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소비하는 시대에서 산다는 것

by 윤이

확고한 도착지가 없는 배에 사람들이 타고 있다. 도착지를 안내하던 지도는, 이 지도를 도대체 누가 만들었냐며 의심하는 이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흩뿌려졌다. 모두가 꿈꾸던 보물섬은 꿈처럼 사라졌다.


확고한 이상과 신념이 없는 시대다. 근대주의의 반동으로 모든 것이 해체되었다. 그 속에서 영원할 것 같던 유토피아는 용해되어 흔적조차 없어졌다.


좋은 말로 자율, 나쁜 말로 방기의 시대에 각자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온갖 베스트셀러 책에서는 나 그리고 나 또한 나 언제나 나에 대한 이야기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나는 오로지 나에 의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설파하는 가장 힘센 전도사는 다름 아닌 돈이다. 돈은 단지 노동의 대가나 자본의 재생산물만이 아니라, 소비력이다. 난 이만큼 쓸 여력이 있어, 그러니 이만큼의 힘으로 나는 이만큼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더러운 점은, 소비력에 입각한 자유를 진짜 자유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 인류의 공통지향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형해화, 파편화시킨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빚어낸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각자의 자유를 지키는 데 돈을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모든 것은 돈으로 귀결된다.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 기꺼이 오래된 터전을 내어주고, 도로를 내기 위해 마을을 가르는 데 익숙한 우리들은, 장애인이 본인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시위를 해도, 철거민들이 크레인을 타고 항의를 해도 결국 돈 때문 아니겠냐는 슬픈 자조에 매몰된다. 내 능력에 비해서 연봉이 좀 적은데, 너는 연봉이 얼마냐, 거기 가면 돈 더 주냐…


바야흐로 혼밥혼술의 자유와 방종이 잠식한 사회다. 제발 나한테 피해만 주지 마라, 내가 이만큼 벌어서 이만큼 자유롭게 살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힘겨운 일상은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삶)' 마인드를 퍼뜨리는 한편 자유와 돈을 동일시하게 만들었다.


대안 없는 푸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럼 어떤 길이 있을까. 결국 사람이 뭉쳐야 한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함께 활동을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우리 눈앞의 삶이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커져야 한다. 소모임의 조직을 권장하고 증대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중등(중/고), 고등(대) 교육기관에서 각자의 관심사에 맞는 소모임 조직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지역사회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돈이 아닌 바람직한 관계 속에서도 자유가 있음을 체득하고 그것을 나누는 모임을 조직해야 한다. 즐거움과 불만을 함께 쏟아낼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작은 단위의 모임으로부터 삶을 대하는 여러 자세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 우리 모두는 어딘가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결함은 내가 채우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에 의해 비로소 채워진다. 내가 내 행복을, 자유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는 이제 그만 접고 직접 사람들을 대면하는 용기를 가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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