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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Dec 22. 2022

굿바이, 서른아홉 2

그래도 난 내가 좋아.



치킨 마스크 그래도 난 내가 좋아.

여섯 살 조카가 읽어달라며 내민 너덜거리는 동화책.

열두 번은 더 읽어줬던 것 같지만

처음 읽는 것처럼 마스크가 바뀔 때마다 목소리를 달리 해가며 정성껏 읽는다. (왜 유독 동화책을 읽어줄 땐 만화 더빙하는 성우처럼 되는 걸까?)

이 책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자신감 없는 치킨 마스크에게 여러 재능 있는 친구들처럼 될 수 있는 다양한 마스크가 생겨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다 결국은 자기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뿜뿜하게 된다는…

(설명이 너무 미약하므로 아래 책 소개를 짧게 인용한다.)


우쓰기 미호라는 작가의 이 유명한 동화책의 인터넷 서점용 소개는 이렇게 되어 있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가면’은 무척 매력적인 물건입니다. 한 번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점에 착안하여 아이들의 개성이나 장점, 재능을 가면에 빗대어 이야기를 꾸려 나갑니다. 그를 통해 아이들에게 치킨 마스크처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볼 기회가 온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출처: 예스24  『치킨 마스크』 책 소개


서른아홉의 기억을 기록하는데 뜬금없이 웬 치킨 마스크냐고?

사람들은 여러 가면을 쓰고 인생을 살아간다. 나 역시 나를 보여주는 가면이 적어도 네다섯 개는 될 거다.

회사 동료들 앞에선 상처 안 받는 척하는 무뚝뚝 가면,

가족과 어린 시절 친구들 앞에선 늘 무언가를 흘리거나 빠뜨리는 허당 가면,

도움을 준 후배 앞에선 쿨한 천사 가면,

도움을 받은 선배 앞에선 두 손을 모은 굽신 가면,

이밖에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는 어떤 누군가 앞에서는 절대 쓰지 않는 가면을 또 다른 누군가 앞에서는 쓰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 가장 오랜 시간 내가 쓴 가면은

아무래도

허당 가면일 것이다.

이 가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하철을 타면 반대 방향으로 타기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면 일단 건너고 보기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엘리베이터 1층 누른 줄 알고 기다리기

티셔츠 거꾸로 뒤집어 입기

침대 모서리는 주기적으로 박아주고 발가락 쥐기

등등등의 행동을 유발하는 가면이다.


어린 시절엔 이 가면이 좋았다.

가족과 친구들을 깔깔 웃겨주는 시트콤 같은 에피소드가 나조차 재밌었다.


그런데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점점 이 가면이 싫어졌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여전히 돌부리에 넘어질까 걱정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민망했고, 더 이상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는 나는 허당 가면을 쓴 내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자유롭고 세련된 능력자 가면을 쓰고 싶었다.


서른한 살 쯤이었나? 나는 운전면허에 도전했다.

허당 가면에 갇혀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서른 넘은 딸에게 여전히 허당이라고 놀려대던 엄마에게 보란 듯 운전면허증을 찍어서 보내고 싶었다. (그 당시엔 나름 크나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 운전면허증이었나 보다.)


1단계 필기시험과 2단계 장내 기능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엄마에게 ‘운전면허증을 곧 보여주겠노라, 시골 가면 아빠 차 한번 빌려줘라!’ 허풍을 떨어댔다.


드디어

3단계 도로 주행 시험


결과는

그냥 탈락.


차선 변경 타이밍을 놓쳤고 나는 직진했다.

감독관님은 차분하게  중저음의 목소리로

‘갓길에 차 세우고 내리세요.’라고 했고

나도 차분하게 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럴 수 있어! 나는 마음을 다잡고

두 번째 도전을 이어갔다.


이번엔

아쉽게 탈락. (그냥 탈락과 미세한 차이가 있음)

너무 천천히 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날 나는 마치 재수생이 대학에 또 떨어진 느낌이랄까.

허당 가면을 벗지 못한 채 가을 낙엽을 밟으며 한 시간을 걸었다.


합격했냐는 엄마의 연락에 잠시 울먹였으나

나도 모르게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한동안 가족의 전화를 피했고

합격한 후에야 연락을 했다.


그 후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 동안 운전면허는 땄지만 운전은 하지 않았다. (물론 차도 없었고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했기에)


서른아홉이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찌든 사회 속에서 버티며

되도록이면 겁쟁이 쫄보 허당 가면을 집어 들지 않으려 했다.


‘안돼 안돼, 위험해! 서울에서 무슨 운전이야.’

‘가만히, 안전히 있어.’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해, 됐어 하지마~!‘


이런 말들이

어느 순간 걱정이 아니라 내 삶의 한계선처럼 다가왔다.


올해 서른아홉 기억에 남을 두 번째 사건은 바로

용기 가면을 쓰고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보 스티커를 크게 붙이고

꽉 막힌 도로에서 나는

한계선을 가위로 자른 듯한 자유를 느낀다.


뛰어봤자 벼룩이었던 나였지만,

높이 뛰어 보니 더 높이 뛸 수도 있겠더라

커지는 마음을 안고

음악은 거들뿐 진정한 자유가 나를 흔든다.


물론

첫째도 둘째도 안전

초보 안전 운전

내 인생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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