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집 승부, 승자독식의 세계

by 윤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휘황찬란한 결승 대국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판세를 유심히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할 수 없었다. 간혹 어떤 이들은 누군가의 압승을 예언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그에게 내재한 불안감의 발로였다.


한 수 한 수 나아갈 때마다 전신에 흐르는 피와 땀이 열을 내뿜었다. 그 열기에 온 세상이 불타올랐다. 불타는 세상은 피아가 너무나 뚜렷한 전쟁터였다. 오직 승리를 위한 거대한 전쟁터에서 사람들은 분주히 각지를 누비며 총구를 들이밀었다.


손 들어! 너는 누구 편이냐? 중립인 척 중도인 척 고고하게 서 있던 나도 그 옥죄이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본모습을 실토했다. 고고한 이상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승리를 향한 집착으로 변해갔다. 내가 믿는 정의가 오롯이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너의 정의가 미끄러져야 했다. 너의 실수를 바라는 마음들이 난잡하게 휘몰아쳤다. 기쁨과 좌절은 수만수억 번 교차했다.


그칠 줄 모르는 폭풍 속에 검은색과 흰색 돌들이 하나둘 반상을 메워갔다. 점점 비어있는 공간이 사라지면서 너와 나의 득실을 헤아리기가 쉬워졌다.


반집. 딱 반집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다. 반상에 널려 있는 저 모든 우리 편 돌들의 의미를 살리려면 반드시 반집을 꺾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간의 숱한 희생은 뭐가 된단 말인가.



반상에는 무승부가 없다. 승자와 패자만이 있는 세상이다. 승부에서 이긴 자는 모든 것을 독식한다.


우리는 그 승자와 패자를 TV 너머에서 지켜본다. 승자는 모든 것을 취하고, 패자는 쓸쓸히 박수를 친다. 승자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승자와 똑같이 환호하고, 패자를 바라보았던 사람들은 패자가 된다.


반상이 아닌 바둑을 보아야 한다. 세계대회에서 한국사람이 외국사람을 꺾고 우승했다는 소식은 나에게 한국인으로서 다소 기쁜 감정 외에는 아무런 효능이 없다. 그래서? 이기고 지는 과정은 어땠는데? 그 세계대회는 누가, 왜 개최했는데? 바둑은 대체 왜 무승부가 없는 싸움이어야 하는데? 왜 검은색과 흰색 돌만 두어야 하는데?


본질을 이루고 있는 구조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반집짜리 승리로 모든 것을 가져가고, 그 패배로 모든 것을 잃는 구조도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 각양의 삶에 맞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관철시키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환호와 좌절 같은 감정은 잠시일 뿐, 각자는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삶을 산다. 승리와 패배라는 일시적인 감정에 휘둘리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 준엄하다.


질문하고 행동하자, 그것이 이 치열한 반집 승부의 승리와 패배를 모두 의미 있게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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