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육아를 할 수 있을까?
난 늘 뭐든지 느렸다.
학창 시절에는 나쁜 버릇이지만 항상 학교에 제일 늦게 도착했고, 100미터 달리기는 말할 것도 없이 항상 꼴찌였다. 여행을 가도 빼곡히 계획을 세워 다니지 않고 느릿느릿 여유 부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행동의 느림도 느림이지만 발달 과업이랄까 시기적으로 해야할 일들도 조금씩 느렸다. 꿈이 계속 바뀌는 바람에 대학도 여러 곳을 다니게 되면서 거의 서른 가까이에 졸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 생활도 또래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바보같이 일중독에 빠져 살다 꽃다운 시절에 연애도 신명 나게 하지 못했다. (이 느림이 제일 안타깝…) 조상의 덕인지 착한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결혼 역시 친한 친구들 중에서맨 마지막으로 하게 되었다.
내 나이 마흔 아니 윤석렬 나이로 아직 서른아홉
어쩌다 보니 겨우겨우 임신에 성공하여 청룡의 해에 출산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도 삼십 대(끄트머리)에 애를 낳았다고 생각하니 내심 뿌듯했다.
작년에 나는 쌍둥이가 의심될 정도로 튀어나온 배를 안고 막달까지 회사를 다녔다.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휴가를 썼다. 연차 + 출산전후휴가 + 육아휴직까지, 붙여보니 대략 1년 4개월이었다. 10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가장 긴 휴가를 내본다. (이 휴가를 계획할 때만해도 집에서 아가랑 여유롭게 쉬는 줄 알았다…) 회사 사람들의 축하와 응원을 받고 이 정도면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며 나왔는데, 이제 한 달 육아를 했는데 벌써부터 나는 점점 간장종지가 되어가고 있다.
회사 소식을 간간히 접하게 될 때면 괜히 내가 배제된 느낌이 들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든다.
당연한 거겠지만, 회사 다닐 때 누렸던 각종 복지 혜택이나 명절 선물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시작과 동시에 일절 없다는 사실에 괜히 섭섭해 했다. 비단 회사일뿐만 아니라 아직도 5개월 임산부 배 같은 내 몸매도 속상하고, 가족들이 아기에게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하는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도 서운하다.
간장종지가 된 나의 요매난 마음을 셀프로라도 풀어볼 요량으로 방치해 두었던 나의 글쓰기 공간인 브런치를 다시 찾아왔다.
아이가 쪽쪽이를 물고 잠든 틈을 타 글쓰기까지 시도하다니 마치 베테랑 육아맘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든다.
육아휴직을 하고 간장종지가 된 나의 베베 꼬인 생각과 고민을 틈나는 대로 종종 풀어보려고 한다.
방금 내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자다가 ‘끙흐흐‘ 하고 이계인 아저씨 소리를 냈다.
최대한 모른척하다가 맘마를 주면서 예뻐해 줘야지.
느리게 살아도 큰 문제없었으니
육아도 느긋하게 해 보자.
간장종지를 넓게 펴고 나도 성장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