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함이 정갈함을 마주했을 때

by 윤이

산만하고 혼란하다는 말이 이렇게나 잘 들어맞을 수 있나 싶은 나의 0.5평에서 털레털레 빠져나와, 선생님의 선생님께서 계신 곳으로 향했다. 일전에 몇 차례 자료 구성을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선생님께서는 손자뻘인 내게 격려의 의미로 밥을 한끼 사주고 싶으셨던 듯하다. 명예교수동 연구실로 가는 내내 무엇을 먹을까 산만한 생각들이 이리저리 퍼졌다.


선생님의 연구실은 정갈하다. 책장에 놓여 있는 책은 저자별, 주제별, 심지어 크기별로도 정돈되어 있다. 책상 위에는 각종 자료가 깔끔히 배치되어 있다. 말하자면 반세기에 걸쳐 갈고닦은 오피스세팅이다. 이미 오래 전 퇴임을 하셨음에도 여전히 매일 같이 연구실에 오전부터 저녁까지 출퇴근을 하시는 것만큼이나, 연구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열의를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별세하신, 선생님과 더불어 학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의 저서도 책장에 있구나, 하면서 선생님 옆에 앉아 마무리 작업하시는 것을 묵묵히 기다렸다. “시장하겠구나.” 고요를 걷어내는 말씀에 화들짝 놀라 다급히 아니라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었는데, 정갈한 연구실과 담백한 말씀에 내 산만함과 분주함이 일순간 튀어나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왁자지껄 어지러운 순대국밥집에서도 이어졌다. 내가 종종 가는 곳이어서 들뜬 마음으로 선생님께 권해드렸는데, 문을 열고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온갖 걱정이 밀려왔다. 입에는 맞으실까, 너무 진한 국물이라 연세에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술도 가져와야 하나, 밑반찬은 요새 뭐가 나오나, 어떤 대화주제를 꺼내야 하나, 공부 말씀은 어디까지 드려야 하나,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소주를 한 병 넘게 들이키고 있었고, 역사를 이렇게 공부하고 싶었다는 치기 어린 포부를 선생님께 주절대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선생님, 나의 산만함과 분주함과 혼란함과 어설픔을 알아차리셨을까, “자네가 말하는 그림을 잘 간직하는 게 중요하네. 하지만 그것을 글로 내보일 때에는 자료를 바탕으로 꼼꼼히 써야 하겠지.” 늘상 들어오던 내 어설픈 면모를 한눈에 간파하시다니. 나는 내 얼굴을 볼 순 없지만 혈류의 느낌으로 보아 분명 붉어졌을 것이다.


술에 취하고 부끄러움에 취하고 하여튼 온통 붉게 물든 나는 선생님을 역까지 모셔다드리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산만한 오전, 산만한 오후. 산만한 것은 결국 일터도, 순대국밥집도 아닌 나 자신. 연구의 고요에 이르는 길은 아직 내게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