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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범 Dec 31. 2020

2020년 과연 어땠을까?

쇼공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사계절

이제 서른 살이라니..  주위에 친구들이나 형, 동생들을 보면 아직 예전이랑 그렇게 다른 것 같지는 않은데 시간이 참 빠르다.


엄청 자세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아니다. 보통 1년 정도 변경되지 않을 만한 대략적인 목표를 정하고 매우 짧은 기간을 목표로 단순하게 산다.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면 디테일한 기억보다 대략 '2012 ~ 2014년도는 군대 갔고 2014 ~ 2016년도는 학교 다니면서 컴퓨터 공부도 하고 동아리도 하고 나름 창업도 해보고 2016 ~ 2017년도는 교환학생 갔고' 이런 식으로 적당히 나눠서 추억하는 편이다. 일을 시작하면서 정신이 없다 보니 이 대략적인 기억마저도 떠올리는 게 쉽지 않더라. 


새해라는 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이어리 사거나 내년에 복을 빌면 알아서 복이 올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도 2020년도는 마지막 20대였다는 것, 쇼공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사계절이라는 꽤 중요한 타이틀이 있는 만큼 간단하게 정리해보고 싶다.


2017년도 7월 27살에 처음 일을 시작했으니까 지금까지 3년 반 정도 일을 한 것 같다. 거의 딱 2년 정도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2019년도 6월에 쇼공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분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회사를 직접 시작하기 이전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됐던 일들을 직접 해야 했고 처음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적응하고 몸이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 보니 본격적으로 쇼공을 운영했던 2020년이 참 중요한 시간이었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니까.



1. 내 회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 대표가 되고 싶었던 이유


그전에는 굳이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꿈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꿈이라기보다 그냥 저렇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는 저 물음을 스스로 많이 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까지 이걸 하고 싶었는지. 왜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라기보다 그냥 나 스스로가 어떤 생각인지 궁금했다.


성공이 목적이다. 그런데 돈이 목적은 아니다. 자존심 때문인 거 같다. 누구한테 증명하고 싶은 것도 없다. 진짜 성공은 그냥 나 스스로 '이 정도면 잘했다.'라고 정말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거. 정말 꼭 한 번만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 생각을 스스로의 경험을 근거로 힘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기 위해 변명거리가 없는 상황에 놓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회사를 하고 싶었다. 그래야 진짜 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 지금이 딱 그렇다. 그래서 할 일은 많고 어려운 것도 많았지만 2020년은 또 다른 의미로 행복했던 것 같다. 하고 싶었던 걸 하고 있기 때문에.



2. 두 갈래의 길? 아니.


항상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다. 두 갈래 길에서 왼쪽, 오른쪽 어디로 갈지 그 앞에서 가만히 서서 고민해봐야 답도 안 나오고 충분히 고민했다고 생각되면 최대한 빨리 왼쪽으로 가서 확인해보자. 그 후에 오른쪽으로 가면 되니까.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니 꼭 길이 두 갈래는 아니더라. 한 스무 갈래 길은 되는 것 같다. 거기서 나름 옳은 정답을 찾으면 그 다음에 또 스무 갈래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다. 2020년의 거의 대부분을 이 과정에 쓴 것 같다.


여기에서 함께 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 것 같다. 정말 다행히도 올해가 끝나기 전에 많은 부분이 확실해졌고 2021년이 정말 기대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3. 몸속 깊게 스며든 착각


공장 직거래에 소비자가 기대하는 건 합리적인 가격. 즉, 싸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걸 자꾸 잃어버렸다. 모든 브랜드는 자신들이 납품받는 가격에서 판매가를 측정하는 기준이 다르다. 어떤 브랜드는 3 배수 또 다른 브랜드는 5 배수. 어떤 카테고리는 2 배수, 어떤 카테고리는 10 배수. 


애초에 쇼공을 시작했던 건, 굳이 이렇게 높은 배수를 주고 제품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구매하던 품질과 같은 품질을 브랜드에 비해 더욱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이게 공장 직거래를 시작하는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이런 브랜드 거품을 없앤다라는 취지가 '가장 저렴한 최저가 제품을 소개한다.'로 변질되어 있었다. 품질을 낮추지는 않았지만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많이 갈팡질팡했다. 기존 브랜드 제품과 비교 없이 낮은 품질의 제품과 가격비교를 하고 가격이 높다고 겁부터 먹었다. 실제로 동일 품질의 브랜드와 비교해보면 훨씬 가격이 저렴한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메시지를 보내느라 수많은 시간을 쏟았다.


물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제조공장은 자신과 좋은 관계에 있는 브랜드와 비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납품 관계이기 때문에 굳이 미움을 사서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메시지가 가장 강력해질 수 있는 방법은 명확한 브랜드와 비교하는 것이다. (비교 광고는 정확한 동일 품질일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쇼공과 함께 하고 있는 제조공장의 이해관계도 충분히 공감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했고 결국 아주 몸속 깊게 스며든 착각을 하게 됐다.


문제가 되는 핵심을 단방에 뚫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계속 거길 보고 달려가야 하는데 길을 아예 잘못 잡았다. 뚫어내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했어야 하는데 스무 개의 갈림길 중 잘못된 길로 들어갔더라. 다시 2021년에는 다시 제대로 된 길을 찾을 것이다.



4. 공장 직거래 플랫폼을 하는 이유는 제조공장 플랫폼을 하기 위해서


공장 직거래 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유는 결국 제조공장의 입지와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소비자와 가까운 위치로 자체 브랜드 혹은 단일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점점 똑똑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제품을 찾다 보면 제조사가 만든 제품에 신뢰를 느끼고 합리성을 느낀다.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제조공장이 뭉칠수록 그 힘은 강력해질 것이다.


생산을 위해 제조공장을 찾던, 제조공장의 물건을 구매하던 결국 제조공장 하면 쇼공을 떠올리게 만들 것이다. 이를 위해 DB를 먼저 모을 수도 있었겠지만 공장 직거래 플랫폼을 먼저 런칭했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을 소개하고 제조공장에 새로운 유통 형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조공장을 움직이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 후,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부분부터 시작해서 제조공장이 아직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는 서비스나 구조를 온라인으로 옮길 것이다. 


기존 제조공장의 수익모델에서 쇼공의 수익모델을 만들기보다 우리의 수익모델은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에서 만들어내고 더 많은 제조공장이 이런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2020년에는 우리와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제조공장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2020년이 끝나가는 지금 몇몇 중요한 파트너가 생긴 것도 의미 있는 성취라고 생각한다.



5. 제조공장을 움직이기 위해


제조공장이 소비시장에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소비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합리적인 제품이나 믿을만한 제품을 찾다 보면 어느새 제조공장의 합리적이고 믿을만한 제품을 쓰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브랜드가 중요한 카테고리도 있고 모든 시장의 제품을 제조공장 제품이 대체하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유통구조에 대해 인식하는 소비자도 많아지고 불필요한 지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려면 제조공장이 적극적인 태도로 이 시장에 진입하길 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2020년도에 많은 부분을 개선했다.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와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에 대한 책임. 반품 및 교환에 대한 법적 의무. 기본적인 주문처리에 대한 교육. 성과가 있는 제조공장 케이스를 예시로 다른 제조공장을 설득할 수 있는 힘도 생기고 방향성을 제안할 수 있는 경험도 쌓이면서 더욱 단단하게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시장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



6. 흥미진진할 2021년


처음에는 제조공장 플랫폼을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증명하기에 적합한 도전이며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마치 사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젊은 나이에 이루고 싶은 사명. 이걸 내가 해내면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그렇지 못하면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것 같은 느낌. 심지어 가끔은 미팅을 하면서 제품을 기획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2020년도에 더 깨달은 바도 많고 새해가 기대되는 것이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정말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다. 


2021년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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