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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Oct 24. 2021

큰일은 작게, 작은 일은 크게

휴일 아침, 조금 늦잠을 잤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중이라 휴일이 특별히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말 아침은 정신적으로 조금 더 여유롭기 마련이다.   

   

어젯밤에는 서재에서 잠시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 보니 아들 아이는 벌써 연습하러 나갔고 아내와 딸내미는 아직 취침 중이다.      


딱딱한 바닥에서 잔 탓인지 몸이 뻐근하여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가 보니 싱크대에 설거지가 그득 쌓여 있다. 어젯밤에 분명 내가 다 했는데, 그 후 딸내미가 밤참으로 파스타를 해먹고, 아들내미가 아침에 볶음밥을 해먹고 나간 흔적이다. 큰 웍 두 개, 큰 접시와 작은 접시 몇 개, 컵이 일고여덟 개다. 아내가 밤에 마신 티 잔, 커피잔, 딸내미가 마신 물컵, 아들 아이가 마신 단백질 셰이크 컵 등이다.      


순간 약간 짜증이 났다.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커피 한잔하려 했다가 그득 쌓인 설거짓거리를 보게 되면 누구라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이 상태에서 커피를 마시면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을 것이기에 우선 설거지부터 한다.      


설거지하며 점차 기분이 나아진다. 그릇을 정리하고 음식물 찌꺼기를 비우기까지 걸린 시간은 십 분에서 십오 분 남짓. 깨끗해진 싱크대를 보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식탁에 앉아 어젯밤 구워 놓은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십여 분이면 끝내는 설거지.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나중에 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작다고 소홀히 하거나 미루면  다음에 그릇이나 싱크대를 쓰는 사람에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불쾌감을 주는 원인이 된다.      


아들내미와 딸내미를 사랑하고 필요한 것은 최대한 지원해주려고 하지만 이럴 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시키면 하는 아이들이고 내키면 자기들이 먼저 하기도 하지만, 먹을 때마다 하지는 않는다. 그리 중요한 일이라 생각지 않아서이기도 할 것이고, 안 해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수고로 깨끗해져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을 사소하게 보지 않고 바로 처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생활에 있어 그리 작지 않은 차이를 가져온다. 작은 일을 작지 않게 보는 사람이 나는 좋다.     


반대로 큰일은 작게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국내외 주식에 약간의 투자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투자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에 늘 주의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과잉반응을 하게 될 때가 적지 않다. 가령 몇 년 전의 남유럽 금융위기나 브렉시트 같은 일이 발생하면 자산이 일시적으로 폭락하는데 그때 더 떨어질까봐 불안하여 서둘러 처분하고 나면 얼마 후 거짓말처럼 회복되고는 했다.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코로나19 사태에도 허둥대기는 마찬가지였다. 백 년 전에 세계를 휩쓸고 간 스페인 독감이 있었고, 가까이로는 이십 여 년 전 사스가 있었지만, 치료제도 없는 바이러스가 이렇게 급속도로 전세계로 퍼져나간 사례가 없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은 물론 각국 정부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일단 최대한 봉쇄하고 막대한 재정을 풀어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고, 그 결과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지고 백신 개발에 진전이 보이자 그렇게 풀린 돈으로 인해 자산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들도 거의 예상치 못했던 사태다.     


이제는 큰일이 발생하면 의식적으로 작게 보기 위해 심리적으로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고는 한다. 그러면 나무보다 숲을 보기가 조금 수월해진다. 물론 아직도 어떤 일일 발생하면 당황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실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있다면 사람이 아니라 AI가 아닐까.     


작은 일은 크게 보고 큰일은 작게 보려는 노력은 감정의 변동성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이는 선불교의 수행과 통하는 면이 있다. 수행의 목표가 희로애락, 즉 지나친 감정의 기복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투자 기법의 목표 또한 변동성을 줄이려는 데 있다. 투자에서 AI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한 기법은 계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AI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정은 최종적으로 인간이 내리는 것이고 그 인간의 마음은 늘 출렁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늘 출렁이는 존재다. 마음의 출렁임이 없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그 출렁임이 감동의 원천이고 사는 재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출렁임을 즐기는 정도를 넘어 거기에 휘둘린다면 삶은 즐겁기보다 힘들고 괴로워지기 십상이다.      


삶도, 투자도, 수행도, 그 요체는 마음의 변동을 제어하는 데 있다. 그 노하우 중 하나가 큰일은 작게, 작은 일은 크게 보기다.      


- 휴일 아침의 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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