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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Aug 22. 2021

유튜브 다이어트

유튜브가 시간을 잡아먹는 요물이라는 것은 진작 느끼고 있었지만 습관적으로 켜는 것을 굳이 자제하지는 않았다. 점점 더 똑똑해지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따라 클릭하다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될까 하는 자책이 들 때면, 제법 도움이 되는 정보나 지식을 전해주는 채널도 많다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기도 했다. 특히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여행 채널은 재미도 있고 유용하기도 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책을 요약해주는 영상도, 보고 나면 한 권을 읽은 듯한 포만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헛헛함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 지식과 교양이 과연 내 것일까. 스포츠, 음악, 예능 등은 딱히 공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니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데 유튜브라는 매체가 꽤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누군가가 요약하여 전달한 책, 지식, 교양은 들을 때는 포만감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었다. 내 정신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교양이 쌓였다는 착각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그럴까.    

 

내가 직접 읽고 체험하며 곱씹어 내것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리 저리 생각을 굴려보는 과정이 없이, 먹기 좋게 남이 가공한 지식을 떠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쉽게 얻어지는 지식은 없다. 여러 사람의 수고로 깔끔하게 정리된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경우에 그냥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응용과 변형을 거쳐야 한다. 그 지식이 왜 필요한지 알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같은 팁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두고 두고 도움이 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 귀로 들어왔다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다른 귀로 나가고 만다.     

 

정보와 지식을 유튜브로 검색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글자로만 된 정보보다 그림과 영상으로 된 정보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기계의 작동원리나 병의 치료과정 같은 것이 좋은 사례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러한 비교적 객관적인 지식 조차 잘못 전달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개선할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을 판단할 능력은 유튜브만 보아서는 결코 길러지지 않는다.    

 

정치나 경제에 대한 정보나 지식에 이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비판적 사고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유튜브에서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일쑤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는데 과연 어느 말이 맞는가.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아마 많은 경우 둘 다 일부분은 맞고 일부분은 틀릴 것이다. 게다가 유튜브에 올라올 정도의 정보라면 그리 고급정보라 하기 어렵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정보가 대부분이다. 어떤 경우는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편향된 정보일 수도 있다.    

 

그 판단은 나의 기준이 있어야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판단력을 기르려면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활자의 시대는 가고 영상의 시대가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영상을 많이 볼수록 뇌가 점점 수동적이 되어가는 현상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휴대폰,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고 한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아마 유튜브 시청일 것이다.  

    

영상을 보는 데는 수동적인 뇌라도 문제가 없지만, 그런 영상을 만드는 일은 능동적인 뇌를 필요로 한다. 유튜브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근래에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든 데는 확실히 유튜브의 영향이 컸다. 하루 한 시간만 잡아도 그렇게 쌓인 시간 동안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수십 권은 읽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본 유튜브가 그만큼 도움이 되었느냐, 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되었느냐 하면 결코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      


여기까지 생각한 뒤 나는 유튜브 구독 목록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남은 목록은 조성진, 한수진 등 내가 좋아하는 연주자와 도이치 그라모폰, EBS 여행 다큐 정도가 되었다.


유튜브 다이어트. 


정신이 조금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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