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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그르릉하는 사랑에 대하여

by 윤모음

우리 집에는 성격이 정반대인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먼저, 낯선 사람에게도 다가가 몸을 비비며 안아 달라는 첫째 고양이 사또가 있다. 노묘가 된 사또는 이제 낯을 가린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듯하다. 얼마 전에는 내 친구 A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A는 평생, 도도하고 까칠한 강아지만 키워봤던 친구였다. 강아지와 함께 자고 싶어 방문을 닫은 채 안고 누워 있으면, 1분도 안 돼 문을 박박 긁어대서 결국 열어줘야 했다며 슬픈 표정을 짓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그런 그녀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사또는 달려 나왔다. 그리곤 친구가 소파에 앉아마자 뻔뻔하게 그녀의 무릎 위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다. 잠든 상태로 세 시간 정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A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꼼짝하지 못한 채 “나 지금 움직이면 깨려나?”하며 사또의 얼굴이고, 뱃살이고, 엉덩이를 막 만져댔다. 그리고 어딜 만져도 그르릉 소리를 내는 사또를 보며 그녀는 말 그대로 당황했다. “… 원래 고양이가 이런 거야? 이게 맞는 거야?” 10년을 훨씬 넘게 키우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그녀의 강아지도 이런 적은 없었다고 했다. 사또는 그르릉, 그르릉— 대답 대신 만족스러운 숨결을 내뱉었다. 물론, 지금까지 사또의 최애 인간은 집사인 나다. 나랑은 눈만 마주쳐도 그르릉 거리고, 하루 종일 안아달라고 칭얼거리며, 잘 때가 되면 꼭 같은 베개에 누워서 얼굴을 맞대고 자려한다. 사또는 그렇게 무작정 돌진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무장해제시킨다.



그리고, 사또와는 완전히 다른 둘째 고양이 바바가 있다. 바바는 낯선 발소리가 들리면 번개의 속도로 사라진다. 이불 속이나 커튼 뒤, 혹은 아무도 모르는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 절대 나오지 않는다. 숨소리마저 작게 내뿜으면서 집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키운 지 13년이 되어 가는 우리 가족들조차도 여전히 쉽게 품에 안을 수 없다. 바바는 대부분의 시간을 멀리서 관찰하듯 나를 쳐다보고만 있는다. 그러다가 뽀얀 뱃살을 드러내며 뒹굴거리기도 하는데, 근처에 다가가면 바로 경계 태세를 갖추고 도망갈 준비를 한다. 바바는 한강의 자전거 도로 한복판에서 화상을 입고 살려달라며 울고 있던 아주 작은 고양이였다. 누가 어떤 해코지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그 울음에는 두려움과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무서운 기억이 남아 있는 걸까. 바바는 모든 존재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 같다. 그래도 귀여운 목소리를 내면서 간식을 달라고 쫓아다니거나, 소파에 앉아있을 때 그르릉 소리를 내며 옆에 와 앉거나 누울 때도 꽤 많아지고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바바의 털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속으로 생각한다. ‘다행이다, 그래도 나는 좋아하는구나’ 하고.


사또와 바바는 언뜻 보면 전혀 다른 고양이들 같아 보인다. 하지만, 결국은 둘 다 각자의 언어로 내게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뿐이란 생각이 든다. 그건 고양이든, 사람이든 똑같은 것 아닌가.


남편과 나도 서로 다른 리듬으로 사랑을 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나는 종종 이유 없이 손 편지를 써서 그에게 건넨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그러고 싶어질 때가 있다. 오늘은 별일 없었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 그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적는다. 그건 ‘사랑’을 말하는 내 방식이다. 정돈된 말로 마음을 말하고 싶은 내 욕심이자 습관이다. 내 편지를 읽으며 몇 번 눈물이 터졌던 그는, 이제는 내게 손 편지를 쓰기도 한다. 글씨가 지렁이여서 손 편지가 부담스럽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그가 손 편지를 내밀 때마다 나는 풍성한 꽃다발을 한가득 안은 것처럼,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반대로 남편은 글이나 말보단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다. 그는 매일 밤 내게 팔베개를 해준다. “팔 저리지 않아?”라고 물으며 괜찮다고 말해도, 그는 말없이 팔을 뻗는다. 그러고 싶단다. 뚜렷한 이유도, 설명도 없다. 아침이 되면, 팔베개를 해 주었던 팔로 내 몸을 감싸 안아 준다.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온기, 그 마음으로 나는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그게 참 따뜻해서, 가끔은 나도 그에게 팔베개를 해준다. 베개 바로 아래에 팔을 일자로 쭉 펴면, 머리 무게가 팔로 오지 않아 저리지 않다는 걸 이젠 나도 안다. 아침 알림이 울리면, 나는 남편의 얼굴 여기저기에 뽀뽀를 퍼붓는다. 그럼 그는 잠결에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를 꼭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서로의 표현 방식을 이해하고, 배우는 중이다.


회사 동료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어릴 적, 잠에 들고 나서 가족들이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해서 자신의 목까지 꼼꼼하게 덮어주는 게 그렇게 좋았다고 했다. 그걸 지금의 동거인에게 느끼고 싶어서, 종종 엉뚱한 행동을 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일부러 네모 반듯하게 접힌 이불을 상체에 그대로 올려두고 자는 척을 한다고 했나. 그러면 동거인이 웃으며 와서, 이불을 펼쳐 조용히 덮어 준단다. 그때 전달되는 마음이 좋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동거인이 자신을 따라 하며 그렇게 누워 있길래, 이번엔 자기가 이불을 덮어주며 생각했다고 했다. ‘아, 이건 사랑이구나!’라고.


어떤 고양이는 다가오고, 어떤 고양이는 멀찍이서 바라본다. 누군가는 손 편지를 쓰고, 누군가는 팔을 내밀고, 또 누군가는 이불을 덮어준다. 사랑과 다정함의 표현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각자의 온도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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