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기 어려운 구조

매일 실패하는 나날

by 히읗

인생은 한 번에 바뀌지 않고

실패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 때 바뀐다.



2025년 나에게는,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에게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는 또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니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를 길거나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골똘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챗gpt(이하 챗)에게 물었다.

-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네가 분석한 것 모두 말해줘. 그리고 앞으로 나의 인생이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지에 대한 발전적인 조언도 덧붙여줘.


챗은 대답했다.

- 이 질문을 한 걸 보면, 단순한 위로나 가벼운 조언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이런 질문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많을 때 나온 거야.

생각은 많은데, 방향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았거나 실행으로 옮기는 데 에너지가 분산돼 있을 확률이 높아.


그리고 챗의 핵심 조언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 '더 잘 살고 싶다' 대신 어떤 하루를 반복하고 싶은지 생각하라.

- 목표보다 비목표(하지 않을 것)를 정리하라.

- 하루에 절대 실패하지 않을 최소 행동 1가지를 정해서 실행하라.

- 생각이 많다면 기록하지 않아서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하루 끝에 딱 3줄이라도 기록하라.

-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나는 어떤 선택을 반복하는 사람인가?'를 살펴보라.


결국, 어쩌면, 사실은,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답변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굳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실패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 보기 위해서다.


요즘 나는 출퇴근길에 오디오북을 듣는다.

현재 듣고 있는 것은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이다. 지적 허영심에 듣기 시작했는데, 너무 내 스타일이다.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나이지만, 어렴풋이나마 헤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은 느낌이 좋고, 그런 느낌을 받는 내가 만족스럽다. 주인공 싯다르타가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웃기기도 하다. 항상 자신을 남들과 다른 차원에 있다고 생각하는 싯다르타는 부처인 고타마 외의 다른 인물들과 대화할 때 상대를 늘 높여 부르거나 칭송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면에서 약간은 조롱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조롱처럼 느껴지는 싯다르타의 태도에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더 높은 차원에 있다고 느끼는 순수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끝까지 듣지는 않았으나 완청을 하게 되면 싯다르타에 대한 나의 평가가 얼마나 우스웠는지 깨닫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단순히 현재 내가 느끼는 바를 기록한 것이다.


또 최근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직장 동료에게 편지를 썼다. 크리스마스 겸, 연말 겸, 또 누군가의 생일 겸 겸겸 겸해서 나는 오랜만에 손글씨로 편지를 썼는데 딜리트가 없는 글쓰기는 오랜만이라 일단 문장을 시작하고는 끝맺음을 정확히 하는데 급급하여 아주 어색한 글이 되기도 했다. 편지를 다 쓰고 읽어보다가 다시 쓸 힘은 나지 않지만, 차마 그대로 편지글을 마무리할 수는 없어 빨간펜으로 교정 부호를 써가며 수정을 했다.

별 내용은 없었지만, 나름의 글쓰기를 하고 나니 차분해졌다.


맞다. 글쓰기란 이런 거였지?

차분해지는 것,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드는 것, 그리고 몰입하는 것.


또 한동안 브런치에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한 번 글쓰기를 시작하면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심오한 사유나 어려운 이론을 들먹이지 않기도 하려니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하지 않았더라도 글을 쓰다 보면 어찌어찌 완성이 되고, 또 글을 다 쓰고 읽어 보면 나름 이 글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가 마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읽으며 의미를 부여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작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그보다 문제는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또 나를 많이 채워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다른 사람의, 특히 유명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 더더욱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 작가에 대한 경외감 등등의 생각들이 모여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허튼 짓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고, 그로 인해 쓰기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자아가 비대해졌을 때 생기는 문제인 것을 안다.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여러 차원의 다양한 실패를 겪으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 자아가 크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이 행복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이다. 자아의 비대증을 극복하고 비로소 작은 그릇인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을 때, 또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오히려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을 때 내가 추구하는 삶을 허들 없이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책을 가까이하고 살면서도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해야 할 정도인데, 내가 추구하는 것은 다독과 정독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고 책을 들고 카페에 갈 때면 어느 순간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글쓰기인데 방금 전에 말했듯 다양한 이유를 들어 글쓰기 시작을 못하고 지속적인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오늘 챗의 답변을 보고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브런치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실패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드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

실패하기 어려운 구조는 매일 실패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할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럼 또 모순이 될 테지만 말이다. 여기서 실패는 하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하기는 했는데 내가 원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실패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그냥 하자. 가 생활인 삶을 살면 된다.


글쓰기를 한다. 그냥 한다. 그리고 내가 알 정도로 유명한 작가의 글쓰기와 비교하지 말고, 작은 그릇의 내가 생각을 정리한 정도의 글, 마음이 조금 더 차분해지는 정도의 글, 그리고 대단한 의미는 없지만 문장을 지으면서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글, 그 정도의 글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책을 가까이, 그 속에서 내가 찾은 나만의 즐거움을 느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 오디오 북이면 어떻냐고,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이면 어떻냐고, 책을 읽고 듣는 행위를 하는 나를 사랑하고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기분이든, 책 내용이든, 그때의 나의 또 다른 상황이든 내가 기억하기 위한 기록을 되도록이면 남겨보기로 결심해 본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더 자주 글을 쓸 수 있을 지도

어쩌면 매일매일을 내가 추구하는 삶으로 채울 수 있을 지도.


실패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드는 것,

생각을 바꾸고 나니, 그거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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