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짤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내 기분을 나쁘게 한다면, 그 사람이 발바닥 한쪽을 들어 올려 자신의 귀에 대고 “여보세요”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금세 괜찮아진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그 짤을 마주했을 때,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적지 않은 인물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내 상상 속에서 자신의 발바닥을 귀에 대고 “여보세요”하며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저녁 아홉 시에 퇴근을 하는데도 “오늘은 일이 없나 봐?”라며 사람 속을 뒤집어 놓던 회사의 팀장부터, “야, 우리 나이엔 피부 관리받아야 해. 너 봐봐, 이제 나이가 눈에 보이잖아”라며 꼽을 주던 친구, 그리고 다시 생각해도 내가 쟤를 왜 만났었지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게 하는 지나간 엑스들까지. 그들 모두 내 머릿속에선 세상 민망한 자세였다. 그리고 그 상상만으로도 나는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발바닥으로 전화를 받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덧 그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조금 옅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그렇게 전화를 받을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어쩐지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연민 비슷한 감정이 올라온달까. 오묘한 일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결혼 전 남편에게 한 번 들려준 적이 있었다. 요즘 그를 힘들게 하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던 때였다. 사람을 미워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니까, 이런 하찮은 상상으로라도 누군가를 조금은 덜 미워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는 나와 웃음 코드가 비슷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는 싱글벙글, 아주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이거 괜찮네.” 그가 말했다.
그때 우리는 결혼 전에 미리 동거를 시작한 참이었다. 함께 살다 보면 별것 아닌 일로도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던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열받았던 순간 중 하나는 그가 고기반찬을 찾을 때였다. 그는 종종 잘 차려진 밥상 앞에서 고기반찬이 없다며, 사람은 늘 고기를 먹어야 한다며 열심히 차려준 사람을 성나게 할 때가 있었다. "고기, 고기"하며 하도 고기 타령을 해서 내가 ‘끔찍한 고기무새’라고 별명까지 붙여줬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그가 “고기!”라고 말하면 내가 “조용히 해, 이 끔찍한 고기무새야!” 라고 받아치고, 그는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장난스럽게 투덜거리는 식으로 끝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내가 진짜 화가 나버렸다. 그날은 내가 식사 당번이었고, 엄마에게 전화까지 해가며 레시피를 전수받아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나물 반찬 몇 가지와 된장찌개를 차려 둔 참이었다. 근데, 그가 눈치 없이 “고기는 어디 있어?”라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 그를 정말 한 대치고 싶었다. 아니, 두 대였을 지도.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었으면 미리 말을 하던가, 자기가 해 먹으면 될 일 아닌가, 왜 이제서야 고기반찬을 찾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가자미 눈을 하고 그를 노려보며 진짜로 성을 냈다.
평소와 다른 나의 반응에 흠칫 놀란 그는, 며칠은 나를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집안일을 더욱 열심히 하고, 욕조를 깨끗하게 닦아 놓고는 반신욕을 하라며 내 등을 떠밀기도 했다. 야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만들고, 내가 식사 당번인 날인데도 본인이 나서서 파스타나 감바스를 짜잔 하고 만들기도 했다. 결국 마음이 약해진 나는 그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분을 풀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그는 양말을 빨래통에 넣질 않는 인간이었다. 벗은 자리 근처 어딘가에 조용히 쌓아 두는 스타일이었다. 빨래통까지 가는 거리가 겨우 몇 걸음인데도 말이다. 언젠가는 청소기를 돌리다가 옷방 한쪽에 신던 양말이 여섯 짝이나 모여 있는 걸 발견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네, 혹시 발이 여섯 개인가?”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빨래통에 잘 넣어줘.”라고 가볍게 말했지만, 그 말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상황이 오자 나는 슬슬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한 번만 더 양말을 모아 두다가 걸리면, 다시는 양말을 못 신도록 양말 전부를 다 가위로 잘라버리겠다며 앵그리 모드가 되어 속사포 랩을 쏟아냈다. 아니면 발목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는 으름장까지 덧붙이며. 그는 이후 이 버릇을 고치려고 애썼지만, 종종 나에게 또 쌓아 둔 양말을 들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가락을 가위 모양으로 만들고 그의 양말을 싹둑싹둑 자르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사소한 기싸움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쓰던 그가 소파에 앉아 멀뚱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자신의 발바닥을 귀에 대고 말했다. “여보떼요.” 늘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장면이었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실제로 재현해 줄 거라곤 상상한 적이 없었다. 아, 실제론 저렇게 하찮은 모습이구나, 세상에 마상에.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결국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웃기려는 사람에게 다시 쌩짜증을 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후 우리 사이에는 이상한 유행이 하나 생겼다. 누군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그 앞에서 발바닥을 조심스레 들어 귀에 대고 “여보떼요.”를 외치는 것. 나도 그 앞에서 여태껏 수십번은 더 발바닥 전화를 받았다. 생각해 보면 꽤 우스운 모습이지만, 의외로 신박한 화해의 방법이기도 하다.
혹시 누군가의 마음을 풀어줘야 하는 때인가. 그렇다면 용기를 내어 그 앞에서 발바닥으로 전화를 받아보는 흉내를 내보는 것을 추천한다. 만약 상대방이 당신에게 애정이 남아 있다면, 분명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이 전화 한 통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풀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