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회사에서 잘린 김에 편히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이나 찾아서 해보자. 그렇게 마음먹었었다. 브런치에 올렸던 글에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었고, 덕분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가는 중이었다.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쌓아두기만 했던 책들을 몽땅 꺼내서 하나씩 읽었다.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던 야채 모양 키링은 코바늘을 이용해서 떠봤다. 그동안 마음껏 놀아주지 못했던 고양이들을 매시간 안아주었고, 식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는 남편을 위해서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부지런히 싸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던 불안한 마음이 정말 가라앉았다.
‘내 나이에 백수라니! 나 어쩌지’ 처음엔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이 평온하고, 무탈한 일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그 질문의 답 중에는 우선 매달 나가는 고정비를 줄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있었다. 실제로 주거비가 조금 더 적게 드는 집으로 이사하는 것도 남편과 상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둘째 고양이 바바가 조금 이상했다. 먹보 고양이 바바는 집사가 하는 말 중에 "간식 먹자"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 밑으로 달려와 얼른 간식을 내놓으라고 야옹야옹 우는 고양이다. 간식을 주고 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와구와구 먹어 치우는 걸 볼 수도 있다. 단단한 간식이라도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킬 정도다. 근데 웬일인지 바바가 오독오독 간식을 천천히 씹어 먹는 날이 있었다. 드디어 너란 고양이도, 나이가 드니 음식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구나, 하고 웃어넘겼다.
그날 밤이었다. 잠을 자다 이상한 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딘가에서 물이 가득 찬 플라스틱 물병을 흔드는 것 같은 꿀렁꿀렁 소리가 났다. 불을 켜보니 침대에 함께 누워 있던 바바의 몸이 딸꾹질을 하듯 움찔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꽤액 하는 소리와 함께 토를 했다. 사실 바바는 약 2년 전에 구토형 장질환, 만성 IBD 진단을 받은 고양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번에도 그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과는 분명 무언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날, 바바가 사료도 잘 먹지 않고 자꾸만 집사의 눈치를 보고, 기력이 없어지는 것이 보였다. 먹보 고양이가 음식을 거부할 리 없었다. 나는 바바를 이동장에 넣고 병원으로 달렸다.
검사 결과, IBD로 인한 구토 증상도 있지만 췌장염 수치가 정상보다 높다고 했다. 아는 집사님 중에 췌장염으로 반려묘를 떠나보낸 분이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췌장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의사 선생님은 3일 정도는 입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알았다고 했다. 겁쟁이 바바는 돌처럼 굳어 투명한 유리장 안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냐옹 소리도 내지 못한 채였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어느 순간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온 것은 아닌가 싶어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렇게 이틀 밤을, 바바가 없는 집에서 지냈다. 혼자 있는 사또는 심심해 보였고, 자동급식기에서 사료가 나오면 우다다 달려가서 먹던 바바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그동안 바바는 병원에서 사료도 먹지 않고, 물도 잘 먹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주사를 놔주려고만 해도 잔뜩 겁을 먹은 채 오줌을 지리기까지 했다고 했다. 3일간 입원을 하며 수액을 맞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지만 바바의 췌장염 수치는 크게 떨어지질 않았다. 더 입원을 시킬지, 집으로 데려가서 케어를 하며 병원을 왔다 갔다 할지 결정해야 했다. 투명한 유리벽 뒤에 있는 바바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바바야”하고 불렀다. 힘없이 누워있던 바바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눈물이 고여있는 듯 했다. 결국 바바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잔뜩 겁먹은, 나의 영원한 아기 고양이 바바와, 더는 떨어져 있고 싶진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바바는 이전보다 훨씬 집사를 찾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아이였는데,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있으면 열어달라며 문을 긁고 야옹야옹 울었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조심스럽게 옆에 와 몸을 기대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몸을 찰싹 붙이고 골골송을 부르며 잠들었다. 설마 내가 자기를 버릴까 걱정했던 걸까. 절대 그럴 일은 없는데. 낯선 병원에서, 집사를 하염없이 기다렸을 바바를 떠올리니 코끝이 찡했다.
다행히 백수가 된 집사에겐, 시간이 많았다. 바바에게 약을 먹이고, 처방식을 챙겨 먹이고, 놀아주고, 빗어주고, 듬뿍 애정을 담아 쓰다듬어 주었다. 바바는 싫어하는 약도 잘 먹어주고, 힘을 내서 움직이고, 먹을 것도 다시 잘 받아먹어주었다. 그 모습이 참 기특했다. 그리고 얼마 전, 병원에서는 치료 중단, 즉 바바의 완치 판정을 내렸다. 다행히 바바의 췌장염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거였다. 이동장 사이에 손을 넣어 바바의 미간을 쓰다듬자, 바바가 그릉그릉 소리를 냈다.
납작해진 지갑을 보니 원래 계획처럼 1년 정도를 마냥 쉴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사이에, 한 달 월급 정도의 금액이 바바의 병원비로 사라졌다. 열세 살 노묘들과 함께하는 백수 집사의 삶이란, 아무래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당장의 여유가 없어서,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비로 망설이고 싶진 않다. 내가 애정하는 것들을 지키면서, 현실적인 걱정은 조금 덜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무엇일까. 우선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