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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자들_그들을 알고 싶다 02



취미자들 특별 좌담회_02



각자가 몰두한 취미생활로 인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들.
외부에서 보는 관점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 느끼기에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존재할 것 같았다. 남들이 보는 관점 말고 나 자신이 생각하는 기억에
남으면서도 가치 있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저서 <어쩌다 마주친 발레> 출판기념회, 2016

윤여사 : 그럼 각자의 취미생활을 누리면서 겪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한 가지씩 이야기해볼까요? 모두들 진지하게 생각을 하시니 제 경우를 먼저 이야기할게요. 제 경우는 책을 낸 거예요. 건축 전공자인데 제 인생에 첫 단행본을 낸 분야가 취미인 발레 책을 내게 된 거죠. 발레가 좋아서 취미생활로 하고, 발레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왔는데 그것이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작년에 출간이 될 때까지를 돌이켜보면 분주하고 정신없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책이 나오게 된 거 같아요.

윤식 : 저도 지영씨랑 좀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막연히 책을 냈다기보다 책을 내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과 과정을 통해서 다른 세상을 보게 된 일이랄까요? 저한테는 다른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셈이에요. 하하하 여기에서 표현하기 힘든 많은 일들이 있었죠? 그렇죠 지영씨?

윤여사 : 하하하 파란만장한 2016년이었죠. 모두들 수고 많았고요. 윤식씨가 유럽 무대로 진출할 결심을 한 배경에도 이 일이 어느 정도 작용을 했을 것 같아요. 사실 경식씨, 윤식씨의 헌신과 노력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저도 출간을 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경식 : 힘들었지만 지영씨나 저나 윤식이에게 어떤 계기를 만들어줬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제 시작이죠. 뭔가가 눈앞에서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하고요


https://youtu.be/xkfHebhBT0c

motion in square / Nusret gökçe saltbae, 2017




윤여사 : 그럼 대현씨에게 질문할게요. 대현씨의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대현 : 아무래도 연주회죠. 사실 피아노라는 악기는 다른 악기처럼 협업도 가능하지만, 무대에서 홀로 연주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악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많이 치고 그랬지만 내가 방에서 혼자 치는 것 이상을 이룰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대학교에 가서 물론 피아노 전공은 아니었고, 피아노와 전혀 상관없는 행정학을 전공을 했는데 음악 수업이 너무 듣고 싶은 거예요. 저희 학교는 대구에 있는 종합대학교라서 음대가 있었어요.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음대 수업을 들었어요. 전공 수업 외에 일반 수업이나 교양 수업을 음대 수업으로 대체해서 수강을 했던 거죠. 제가 군대 가기 전 학기인데 그 음대 수업 중 교수님이 앞에 나와서 피아노 연주를 하면  학점을 A+를 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음대생들은 그런 수업을 굉장히 싫어해요. 자기 전공 수업만 해도 버겁고, 연주하기 바쁜데, 또 다른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연주를 한다는 걸 꺼려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학점도 준다고 하고 전공자가 아니니 부담 없는 마음으로 전공자 앞에서 연주를 한 적이 있었어요.

윤여사 : 쉽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로 예를 든다면 취미발레 하는 사람들이 발레리나들 앞에서 레퍼토리 작품 보여주며 춤추는 거잖아요. 휴… 생각만 해도 저는 약간 식은땀 나는대요. 그때 어떤 곡 연주하셨어요?

대현 : 슈만 곡을 연주했어요. 그러고 나서 뭐랄까? 그때가 저에게는 피아노 연주에 대한 다른 관점이 생기게 되었어요. 집에서 혼자 연주하고 영상 찍고 그러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공감하고 그런 기분이 참 색다르더라고요. 그렇게 꾸준히 연주생활을 하다가 올해 3월에 드디어 첫 리사이틀을 하게 되었죠.

현정 : 단독으로 독주회를 하신 건가요?

대현 : 아니오. 바이올린 하는 친구와 1시간 30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공연했어요.

윤여사 : 한양대에서 바이올린 전공했던 진기씨와 함께… 맞죠?

대현 : 네, 그분이 졸업을 하는데 졸업 리사이틀을 준비하면서 고맙게도 저와 인연이 돼서 함께 연주하게 되었어요. 굉장히 작은 홀에서 했어요. 객석 약 300석 정도 되는 곳이었는데 이 연주하면서 ‘아… 나도 본격적으로 연주를 해봐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취미지만 아마추어 치고는 잘한다는 소리 듣고 싶어서 계속 연습하고 준비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또, 신기했던 게 열심히 연주를 하다 보니 비단 피아노 치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악기 연주자들, 또한 다른 예술분야 분들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더라고요. 이전과는 다른 안목이 생겼어요.

윤여사 : 그러면 지금 레슨은 따로 받지 않나요?

대현 : 네, 지금은 받지 않고, 혼자 연습하고 있어요. 대학 입학하고 처음에는 피아노 전공하는 대학원 선배한테 레슨을 받기도 했어요. 아무리 좋아서 연주한다고 해도 테크닉의 벽을 넘지 못하면 연주하지 못하는 곡이 많거든요. 그 이후로는 아카데믹하게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유튜브 보면서 연습하곤 했어요. 요즘에 그 전공자 친구들과 협업을 하면서, 그 친구들의 반주를 맡기 때문에 실내악이다 보니 그쪽 교수님들의 레슨을 받곤 했어요. 그들의 연주 패턴을 맞춰야 하니까요. 다행히 그 교수님들도 학교에서 배운 정통 스타일은 아니지만, 아카데믹하지는 않아도 듣기 싫지 않게 연주를 좀 하는구나… 재미있게 연주하는구나… 하셨어요.

(일동 재미있게 연주한다는 부분에서 모두 웃음. ^^)

윤여사 : 어쩌면 그게 “취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 싶어요. 많이 훅~ 들어온 건 사실인데 전공자나 직업으로 하는 분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죠.

대현 : 부담이 없죠. 그 부분이 큰 거 같아요.

현정 : 즐기는 마음이 가장 우선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 같아요.

윤여사 : 약간 변명이자 도망가는 통로일지 모르지만 뭐… 하다가 잘 안돼도, ‘난 전공자가 아니니까~’ 이렇게 위안할 수 있는 것, 반대로 말하면 못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적다는 것은 꽤 큰 부분인 것 같아요.

대현 : 업으로 삼지 않으니까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있죠.



https://m.youtube.com/watch?v=J7hvEM2dkBs

R.Schumann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 1, 3movement, 2017



윤여사 : 현정씨는 어떠세요?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요?

현정 : 제 취미 첼로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은 아마 현악 사중주를 결성해서 활동한 거죠.

윤여사 : 모두 직업이 의사인 분들로 결성됐나요?

현정 : 두 명은 메디컬 닥터이고, 두 명은 치과의사입니다. 모두 의료인이죠. 현악기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호사는 이렇게 실내악을 결성하는 것 같아요. 마음에 맞는 사중주 단원을 만나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결성된 지 8년 정도 됐는데 어쩌면 취미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잡음이 없이 그동안 잘할 수 있다고 봐요. 프로 세계처럼 경쟁심이나 치열함보다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편이죠.

윤여사 : 팀 이름이 뭔가요?

현정 : 매드포퀄텟(MaD 4 Quartet)…

윤여사 : 아… 매드포퀄텟… 제 수준으로는 메드포갈릭… 앗… 죄송합니다. ㅎㅎ

현정 : 하하하 그러고 보니 메드포갈릭이랑도 발음이 유사하네요. 팀이름이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어요. ‘퀄텟에 미쳤다’는 의미와 저희가 ‘Medical and Dental doctor’라는 의미의 MaD로 이루어져서… 그런 중의적 표현이죠. 사실 이 이름은 제 남편이 지어줬답니다. 그리고 여자 입장에서 무대에 오르니까 드레스도 입을 수 있잖아요. 아님 언제 이렇게 드레스 입어보겠어요? 하하하

윤여사 : 아하! 그렇네요. 드레스를 공식적으로 입을 수 있는 기회… 그런 장점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ㅎㅎ 그 외에도 뭔가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아요.

현정 : 협연을 하다 보니 아마추어 저희 학교 오케스트라와 처음 협연을 하고, 그리고 아산병원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는데, 아산 오케스트라 지휘자 선생님이 객원으로 지휘하시는 오케스트라, 즉 프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때 같이 연주를 했던 단원들, 즉 프로 연주자 분들이 저에게 너무나 많은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 고무적인 일이었죠.

또, 지난 이야기긴 하지만 제 아이가 아기였을 때 모유수유를 했는데 직접 안고 먹여야만 먹는 아이였어요. 유축한 젖병도 거부하는 아이. 공연이 있으면 리허설 전에 차에서 수유하고, 공연 끝나자마자 아이 수유하고… 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저를 봤던 분들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얘기를 하세요.

윤여사 : 이미 따님은 다 컸는데요… ㅎㅎ

현정 : 네… 맞아요. 하하하 아마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젊고 열정이 있어서 그렇게 아이 수유해가면서도 취미인 연주 생활에 더욱 매진했던 것 같아요. 저는 좋아서 한 건데 사람들은 그것을 인상적이면서 좀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경식 : 때론 그렇게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좋은 것 같아요. 이게 네 직업이 아닌 취미생활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라고 하는 시선이랄까요?


https://youtu.be/7LQnFda8JCA

MaD 4 Quartet, 4회 정기연주회 실황, 2014



인간은 타인을 평가할 때 이중적 잣대를 동시에 들고 치밀하게 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당신 대단하다!’라는 찬사와 함께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 밥이 나와? 돈 되는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취미자들 역시 이런 시선을 한번 이상은 받아봤고, 내적 갈등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 열정과 성실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들이 선택한 취미가 삶의 일부로 강렬하게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현정 : 그런데 두 가지 관점이 있더라고요. 취미생활에 매진하는 것을 ‘너 정말 대단하다!’라고 하면서 신기하게 보는 관점과 ‘그거 뭐 돈도 안 되는 일을 그렇게까지 해?’라고 하면서 이상하게 보는 관점이 있어요.

윤여사 : 그 매진하는 열정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채워져요. 그렇지 않나요? 제가 다리를 다친 상황을 보고 백이면 백 전부 ‘발레 하다가 다쳤어?’라고 물어요. 사실 아닌데요. 저는 발레를 하면서 그전에 비해서 상당히 건강해졌어요. 발레를 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회복도 그나마 빠른 상황인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발레 하다가 다쳤어?’라고 물어볼 땐 걱정하는 사람이 절반인 반면 ‘거봐~ 니 나이에 그렇게까지 하더니 다치잖아~’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존재하더라고요.

현정 : 아… 정말 맞아요. 취미생활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을 보며 동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의 비아냥이 섞이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에게 이 취미생활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삶의 한 영역으로 깊이 들어왔어요. 사실 제가 진짜 많이 바빠요. 대학병원 교수이다 보니 논문도 써야 하고, 업무도 많고, 딸아이 바이올린 하는 거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그렇게 바쁜 생활에 지쳐 가끔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면 친구들 첫마디가 ‘그러니까 첼로를 때려치워’라고 이야기를 해요. 물론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에게 첼로는 그냥 부수적으로 포기하기 쉬운 그런 대상은 아니거든요.

윤식 : 아… 저도 이 부분에 깊이 공감이 돼요.

경식 : 우리는 그냥 삶의 한 부분을 하소연하듯 이야기하는 거고, 우리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닌데…

윤여사 :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쉬운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대현 : 그런 솔루션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삶이 힘들구나… 그냥 공감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취미생활에 그렇게 몰두를 하니 힘든 거야. 뭘 그렇게 힘들게까지 피아노를 치냐?’라는 말이 나오곤 하죠. 저도 퇴근 후에 연습실에 가서 꾸준히 연습을 하곤 해요. 웬만한 연습실은 밤 11시까지 인데 저희 직장인들은 야근을 하고 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24시간 개방하는 연습실을 찾곤 하죠. 물론 그런 연습실은 비용도 좀 더 들기도 해요. 연주회 한 달여 남기고는 연습실에서 새벽 한두 시까지 연습하곤 해요.

윤여사 : 보통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연습하세요?

대현 : 하루에 네 시간 정도요.

윤여사 : 와… 하루에 네 시간이라… 그런데 실력을 유지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죠?

현정 : 네, 세 시간은 기본으로 연습을 해야 해요. 세 시간은 해야 유지가 되고 그 이상을 해야 조금 늘어요. 저도 연습을 매일 하기는 쉽지 않아요. 업무도 많고 딸도 챙겨야 하고, 그렇지만 연주회를 앞두고서는 그 어떤 스케줄도 비우고 연습시간을 확보하려고 해요.

대현 : 첫 연주회 때는 온 손목에 붕대를 감고 했어요.

현정 : 젊고 기회 있을 때 많이 하세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 하면 오십견 와요.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체력이 안돼서 할 수 없어요.

경식 :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이야기… 분야가 달라도 완전 공감이 돼요. 하하하

대현 : 저에게 피아노는 삶이 됐어요.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그만둘 수 없는…? 안치면 약간 금단증상이 오기도 해요. 하하하

윤여사 : 대현씨 네 시간 연습이라는 이야기에 윤식씨 순간적으로 눈빛이 반짝 빛났어요.

윤식 : 어머니가 음악 전공, 첼로 전공하셨거든요. 어릴 때 어머니 권유로 1년 정도 첼로를 배운 적 있어요. 아주 적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발레 하는데 음악은 정말 중요해요.

경식 : 아무리 춤을 잘 춰도 음악성이 없으면, 일명 음악을 타지 못하면 발레를 할 수가 없어요. 음악성이 부족하면 아무리 춤이 넘쳐난다고 해도 그건 의미가 없어요. 자신이 추는 춤에 맞는 음악적 리듬감을 타고나는 건 발레 하는 사람으로 굉장히 필요한 능력이죠. 아마도 지금 다른 분야의 이야기지만 음악과 발레, 사진 등등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요.



악기를 하다 보면 선호하는 음악이나 작곡가가 생기기 마련이다.
피아니스트 앤디 권, 첼리스트 고현정이 좋아하는 레퍼토리에 대해 물어봤다.
악기에 따르기보다는 개인의 성격이 좋아하는 음악가에도 투영이 되는 것 같았다.



윤여사 : 악기를 하시는 두 분께 여쭤볼게요. 가장 좋아하는 레퍼토리가 궁금해요.

매드4퀄텟 정기연주회, 사진제공 고현정

현정 : 가장 좋아하는 레퍼토리는 독주곡으로는 좀 식상하긴 하지만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그리고 브람스 소나타 1번.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도 바흐와 브람스고요. 그리고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들도 좋아해요. 이유를 꼭 집어서 뭐라 말로 하긴 어렵네요. 그냥 좋아요… 생각을 하게 하고 연구를 하게 하고 심금을 울리는 뭔가가 있죠.

대현 : 너무 많은데요. 가장 좋아하는 레퍼토리라기보다는 저한테 가장 의미 있는 곡들을 소개하면, 아무래도 슈만의 모든 피아노곡들을 아주 사랑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낭만주의 음악을 논할 때 쇼팽이나 리스트 등의 주류적인 작곡가를 꼽겠지만 저는 슈만의 특유의 마이너틱함과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음악이 너무 좋아요. 슈만은 실제로도 글을 잘 쓰는 에디터이면서도 문학가였기 때문에, 문학과 음악의 조합을 가장 잘 아는 작곡가였어요.

그래서 곡들을 하나하나 들어보면 글을 쓰는 것 같은 시정이 느껴져요. 다른 작곡가들에게선 많이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 많아서 처음 듣기는 어려워도 한번 들으면 슈만의 곡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마니아층이 많다고 해야겠죠.

윤여사 :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것 같은 곡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어떤 곡을 연주할 때… 아… 이건 나랑 참 잘 맞네~ 하는 특별한 곡이 있는지요?

현정 : 저를 가장 잘 나타낼 것 같은 곡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냥 그 음악들 앞에서 겸허해질 뿐… 제가 어찌 감히 그 곡들이 저를 나타낸다 감히 생각조차 못하는.. ㅎㅎ

대현 : 질문이 어렵네요. 저를 잘 나타낸다기보다 저에게 의미 있는 곡이라 하면 19세기 말 프랑스의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예요. 사실 그 이전에 학교 다닐 때는 독주곡 중심으로 연습을 하고 찾아 들었어요. 우연히 연주회에서 이 곡을 들었는데, 실내악이 이렇게 멋진 것이구나를 처음으로 알게 된 곡이었어요. 일반 대중들에겐 프랑크라는 작곡가가 낯설겠지만, 사실 바이올린 하시는 분들에겐 프랑크의 소나타는 절대적인 레퍼토리이지요. 프랑크가 몇십 살이나 차이 나는 이자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결혼 선물로 준 곡인데 프랑크가 이 바이올리니스트를 많이 아껴서 이렇게 멋진 곡을 선물했답니다. 곡이 모두 사랑의 열정이 흠뻑 묻어나서 듣는 내내 행복한 곡이에요. 그래서  이 후로 이 곡을 더 아끼게 되고 찾아보게 되다가 지금처럼 반주를 많이 하게 되는 계기가 된 곡이었어요.

사실 한예종이나 서울대 등 반주과의 단골 입시곡이라 할 정도로 그만큼 많이 어렵기도 하고 도전적인 레퍼토리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사람들이 이 음악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준다는 것이겠죠. 이전에는 독주를 중심으로 연습했지만, 이 곡을 통해 2명에서 많게는 6명 이상도 함께 하는 지금의 저, 실내악에 흠뻑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된 곡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현재라는 시간 위를 달리며 열심히 취미의 켜를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생각하는 취미 생활의 종착점,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각자의 분야가 다르니 목표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면도 있었다.

각자가 꾸는 꿈은 달라도 이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의 미래의 모습이 자못 궁금해진다.


윤여사 : 취미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현정 : 첼로 독주회예요. 요즘은 이것을 계획해도 현실적으로 가장 실감 나는 건 체력이에요. 예전에는 연주회를 준비한다고 하면 연습과 시간이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시간이 허락해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연주회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독주회를 하려면 적어도 레퍼토리 1시간 반 정도는 기획해야 하는데 이게 온전히 체력적인 부분 때문에 건강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연주회를 위한 체력을 만들고, 아이를 대학에 보내 놓고 나면 그때쯤이면 독주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zZzByeA08gw

김경식 작, 이향조, 2017

경식 : 저는 우선 단기적인 계획을 하나 말씀드린다면 발레에 관한 단편 필름을 만들 거예요. 그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눈앞에 있는 목표이자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저도 SNS 활동을 계속 하지만 각 SNS의 특징이 있어요. 1분짜리 영상을 보여주는 인스타, 페이스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영상, 유튜브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영상… 같은 영상이더라도 그 SNS의 특징을 살려서 임팩트 있게 작업해야 하죠. 이런 작업들을 좀 더 집약적으로 함축해서 스토리 있는 단편 영화를 제작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어요.

2017 책책 오프닝  & 김윤식 사진전 '화양연화'

윤식 : 제가 사진을 찍으면서 갖는 최종 목표는 제 사진을 가지고 전 세계의 사진 투어를 다니고 싶어요. 그전에 발레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10년 내로 제가 추고 싶은 춤 다 추고 발레단에 소속이 돼서 전속 포토그래퍼로 일하며 제 작업하고, 그 작업물로 전 세계 투어를 하고 싶어요.

윤여사 : 음… 멋진 목표네요.

윤식 : 꿈이 커야죠… 나중에 말 못 바꾸게 인터뷰로 이렇게 남겨놔야 아! 내가 이뤄냈어 그런 거 되는 게 아닐까요? 하하하

윤여사 : 오늘 한 이 인터뷰가 꼭 이후에 성지글이 되길 바랍니다. 이거 다 기록으로 남는 거예요. ㅎㅎ 대현씨는요?

대현 : 저는 물론 독주회죠. 실내악, 협연은 많이 해보고, 작은 무대에서 한 곡 정도 연주해본 적은 있어도 제 이름을 걸고 단독 리사이틀을 한 경험은 없어서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대학원을 가는 게 목표예요.

윤여사 : 요즘엔 음악 대학원도 피아노의 경우 굉장히 세분화해서 전공을 한다고 들었어요.

https://www.instagram.com/p/BFIa4_gjOca/

대현 : 네, 맞아요. 아직 독주 공부를 더할지 반주 공부를 더할지 그렇게까지 자세한 계획은 없어요. 현재로서는 직장 다니면서 이 정도 취미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서요. 회사 생활한 지 약 2년 반 정도 돼서 아직도 일 배우고 많이 바쁘고 그런 단계입니다. 이쯤 돼서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지금 취미생활의 최종 목표는 공부를 더해보는 거예요.

윤여사 : 제 목표는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작업들, 물론 저와 경식씨, 윤식씨가 발레라는 공통점으로 서로 알게 되고, 작년에 출간 작업에 함께 일해 보니까 우리가 배워왔던 분야와 지식과 나이차가 많이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는 지금 대현씨나 현정씨처럼 취미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클래식, 예술 분야를 좀 더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주류 문화 콘텐츠로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저도 말하기 어려워요. 이런 문화 콘텐츠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메인스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현 : 사실 현재의 클래식 음악은 18세기에는 그 시대의 대중문화였어요. 일반인들이 누구나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는 예술이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전공한 사람들만의 세계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예술문화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말씀해주신 그런 작업이나 계획은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윤여사 :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인데 취미자들로서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힘이 되는 책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부분이 나와요.

‘아마추어_amateur’라는 단어는 ‘사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아마레_amare’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아마추어란 말 그대로 뭔가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공감대에서 비롯된 너그러움이 청중의 반응에서도 느껴졌다. 사소한 실수라도 있기만 해봐라,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관객이 아니라 연주자의 행운과 성공을 기원하는 따뜻한 마음의 공유가 있었다.
물론 예술의 각 분야의 프로 정신을 간과하는 게 아니에요. 프로 세계의 치열함과 열정, 완벽함은 그 어떤 감동도 대신할 순 없어요. 하지만 예술이 가장 기본에는 그 분야를 애정 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진심이 통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이 자리에서 이미 서로 알고 있는 분도 있고, 처음 만난 인연도 있습니다만 꽤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열정과 성실함으로 각자의 취미가 좀 더 의미 있게 발전하길 바랍니다. 오늘 바쁘신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함께 해주신 네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다시 피아노, 앨런 리스브리저 지음, 포노출판사

처음 ‘취미자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을 때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고 우연히 읽게 된 책. 나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고, 이 기획에 커다란 힘을 보태주는 역할을 한 책이다. 취미는 전적으로 아마추어리즘에 근거한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애착을 가져서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건 시간 남아도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취미가 꼭 고상하고 어려울 필요는 없다. 꼭 무슨 악기를 해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된다. 실제로 액티브할 것 같은 필자도 발레를 하거나 글 쓰는 취미 말고도, 좋아하는 책을 들고 읽다가 스르륵 잠드는 것을 좋아한다. 밤마다 잠들기 직전 자면서 꾸는 꿈을 기대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커피 한잔 마시며 멍 때리는 시간을 상당히 애정 한다. 취미는 취미일 뿐이다. 살짝만 발을 담그건 깊이 푹 빠지건 그건 각자의 선택이고, 그 일이 일상의 괴로운 스트레스가 아닌 기쁨의 엔도르핀이 샘솟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취미자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김경식 영상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kyung6



김윤식 사진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앤디권 취미 피아니스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ndy__kwon/



*기획 : 취미발레 윤여사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및 영상 : 형제발레리노 (김경식/사진,영상, 김윤식/사진), 권대현, 고현정 제공

*첨부된 사진 및 영상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사진, 영상 제공자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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