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라는 프랑스 사람이 있다. 그는 2013년에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내용을 대략 한 마디로 정리해 보면, 부의 불평등이 심해졌다, 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갖지 못한 자는 계속 갖지 못하게 되는 사회 구조가 우리의 삶 전반에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가치를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꾸준히 학습하고 있지만, 무엇이 평등한 것인지,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배우지 않는다. 정치적 평등인가? 경제적 평등인가? 문화적 평등인가? 성평등인가? 평등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지향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그 속에서 피케티는 경제적 불평등을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는 평등을 배워왔지만 사실 경제적으로는 충분히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재벌 총수와 그 아들이 갖고 있는 자본이, 우리 아부지와 나의 자본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은가? 부동산, 현금 등 어느 기준으로 비교를 해보나 곤란한 수준이다. 노동이 아닌 그 부동산과 현금 등의 자본이 가져다주는 수익률의 차이도 매우 크다. 때문에 재벌집은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폭이 크고, 우리 집은 작다, 그래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진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간단한 이야기인가? 사실 그렇다. 너무 단순한 가설이라서 피케티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보완하려고 했다. 즉, 이미 갖고 있는 자본이 가져다주는 수익률만이 아니라, 기술숙련과 교육 수준에 따른 소득의 차이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임팩트는 없다. 자본수익률만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설명했던 그 단순 명료한 깔끔한 설명은 사라졌다. 이제는 이것저것 다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후에도 경제적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연구자들의 시도가 있었으나 피케티만큼 임팩트를 주었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피케티나 일반 시장경제 연구자들이 전제로 깔고 가는 것은, 세상엔 경제적인 평등이 없다는 점이다.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든 안 심해지든, 불평등 자체는 존속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태껏 우리가 배워온 평등이라는 가치는, 최소한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는 적용되지 않는 무의미한 말일뿐이다.
그런데 과연 경제적 측면에서만 그럴까? 부의 불평등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불평등과 교육적 불평등과 문화적 불평등을 낳고, 심지어 그것들을 아랫 세대에 대물림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상식'을 강요받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은, 정말 개천에서 용 나기가 굉장히, 미친 듯이 어렵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는 용이 수백 마리가 나와도 그러려니 하겠지. 언론에서는 개천에서 짠! 하고 등장한 용 한 마리를 집중 조명해서, 하루 10시간 교과서를 중심으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반복재생한다. 그렇게 누구나 하루 10시간 교과서를 중심으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용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퍼뜨린다, 단 그 학생이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나 시간이나 정서적 안정이나 희망적성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즉 소위 명문대를 간 학생은 노력을 했으니 칭찬받아야겠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노력을 안 했으니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겠다는, 참으로 기만적인 능력주의 행태가 우리의 사회 구조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 곳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정치적/문화적/교육적 불평등이 판을 치는 사회 구조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고 다만 자책한다.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야, 그러니 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을 해야겠어. 이런 '노오력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가 우리나라에 있다. 불만을 표출할 줄 모르기에 사회의 안정이 지속되는 일,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즉 평등은 자본이다. 평등은 민주화 등을 통해 이미 정립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쌓아 올려야 하는, 금세 사라지기도 하는 자본이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가치가 아니라, 얻어내야 할 가치이다. 불평등 사회를 능력 본위의 사회로 착각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개혁하는 일은, 평등의 가치를 자본화시키는 일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우리의 정치 기반이라는 사실은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불평등 구조를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공동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는, 약속된 규칙을 지켜야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규칙은 누가 정했는가?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가 직접 정해나가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