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국어에서 제2의 인생 찾기
안녕하세요.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10년째 수능 국어만 공부하고 있는 마흔 넘은 워킹맘입니다. 조금 더 포멀하게 소개하면, 저는 작은 출판사에서 수능 국어 문제집을 만드는 10년 차 편집자입니다. 그리고 남편 한 명, 아기 한 명 있습니다. 아기는 이제 0살에서 1살이 되어 어린이집을 다닙니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어린이집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덕분에 저는 육아휴직을 무사히 마치고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지요. 아기가 아직 너무 어리지요? 그래서 저는 오래도록 일을 해야 합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가 더 적절할 것 같네요.
그런데, 다들 아시겠지만 챗지피티를 비롯한 수많은 생성형 AI 일꾼들이 제가 하는 일들을 대신해 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도 AI 일꾼에게 업무 지시를 내려봤습니다. 꽤나 그럴듯한 결과를 냅니다. 심지어 다시, 다시, 재차 업무 요청을 해도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무척이나 빠르게 결과를 보여 줍니다. (큰일 났네, 정말.)
나름 위안을 삼자면 아직은 그 내용들이 정확하지 않아 저 같은 국어 전공 편집자가 개입을 해야 하는 단계입니다.(휴- 그런데 이 불안감은 뭐지?) 이들이 정확해지는 건 시간문제겠지요. 그동안 일하기 싫은 티를 팍팍 냈던 제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네요. 아직까지는 회사에서 이 AI 일꾼들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장님도 보고 듣는 게 있으시니, 이렇게 말 잘 듣고 게다가 상냥하기까지 한 무료 일꾼을 가만히 놔둘 리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저는 무얼 해야 할까요? 아기도 어리고, 저도 나름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매일 고민을 합니다. 그 고민이란 자기 탐구, 나의 본진 구축을 위한 궁리를 의미합니다. 직설적으로 풀어서 말하면 앞으로 뭐 해서 먹고살지, 구체적으로는 애 대학 보낼 때까지 돈 벌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고민합니다.
해결책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여기서 포인트는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답이 빠르게 도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오래도록 일할 궁리'를 기록하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 종종 거리면서 회사 다니는 만 1세 아기 엄마인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서 글쓰기 영감을 얻는 것입니다. 제가 매일매일 들여다보는 바로 수능 국어에서 나를 멈춰 세운 한 문장을 모으고, 정신이 산만해지는 시간마다 이 문장이 나를 왜 멈춰 세웠는지 궁리해 보려 합니다.
저는 꼼꼼함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고백하자면 성인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산만합니다. 새벽에 겨우 겨우 일어나 아기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다가 갑자기 못다 한 설거지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아직 옷은 입지 않은 채 머리를 말리러 가다가 아기에게 뽀뽀를 하고, 다시 어린이집 가방에 넣을 물병을 찾아서 식탁에 올려 두고는 드디어 머리를 말리러 가서 널브러진 화장대를 정리하는 식이죠. 꽤 심각하죠?
그래도 일을 할 때는 책 편집자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해 문장을 윤문하고 문제를 꼼꼼히 풀고, 해설을 쓰고 교정을 보며 오류를 수정하고, 애매한 선지를 두고 동료들과 치열하게 토론합니다. 사실 수능 국어만큼 잉여가 없는 글이 있을까요? 국가가 주도해서 만들고 40만 명이 넘는 독자가 눈에 불을 켜고 보는 글이 수능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수능 국어를 10년째 공부 중인 제가 매일매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글도 수능 국어 안에 있으므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좋은 문장들을 모아보려 합니다. 물론 회사에 있는 모든 시간 내내 이런 집중력이 온전히 지속되지는 않지만, 폭죽처럼 터져나가는 집중력을 붙잡아 사유의 바다에서 함께 헤엄칠 문장들을 발견해 보려합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이 촉발시킨 산만한 궁리들을 조각조각 모아, 운 좋게도 퇴근 후나 주말에 체력이 남아 있다면, 이 조각들을 예쁘게 맞추어 한 편의 글을 쓰겠습니다.
지긋지긋했는데, 언제나 다시 보아도 새롭고 기발한 수능 국어에서 제2의 인생을 찾아보려 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은 아마도 수능은 이미 저 먼 기억 속으로 두고 살아가시는 어른들이 많겠죠? (아, 많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아직 저의 독자가 그리 많지가 않네요….)
어찌됐든, 독자님들도 이 산만한 편집자와 함께 오랜만에 수능 국어 한번 들여다 보실래요?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선으로 아주아주 산만하게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지금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