는 올해 1월에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승급되었다.

한국에서 발레를 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발레리노 최영규. 하지만 아직 발레 예술의 팬덤이 얕은 우리나라 현실상,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잘 모르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무용수, 필자는 그의 춤을 볼 때마다 묘한 상상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발레리노의 춤에도 격정과 우아함과 관능미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 그동안 소중하게 나 홀로 간직하고픈 무용수였는데 그를 알아갈수록 대중에게 더욱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숨겨놓고 싶어서 곱디고운 실크로 감싸 놓았는데 지니고 있는 아우라가 강해서 이미 그 빛이 새어 나와 버린 그. 발레리노 최영규에게 좀 더 다가가 보자.



필자를 소름돋게 하고, 많은 발레팬들을 기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장면 (영상제공 : 최영규)




최영규 발레리노를 만날 시간이 되었다. 잘 몰랐던 그의 모습을 하나씩 알아가 보자


윤여사(이하 윤) : 영규씨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질문에 앞서서 제가 알게 된 영규씨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요. 영규씨는 제가 연재 기획 인터뷰를 계획할 때 국내 발레리노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했었고 추천하는 무용수였어요.

최영규 (이하 최) : 안녕하세요. 지영씨. 하하하 아… 그랬나요? 그냥 친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윤 : 아니, 그냥 단순히 친해서 좋아하는 무용수를 말하기보다 영규씨보다 연배가 조금 위인 발레리노도 가장 존경하는 무용수를 묻는 질문에 영규씨 이름을 댔었어요.

최 : 아… 진짜요? (심히 당황하며) 그냥 친하고 그래서 그런 거…

윤 : 친해서 하는 이야기와는 달라요. 영규씨 이 이야기는 좀 놀라셨나봐요?

최 : 네, 좀 놀라기는 했는데 기분 좋고, 영광입니다.


윤 : 저도 무용수들과 협업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른 발레리노들이 정말 영규씨에 대해서 아끼고, 좋아하고 그런 부분이 느껴져서 오히려 제가 궁금했어요. 아… 이 사람은 어떤 면을 지니고 있기에 동료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까? 영규씨가 참 멋진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죠. 저 역시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고, 또 한 명의 선배 발레리노는 자신의 발레 인생이 가장 기뻤던 두 번이 있는데 그중 한 순간이라고 표현했던 그 영상. 영규씨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승급하는 장면. 그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때 어땠어요?

최 : 승급하기 약 1년 전부터는 승급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물론 처음 발레단 입단했을 때는 나도 빨리 승진하고 여기에서 잘하고 싶고 주역도 되고 싶고 그랬었죠. 그런데 막상 솔리스트가 되고 나서는 역할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승급에 대한 생각 자체가 춤을 추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내가 주역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춤을 추어야겠다는 생각이 정말 비효율적이고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수석 승급 전 약 1년 넘게는 그냥 춤추고 무대에 올라가는 게 너무 기쁘고 좋았어요. 그래서 춤추는데만 더 집중을 하고 있었어요. 승급 기대도 안 했는데 갑자기 돼서 정말 깜짝 놀랐죠.

윤 : 그러니까요. 제가 그 동영상을 봐도 영규씨가 전혀 예측을 하지 않았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누가 옆에서 동영상을 찍어주셨잖아요. 호두까기 인형 마지막 공연 끝나고 무대 뒤에서 갑자기 발표를 한 것이었나요?

최 : 네, 시즌 모든 공연 마치고 호두까기 인형 막공 마치고 휴가 바로 직전에 공지하고 인사하는 자리였어요.

윤 : 그 장면 무슨 다큐멘터리나 발레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어요.

최 : 하하하… 그런데 무용수라면 그런 순간을 한 번쯤은 꿈꿔봤을 것 같아요. 뭐, 주역이 되는 순간이라든가… 아… 내가 만약 주역이 되는 순간이라면 어떨까? 이런 식의 상상은 해봤죠. 그러나 막상 그 순간에 진짜 벌어지니까 예전에 발레단에 입단해서 코르 드 발레로 시작해서 힘들고, 아팠고 그랬던 모든 일이 머릿속에 샥~ 지나가더라고요.

윤 : 아… 그 흔히 영화 필름처럼 샥~ 지나가는 그 느낌이요?

최 : 네 맞아요. 처음 네덜란드에 왔을 때 아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사람들… 그리고 여기는 학교가 아니고 사회생활이었으니까요.

윤 : 영규씨가 몇 년도에 가셨죠?

최 : 2011년도에 입단했어요.





발레 하던 소년이 최고의 발레리노를 꿈꾸다.
그와 대화하다 보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가 현실 세계로 등장한 것 같다.


윤 : 이쯤에서 영규씨의 프로필을 간단히 얘기해주신다면?

최 : 한예종 졸업했고요. 그 전에는 예비학교 다니고, 그전에는 선화예중 2년 다니고 중3 때는 인문계 중학교로 전학을 해서 다녔어요.

윤 : 아… 발레를 하다가 인문계로 가신 거였네요?

최 : 그때도 발레는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집안 사정으로 일반중학교 다니면서 한예종 예비학교를 겸해서 다녔고요. 고등학교 때 로잔 콩쿠르에서 수상해서 2년 동안 스위스 발레학교에 가게 됐어요.

윤 : 장학생 개념으로 가신 거였겠군요?

최 : 네, 그때 집안이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집안을 생각하면 장학금 받으며 스위스를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15살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영어도 하나도 모르고 발레 하나 보면서 얼떨결에 갔었어요. 처음 가서 그 시절이 진짜 힘들었어요.


윤 : 그리고 15살이면 남자들에게는 청소년기이자 딱 사춘기잖아요.

최 : 맞아요. 음… 그렇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그렇게 했던 게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그 시기가 없었으면 제가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윤 : 제가 인터뷰하는 모든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는 발레계의 선배는 아니지만 영규씨보다 조금 더 많이 살아온 인생의 선배로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들. 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아주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 살면서 넘어야 하는 어려운 산들 있잖아요. 그 산을 넘고 어둠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큰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냥 고생 말고, 좀 속된 표현으로 개고생 시절이 있어야 발전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어떤 사람은 ‘어휴~ 잘됐으니까 그런 배부른 소리를 하지’라고 하기도 하는데 저는 반대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려운 순간이 있었고, 그것을 극복했기에 잘될 수밖에 없다라고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 살면서 비슷한 무게의 어려움이 와도 음…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이겨낼 마음의 근력도 생기고요. 그래서 영규씨의 그 어려웠던 시절이 빛나고 가치 있게 느껴지네요.

최 : 아… 그런데 이 말씀에 정말 공감이 돼요. 어려움을 느껴 본 사람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극복하고 이겨내는 정도가 달라요. 저도 지금 잘돼서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과정이 제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모델 / 최영규, 사진 / 김경식, 2016) kyung6ⓒ 2016



윤 : 저는 그런 면에서 영규씨 춤이 참 좋아요. 영규씨 춤에는 영규씨만의 라인이 살아있고, 표현하는 방식도 참 좋아요. 우리 아이가 돈키호테 바질 솔로 바리에이션을 좋아해서 이런저런 동영상을 보다가 영규씨의 리허설 동영상을 보고 ‘엄마, 어떻게 이 형은 이렇게 춤을 출 수 있어요?’라고 하면서 말문이 막혀한 적이 있어요.

최 : 아… 바질 솔로 바리에이션은 그… 바리시니코프 아시죠? 그걸로 봐야 하는데…

윤 : 하하하. 바리시니코프, 당연히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그리고 정말 훌륭한 무용수라는 것도 알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왠지 자기가 이름과 얼굴도 아는 친근한 발레리노가 무대에서 그런 춤을 선보이면 그 놀라움이 있고,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최 : 아… 그런 이야기 들으니 참 좋네요.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요.


https://instagram.com/p/BMIJnmrBoR_/

멕시코 공연 전 돈키호테 바질 솔로 바리에이션 무대 리허설 (자료 출처 : 최영규 인스타그램)




네덜란드 이야기. 그가 살고 있는 곳.
그와 대화하다 보니 네덜란드 발레단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윤 : 영규씨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 어때요?

최 : 여기는 워낙 복지가 잘돼 있는 복지국가고요. 평등사회가 일반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살기가 정말 편해요.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살기에 가장 편한 나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윤 :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은 단원이 몇 명 정도 되나요?

최 : 음… 지금 87명 정도 돼요.

윤 : 그중에 외국인 비율도 많고요?

최 : 여기 굉장히 인터내셔널을 지향하는 발레단이라서 거의 80% 정도가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인종차별 같은 것도 훨씬 덜하고요.

윤 : 김지영 발레리나가 거기 있었죠? 그리고 남자로서는 영규씨가 처음 입단을 한 거고요.

최 : 네, 맞습니다.


윤 : 특별한 입단 계기가 있었나요? 어떻게 꼭 이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가요?

최 : 일단은 예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발레단이었고요. 지영 누나(김지영 발레리나), 세현 누나(권세현 발레리나)가 계셨었고요. 국내 남자 무용수는 제가 처음이었어요. 이런 발레단이 있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서 한번 가서 오디션을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유럽에 가서 춤을 춰보고 싶다고도 생각했었어요. 그러다가 오디션을 보게 됐죠. 그런데 답을 한 번에 안주더라고요. 오디션을 봤는데 계약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5월까지 기다렸어요. 이곳의 계약할 수 있는 자리가 확실치 않았었어요.

윤 : 그럼 일종의 오디션 보고 대기 상태였던 건가요?

최 : 그렇죠. 이곳의 자리가 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아… 안됐나 보다'고 생각했을 때 계약 통지서가 왔어요. 그런데 나중에 단장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예전에 뉴욕에 콩쿠르 나갔었는데 그때의 제 모습을 기억하고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얼굴도 낯이 익었었고, 그때를 기억해주신 게 좋았어요.


윤 : 영규씨는 코르 드 발레부터 다 차곡차곡 올라갔잖아요?

최 : 네 맞아요. 아주 차곡차곡 올라갔죠.

윤 : 그곳에 가서 첫 번째로 맡은 배역이 어떤 거였어요?

최 : ㅎㅎㅎ 사실 처음 와서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윤 : ㅎㅎㅎ 어떤 점에서…?

최 : 네덜란드 처음 와서 이곳의 굉장히 유명한 안무가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에서 계속 클래식 발레만 했고, 러시아 메소드로 배우고, 여기 스타일의 그런 안무는 처음 접한 거였어요. 솔직히 너무 이상한 거예요. 동작들도 이상하고, 막… 이상한 걸 해요. 그것도 코르 드 발레에 세컨드 캐스팅으로 해서 뒤에서 맨날 순서만 외우고 그러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 내가 아무래도 컴퍼니를 잘못 온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하하 (이때 최영규 발레리노의 표정은 그때 상황을 상기하는듯 상당히 진지했다.)

윤 : 하하하 모든 것이 엄청 낯설고요?

최 : 네. 그렇죠. 지금 생각하면 그런 작품들은 되게 감정에 몰입하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중요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때의 저는 그런 것을 너무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계속… 왜 이 동작을 해야 하지? 하면서 생각이 많이 들었죠. 아… 이게 뭔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윤 : 아… 내가 과연 여기 온 게 맞는 것인가? 옳은 선택이었나? 이렇게까지 몇 개월 기다려서 왔는데…?

최 : 하하하 그땐 그랬어요.


윤 : 이렇게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교과서, 아니 무슨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 같아요. 발레 전공하는 친구들이 참고할만한 위인전 이야기? 하하하 음… 제가 이런 얘기하기는 뭐하지만, 이런 영규씨를… 아직 한국에서는 최영규 발레리노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영규씨는 발레 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다른 뜻이 아니라 한국에서 엄청난 스타성을 지니고 해외에 진출한 경우가 아니라 진짜 그곳에 가서 모든 과정을 이루신 거잖아요. 제가 인터뷰하는 입장이지만 영규씨를 보면 숨겨진 보석 같아요. 이미 원석에서 최고의 단계로 가공이 된 빛을 발하는 보석. 그런데 그 보석을 다른 사람이랑 공유하기 싫은 우리들만 아끼고픈 욕심쟁이 마음도 좀 생기네요. 하지만 인터뷰어로서 이런 숨겨진 보석 최영규를 알려야 하고요…

최 : 아… 감사합니다.

윤 : 영규씨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부터 수석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역할을 맡으면서 내가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결정적 순간이 있었나요?

최 : 항상 중요한 역할 맡아서 할 때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머큐쇼 역할이라고 한다면, 한 작품에서 어느 정도 비중이 있는 역할이 주어지면 저에게는 모두 처음이거든요. 저한테는 해봤던 역할이 아니라 전부 처음인거죠. 컴퍼니 생활을 여기서 시작한 거니까요. 작품의 역할을 하나씩 맡아서 할 때 ‘아… 여기 오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윤 :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은 클래식과 모던의 작품 비율이 어느 정도 되나요?

최 : 반반이에요. 한번 클래식하면 한 번은 모던하고… 그렇게 계속 진행이 돼요.

윤 : 해외 발레단이 그런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상반기에 클래식을 하면 하반기에는 모던이나 창작을 하는 식으로 작품의 비율의 밸런스를 맞추기도 하죠. 그런데 그것이 발레 팬들에게는 좋을 것 같아요. 한 번은 클래식 작품으로 보고, 그다음은 좀 낯설고 이질적일 수 있지만 모던이나 창작발레를 보면서 안목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거죠.

최 : 네. 맞아요. 그리고 이런 경우가 댄서들에게도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저희 발레단은 한 달 단위로 모던, 클래식, 모던, 클래식을 번갈아 가면서 하다 보니까 적응하고 전환하는 속도도 점점 빨라져요. 작품이 주어졌을 때 최고의 수준으로 내놓아야 하니까 집중하고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다시 말하면 그것이 무용수의 능력을 최대치로 올릴 수 있죠. 제가 여기 6년 차인데 그 생활에 적응이 되다 보니까 그 점이 상당히 발전을 했어요. 안무가가 뭔가를 주면 그것을 제 것으로 빨리 만들어서 저만의 춤으로 내놓게 되죠. 단지 변환하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거예요.

윤 : 이런 비유가 좀 그렇지만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마치 중국의 변검술처럼 슉~슉~ 바뀌는 게 떠올랐어요. 이런 환경에서 발레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좋지만, 누구보다도 무용수들의 능력이 발전할 수밖에 없겠군요.

최 : 이런 환경을 버티고 여기서 적응을 한다면 무용수로서 계속 성장해나갈 수 있는 것이죠.

윤 : 한 해 공연은 약 몇 회 정도 하나요? 해외 공연도 많이 나가나요?

최 : 네덜란드 내에서의 한 해 공연은 약 100회 정도 하고요. 해외 공연은 매 해 두 번 정도는 다니는 것 같아요.




발레리노 최영규가 바라보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만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윤 : 이번에는 조금 어려운 질문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색깔을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한다면?

최 : 색깔이라… 저희 발레단은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말 그대로 상당히 인터내셔널 컴퍼니라서 각 무용수의 취향, 춤의 느낌 등 다양성이 섞여 있어요. 그런 다양한 무용수를 데리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또 그 결과가 아주 멋있게 나와요. 크리에이티브한 작품도 많고, 사고의 유연성이 존재하는 발레단이에요. 그래서 어떤 것을 주던 단원들이 빨리빨리 변환시킬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성향이 있죠. 외부에서 안무가가 와서 새로운 것을 던져줘도 모든 무용수들이 빠르게 습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일하기가 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윤 : 제가 이 질문을 인터뷰 진행하면서 꼭 하는 건대요. 보통 한 가지 색상으로 표현하길 바랬는데 이런 표현은 처음이에요. 그런데 영규씨 이야기 들어보니까 맞네요. 주변 색에 맞춰 변환시킬 줄 아는 카멜레온 같은 능력.

최 : 레퍼토리가 모던과 클래식을 빠르게 넘나들어서 계속 그 수행능력이 발전하는 것 같아요.



윤 : 아참! 어제 라 바야데르 솔로르 잘했어요?

최 : 아! 어제는 황금신상 했어요. 솔로르는 멕시코 돈키호테 해외 공연 다녀와서 할 거예요.

윤 : 와… 영규씨가 추는 춤 실제로 보고 싶네요. 언젠가는 저를 비롯한 많은 발레 팬들이 영규씨 공연을 함께 봤으면 좋겠어요. 한국으로 오셔도 좋고, 아니면 다 같이 유럽 발레 관람계를 하나 형성해볼까도 생각해요. 하하하

최 : 하하하… 정말 그런 거 하실 것 같아요. 그런 날이 올 것 같은데요?




다정한 목소리,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
그러나 그의 춤은 하늘을 날다 사냥감을 향해 매섭게 돌진하기도 하고
동시에 부드럽고 우아하게 날갯짓을 하는 기품 있는 독수리를 닮았다.


윤 :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만의 춤의 강점이 무엇일까요?

최 : 제 입으로 직접 말하는 제 춤의 강점이라니… ㅎㅎㅎ

윤 : 그렇죠. 남이 보는 강점도 있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강점 있잖아요. 강점이라는 게 꼭 잘하는 것만 말한다기보다 자기 춤에 있어서 좋아하는 그런 면 있잖아요?

최 : 저는 일단 역할을 맡아서 춤을 출 때 그 역할에 온전히 몰입하는 능력이랄까 그런 것이 있어요. 발레에 있어서 춤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잖아요. 특히 클래식 발레는 모든 마임을 할 때 음악이 그 동작에 딱 맞게 되어 있어요. 제가 만약에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한다고 하면 딱 그 음악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어요. 무대에서 음악과 춤의  느낌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것을 좋아해요. 솔로 파트를 할 때 점프를 잘 뛰고 피루엣을 잘 돌고 하는 테크닉적인 부분보다 어떤 것을 표현하더라도 음악과 딱 하나가 되는 그 순간… 아…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순간이죠.

윤 : 그 순간을 본인 스스로 깨닫는 거잖아요.

최 : 네. 그 딱 떨어지는 느낌. 그것을 알기에 그것 때문에 춤을 추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잘 몰랐어요. 예전에는 그저 동작에서 실수하지 않고 무사히 해내면 아… 만족하는 공연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테크닉에서 실수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요. 왜냐하면 저는 프로페셔널이니까요. 단순한 테크닉을 넘어서 연기의 표현까지 음악과 하나 되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때 ‘아! 이번 공연 좋았다’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은 나도 느끼지만 관객까지도 전부 하나가 돼요. 모두 똑같이 그것을 알고 함께 느끼는 거죠.

윤 : 우와... 이제 사골국을 점점 진하게 우려내는 단계에 도달하신 거네요.

최 : 그런데 참 그게 쉽지가 않아요. 경험도 많이 해야 하고요. 저도 올해 1월에 주역이 돼서 아마 앞으로 더 폭넓게 되겠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게 될 것이고요.

윤 : 사실 발레가 쉬운 예술이 아니잖아요. 단순히 테크닉을 떠나서 하나의 동작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기 때문에 영규씨가 지금 얘기하는 부분들, 세세한 감정 표현까지 포함한 모든 것이 한번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죠. 몸에서 우러나와야 하잖아요. 그것을 깨닫는다는 것. 그것이 발레를 하게 하는 어떤 힘의 원동력이 될까요?

최 : 발레로 표현하는 그 느낌이 상당히 스페셜한 것 같아요. 아마 다른 분야에 있었다면 이런 미세하고 섬세한 상황을 캐치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모델 / 최영규, 사진 / 김윤식, 2016) yoon6photoⓒ 2016



발레 이야기 말고, 청년 최영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준비된 총각 최영규 공개 :)


윤 : 네덜란드에 있으면서 식사도 잘하시고요? 아무거나 다 잘 먹는 편인가요?

최 : 네 저는 아무거나 잘 먹기도 하고요. 요즘엔 제가 스스로 많이 해 먹고 있어요.

윤 : 오~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요리하는 발레리노였군요?

최 : 하하하 뭐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고요.

윤 : 요즘 한국에서는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예요.

최 : 아.. 그래요? 그러면 요리 잘한다고 써주세요. :)

윤 : 취미생활 ‘요리’ 이렇게요? 하하 그렇다면 무슨 요리 잘하세요?

최 : 한국요리도 하고요. 서양요리… 파스타… 뭐 이런 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니까요.

윤 : 와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보통 솜씨는 아닌데요?

최 : 아니오. 그게 뭐 어떻게 하냐에 따라… 잘하는 거랑 그냥 하는 거랑 차이가 있으니까…

윤 : 그게 손맛이잖아요.

최 : 그렇네요. 음… 사실 그렇게 못하지는 않아요. 간을 잘 맞추는 것 같아요.

윤 : 그거 되게 중요해요. 제가 14년 차 주부인데 음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 간 맞추기예요. 기본 간이 잘 맞으면 음식은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반대로 아무리 예쁘게 보기 좋게 차린 음식이어도 간이 안 맞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간을 잘 맞춘다… 이걸 강조해서 써야겠군요!

최 : 하하하 그런데 이렇게 해놓고 실제로 먹어보는데 별로이면…

윤 : 설마 누가 거기까지 가서 영규씨 요리 잘하나 못하나 해보라고 하겠어요?

최 : 하하하 그러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윤 : 한창 청춘인데 연애도 많이 하고 그러셔야죠.

최 : 제가 대학 들어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7살이에요. 이제 3년 있으면 서른…

윤 : 스물 일곱이면 한창이죠. 결혼 조금 천천히 하더라도 연애도 해보고…

최 : 저는 만약 정말 괜찮은 사람 만나면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윤 : 영규씨는 잘할 것 같아요. 좋은 가장이 될 것 같아요. 음식 간도 잘 맞추는데 와이프한테 얼마나 사랑을 받겠어요? 후후 또, 아무거나 해주면 잘 먹죠? 특별히 입맛 까탈스럽지 않고?

최 : 네 그래요. 저 정말 가리는 음식 없습니다. 하하하

윤 : 영규씨는 연애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좋은 짝이 나타나면 결혼도 가능하다 그런 쪽이네요. 요리도 잘하는 남자가 결혼을 할 준비도 되어있다. 와… 이건 뭐 거의 일등 신랑감이군요. 꼭 적어서 많은 팬들께 알려야겠어요.



최영규_02 에서 계속...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발레리노 최영규 인스타그램 http://instagram.com/younggyuchoi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및 영상 : 형제발레리노 (김경식/사진,영상, 김윤식/사진)

*첨부된 사진 및 영상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형제발레리노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브런치 구독 및 댓글로 많은 독자와 발레에 관한 즐거운 소통의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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