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0.5평의 양배추

by 윤이

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익숙한 이름과 바라던 학과와 낯선 자릿수의 금액. 즐거운 한편으로 막막함이 휘돌았다. 아직 어리지만 돈의 무게는 잘 알았다. 그래서 애초에 사립학교는 내게 먼 곳이었다.


대학으로 가는 길은 미래의 나에게서 빌린 가교였다. 당시는 한국장학재단이 출범할 무렵이었다. 지금처럼 소득분위에 따른 국가장학금이 없었고, 은행을 통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감사했다. 10년 뒤의 나에게 빌려 쓰는 일을 재단과 은행이 도움을 주었다.


휴학과 복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그러니 부단히 좋은 학점을 받으려 애썼다. 그 덕에 국가장학금, 동문장학금 등 교내외의 장학금을 받았다. 잡기에 한눈파는 시간이 줄어들고 공부와 일에 매달리니 믿을 만한 사람이라 여겨진 걸까, 학생회장 역할도 주어졌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나를 믿어준 이들에게 고마웠다.


그 신뢰는 내가 선택해서 이룰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꿈을 꾸게 했다. 이듬해 러시아 극동지역 연해주 답사를 통해 고려인이라 불리는 한인들의 불행한 역사를 접하고, 나는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역사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찾아보자,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서의 더 나은 지향을 찾아보자. 한번 해보자.


선생님들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기꺼운 마음이셨을지 안타까운 마음이셨을지 모르겠으나 여러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쉽지 않은 길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여유롭지 않은 환경에 있어서랴.


자존감 하나로 대학원에 들어섰다. 옷이 낡았을지언정 정신마저 혼탁할까. 의미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 다른 이에게 내 시야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대학원과 학문의 장이야말로 맨몸에 글 하나로 링에 올라서 치고 박는 공간 아닌가?


그런 나에게 주어진 0.5평. 이 좁아터진 공간에 책과 논문을 산으로 쌓으며 부딪쳤다. 부족한 시간과 돈을 메워주는 나의 동반자 컵밥과 함께 도서관과 학술대회장을 쏘다녔다. 말도 안 되는 문장과 엉뚱한 질문들을 남발하는 삶. 된서리를 잔뜩 맞으며 견뎌나갔다.


초토화 속에 벌거벗고 나니 선생님들께 혼나는 일에 감사했다. 이래서 아니구나, 그래서 맞구나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래도, 역사는 다양한 목소리가 허용되는 다성성(多聲性)을 가진 학문인 덕분에 그 와중에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공부의 한 단계가 끝날 무렵에 이르러, 재미있는 글을 썼구나, 그 짧은 말씀에 안도, 자 이제 밥 잘 챙겨 먹고 연구실에서 밤새우지 말고 건강하게 다음 공부를 하게.


불현듯 깨달았다, 공부란 교과서와 논문을 달달 외우고 글을 쓰는 것만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양배추를 사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양배추와 각종 식재료를 손질해서 요리를 해 저녁을 먹는, 새벽 4시까지 치열한 번민 속에서 쓴 나의 조잡한 글을 보고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 끝에 에라 잠이나 퍼질러 자야겠다 하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 일련의 삶이 곧 공부라는 것을.